5월 14일 첫 회동을 앞두고 인사를 나누는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오른쪽)와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 사진=박은숙 기자
거대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코로나19 극복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 야당의 발목잡기에 시간을 끌 수 없다며 이번엔 법사위원장 자리를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미래통합당은 당 의석수가 103석으로 줄어 법사위까지 내줄 경우 여당 견제카드가 없다며 ‘법사위원장 사수’를 외치는 상황이다.
과거 법사위원장 자리는 다수당 차지였다. 2004년 17대 이후 여당이 운영위원장을, 제1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는 게 관례가 됐다.
법사위원장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법사위 권한 때문이다. 법사위는 국회법 86조에 따라 각 상임위에서 통과된 법률안을 본회의에 넘기기 직전 △개정·제정 법안의 위헌 여부 △타 법률과의 충돌 △용어의 적절성 등 체계·자구 심사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권한은 시간이 흐르면서 상대 정당의 법안 처리를 의도적으로 장기 계류시키는 등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 사례는 2013년 5월 19대 국회 당시 통과한 ‘유해화학물질법’ 전부개정안이다. 당시 소관 상임위인 환경노동위는 화학물질 유출사고로 중대 피해를 일으킨 기업에 ‘전체 매출액 10%’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으로 법안을 올렸지만, 법사위가 체계·자구심사 단계에서 과징금 부과기준을 기존의 ‘10%’에서 ‘5%’로 낮춰 논란이 됐다. 국방위의 ‘해외파병에 관한 일반사항에 대한 법률’의 경우 법사위가 4년 내내 체계·자구심사를 진행하지 않아 결국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도 소관 상임위를 통과했지만 법사위에 막혀 계류돼 폐기될 운명에 놓인 법안들이 있다. 박주민 의원이 2016년 6월 발의한 ‘세월호 참사 피해구제 특별법’ 개정안은 상임위를 통과해 2018년 3월 법사위에 상정됐지만, 2년 넘게 계류 중이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등 진상규명과 가해자 처벌 등이 담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이나 목사 등 종교인들의 퇴직금 과세범위를 축소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도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
민주당 내에서는 법사위가 ‘옥상옥’으로 자리매김한 폐단을 뿌리 뽑겠다며 법사위 체계·자구심사 권한 폐지 등을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 방안을 꺼내들었다. 이를 포함한 ‘일하는 국회법’은 민주당의 21대 총선 공약이기도 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신임 원내대표가 국회법 개정 운을 띄웠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5월 11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어느 순간부터 법사위 체계·자구수정 권한이 게이트키퍼 역할로 악용하거나, 한두 의원이 마음에 안 드는 법이 있으면 지체시키는 등 거의 횡포에 가까울 때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법사위는 법제사법과 관련한 정부부처들을 소관하는 원 역할에 충실하고, 체계·자구심사는 실무적인 문제니 국회 외 법률 전문위원들로 구성된 별도의 기구를 만들어 각 상임위에서 만들어진 법에 대한 심사만 맡게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법 서울중앙지법 서울행정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김도읍 자유한국당 간사와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간사가 여상규 법사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국회법 개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우선 야당의 반대를 뚫기 쉽지 않다. 주호영 신임 통합당 원내대표는 5월 8일 취임 후 “국회를 통과한 법안 중 위헌법안이 1년에 10건 나온 적도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기능을 없애는 건 대단히 위험하다”고 반대의 뜻을 밝힌 바 있다.
윤석영 통합당 의원도 5월 14일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상하원 양원제로 운영되는 미국·일본 등 다른 국가와 달리 한국은 단원제라 집권당과 정부가 같은 정당이 되는 경우가 있다”며 “이번처럼 집권당이 180석 거대 여당이 됐을 경우 견제할 힘이 없다. 이런 현실에서 법사위라도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법사위 체계·자구심사 권한 폐지 시도가 여러 번 있었지만 통과되지 않았다. 첫 법안은 16대 국회인 2003년 나왔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미래통합당 전신) 소속 이주영 의원이 법사위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법무부, 법제처, 감사원 등 소관기관으로 하는 사법위와, 법안 체계·자구심사를 담당하는 법제특위로 분리하자고 주장했다.
이어 한나라당이 야당으로 법사위원장직을 맡은 17대 국회에서 법사위 체계·자구심사 관련 개정안이 4건 올라왔는데, 그중 여당인 열린우리당(더불어민주당 전신)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3건(김동철·안영근·전병헌)이었다.
정권이 바뀌며 민주당이 야당으로 법사위원장을 맡은 18대 국회에서는 발의된 3건 모두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철우·권영진·주성영)이 대표발의했다. 19대 국회에서 올라온 3건 중 여당이었던 새누리당 소속 의원 발의가 2건(강기윤·김성태)이었다(1건은 민주당 이목희 의원).
현재도 국회 운영위에 법사위 체계·자구심사 권한 폐지를 담은 국회법 개정안이 3건 계류돼 있다. 모두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했다. 대안으로 상임위가 개별적으로 체계·자구심사 담당(우원식 의원안), 별도기구인 국회법제지원처 신설(홍익표 의원안), 국회사무처 의견 청취(박주민 의원안) 등이 담겨 있다.
미래통합당의 한 중진 의원은 “법사위 역할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지만, 여야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며 “야당이던 시절 민주당도 국회법 개정을 반대했다. 20대 국회에서 3건 발의한 시점도 정권이 바뀌며 민주당이 여당이 된 이후다. 이제 와서 법사위 체계·자구심사 권한이 발목잡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현재 국회법 개정안을 반대하고 있는 주호영 신임 원내대표 역시 야당이던 2006년 17대 국회 당시 ‘사법위 분리 및 별도 상설특위 신설’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국회의원 고유 역할을 외부 전문위원에 맡길 수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입법은 국회의원만이 가진 권한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의원들이 맡아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 민주당 구상인 국회 밖 전문위원으로 구성된 별도의 기구를 만들어 법에 대한 심사를 맡기게 되면 국회의원의 입법기관으로서 존재가치 약해질 수 있다”며 “또한 해당 전문기관이 심사 권한을 쥐고 새로운 권력기관으로 작용하게 될 우려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김태년 원내대표실 관계자는 “본질적으로 체계·자구 심사는 법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선을 지켜야 한다. 전문기관의 심사 내용·시한 등 역할을 한정시켜 놓으면 입법권을 침해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7대 국회 이후 법사위원장을 관례적으로 야당 몫에 준 이유는 견제하라는 의미였다. 현재 민주당이 177석도 모자라 법사위원장도 가져가겠다는 것은 국회를 마음대로 운영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기본 원칙에 위반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외부 전문위원에 체계·자구심사 권한을 넘기자는 방안은 지금까지는 왜 적용하지 않았는가”며 “슈퍼여당답게 관례와 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해야지,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 수단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고 충고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