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3위 멀티플렉스 메가박스중앙이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몸집을 불려왔지만 코로나19로 발목이 잡혔다. 서울 강남구 소재 메가박스 코엑스점 내부. 사진=박정훈 기자
메가박스는 지난해 4월 신한금융투자와 대신증권을 주간사로 선정하고 연내 상장을 목표로 IPO 작업을 추진해 왔다. 최대주주인 제이콘텐트리가 드라마와 영화 투자·배급 사업 확대를 위해 FI에 투자받는 과정에서 IPO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제이콘텐트리는 2017년 하반기 사모펀드 메이플트리를 대상으로 398억 8000만 원 규모 교환사채(EB)를 발행하면서 2021년 4월 30일까지 IPO를 완료하기로 했다. 교환 대상은 제이콘텐트리가 가진 메가박스 주식 가운데 6.9%다. 메이플트리는 지난해 EB 절반을 교환해 메가박스 지분 3.45%를 확보한 상태다.
제이콘텐트리는 2017년 상반기에도 메가박스 지분 일부를 프리 IPO를 통해 KB자산운용과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에 매각하면서 1100억 원을 마련했다. 현재 이들은 메가박스 지분 각각 11.50%, 7.96%를 보유하고 있다. 메이플트리에 내건 조건과 같은 내용으로 투자받은 만큼 제이콘텐트리는 메가박스 상장을 내년 4월까지 마무리해야 한다.
#몸집 불렸더니 코로나 직격탄
그러나 박스오피스 시장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으면서 연내 상장은 물 건너갔다. 1·2분기 타격이 커 연간 적자를 낼 가능성이 높아졌고, 주식시장의 투자 심리도 위축됐다.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한 외형 확장으로 재무 부담마저 커졌다. 메가박스는 2018년 CJ CGV를 제치고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입점하고, 높은 임차료에도 강남 코엑스몰 임대차 계약을 연장했으며, 이듬해 성수동 신사옥에 입주했다. 극장 개수도 2016년 85개에서 2019년 102개로 늘렸다. 상장을 위한 무리한 투자가 극장산업이 정체기를 맞으면서 오히려 수익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리스부채 회계기준 변경으로 차입금이 늘어난 점도 우려를 키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2018년 887억 원이던 순차입금은 2019년 회계기준 변경으로 별도 기준 리스부채 3486억 원을 인식하면서 4277억 원으로 증가했다.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가 각각 413.9%, 63.4%에 이른다. 늘어난 고정비와 부채가 영업실적 부진과 맞물려 자본감소를 야기하는 등 재무구조가 빠르게 악화할 수 있다.
정해진 기한 내 상장하지 못하면 제이콘텐트리는 FI들에 메가박스 지분을 담보로 투자받은 총 1500억 원가량을 투자받은 날부터 회수하기 전까지 연 복리 15%를 가산한 금액으로 돌려줘야 한다. IPO를 하더라도 흥행에 실패해 FI들이 투자한 금액만큼 회수하지 못하면, FI는 투자금액에 연간 내부수익률(IRR) 3%를 가산해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당시 일반 회사채보다 저렴한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자 메가박스 지분을 담보로 투자받았는데, IPO에 실패하거나 흥행하지 못할 경우 ‘배보다 배꼽이 훨씬 더 커지는 상황’과 마주하게 되는 셈이다.
#투자자와 합의 하에 상장 연기 가능성
결국 제이콘텐트리는 IPO 일정을 FI들과 다시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 계약 조건상 FI 동의 아래 IPO 기한을 6개월 미룰 수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코로나로 인해 연간 적자가 예상되는 지금 무리하게 상장을 추진하면 FI들이 차익을 실현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합의하에 기간을 연장하지 않겠느냐”며 “내년 영업이 정상화한다면 내후년 IPO가 가능할 것이며, FI와 조율만 잘되면 기한을 더 길게 늦출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국내 영화관사업의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하고 넷플릭스 등 OTT 시장이 활성화하면서 IPO를 앞둔 메가박스의 기업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한 남성이 넷플릭스를 시청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코로나19의 영향이 걷히더라도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기 힘들어 보인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국내 영화관사업의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극장을 찾는 연간 관객 수가 2012년에는 전년 대비 22% 늘어난 1억 9489만 명, 2013년에는 9.5% 증가한 2억 1335만 명으로 사상 최초 2억 명을 돌파했지만, 이듬해부터 정체 상태다.
