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의도에 있는 미래에셋 건물 전경.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미래에셋의 흔들리는 아성이 가장 먼저 확인되는 곳은 수익률 악화와 이에 따른 환매다. 2007년 말 38조 7487억 원, 2008년 말 49조 2713억 원에 달했던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주식형펀드 설정액은 2009년 말 42조 9143억 원까지 줄었다. 올 들어서는 감소세에 가속이 붙으면서 지난 4월 19일 현재 38조 7937억 원까지 쪼그라들었다. 15개월여 동안 무려 10조 원이 빠져나간 셈이다.
1차 원인은 역시 수익률이다. 올 1분기 말 기준 미래에셋운용의 주식형펀드 1년 수익률은 순자산 300억 원 이상 운용사 40개 가운데 32위다. 2년 수익률은 37개사 가운데 29위다. 장기수익률인 3년은 34개사 가운데 8위, 5년은 29개사 가운데 4위에 올라있지만, 무려 23조 원의 돈을 맡겼던 2007년 투자자의 상당수에게 근래의 미래에셋펀드 수익률은 결코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이다. 2007년만 해도 미래에셋펀드의 수익률은 최상위권을 휩쓸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미래에셋 수익률의 부진은 시장 주도권 상실에서 비롯됐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외국인이 비중을 줄여가던 시기에 시장 주도권은 미래에셋이 좌우했다. 미래에셋 펀드에 돈이 밀려들어왔고, 이 돈으로 미래에셋은 주식을 샀다. 특히 초대형주보다는 중·대형 ‘미들급’ 종목