반면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성장세는 가파르다. 심지어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극장산업은 침체기에 빠지고 OTT는 큰 폭으로 성장하면서 향후 관람 형태마저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런 이유로 지난 4월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는 메가박스 신용등급을 ‘A-’로 유지했지만 전망은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변경했다.
실적 부진과 영화시장의 생태계 변화가 기업가치 산정 시 비교 대상이 되는 피어그룹(동종기업)의 밸류에이션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점도 메가박스엔 곤혹스럽다. 국내 1위 멀티플렉스 CJ CGV 주가는 지난해 말 3만 원대 후반에서 현재 2만 원대로 떨어졌다. 영화산업 정체가 심각한 미국 등 해외 상황도 다르지 않다. 이런 이유들로 메가박스가 IPO 일정을 연기하더라도 흥행에 실패할 수 있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나쁜 업황과 전망으로 피어 밸류에이션이 낮아 높은 가치를 인정받긴 어렵다”며 “IPO에 실패하거나 흥행하지 못하면 투자받은 금액보다 큰 규모로 FI들에 보상해줘야 하는 제이콘텐트리 입장에선 고민이 클 것”이라고 했다. IB업계 다른 관계자는 “해외 진출이나 4DX 등 체험형 상영관에 투자하는 CGV와 달리 메가박스는 장기간 사모펀드 아래 운영되면서 국내 상영관 위주 사업구조를 띠고 있다”며 “전략적 투자보다는 안정적 성장에만 치우쳤기에 수익성은 타사보다 좋을 수 있어도 미래 성장성은 더 떨어진다”고 했다.
#헐값 매각이 최악의 시나리오
최악의 경우 메가박스가 매물로 나올 가능성도 언급된다. 앞의 증권사 관계자는 “메가박스의 현금성 자산이 바닥나고 최소한의 운영도 안 되는 상태여서 IPO에 실패하면 매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며 “매물로 나와도 제값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FI 입장에서는 투자금에 이자를 얹어 돌려받을 수 있어 언제든 엑시트는 가능하지만 그 정도 수익을 기대하고 뛰어든 건 아니기에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긍정적인 전망도 있다. 해외에서는 극장사업자들이 이미 OTT에 입지를 빼앗기고 물러난 곳도 있으나 영토가 좁고 인구밀집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영화관 접근성이 뛰어나 아직은 크게 위협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극장사업자로서 아직 기회가 있다는 얘기다. 특히 메가박스는 특별상영관 등 기술력에선 떨어지지만 영화부터 오페라, 애니메이션, 축구 경기, 강연, 넷플릭스 콘텐츠, e스포츠 생중계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며 경쟁력을 높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멀티플렉스업계 한 관계자는 “큰 스크린에 풍부한 사운드, 편안한 좌석으로 콘텐츠 가치를 높여주고 영화를 첫 공개하는 1차 플랫폼으로서 극장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며 “코로나19로 영화관이 문을 닫은 요즘 미국 영화가 개봉을 미루는 모습을 보면 극장의 역할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극장산업은 국내에서 갖는 특수성이 있고 티켓 등 가격 인상 요인이 여전히 남아 있어 코로나19만 종식되면 수익성 측면에선 긍정적으로 전망한다”며 “시장이 안정되면 극장사업 가치가 높아져 메가박스 IPO에 호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메가박스 관계자는 상장 일정에 대해 “코로나19 여파로 상황이 안 좋아 IPO 시점을 미루는 것을 검토하고 있지만, 하반기 실적이 회복될 경우 내년 4월 진행할 수도 있다고 보기에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매각설에 대해서는 “IPO는 무조건 진행한다는 입장이어서 매각설은 말도 안된다”고 일축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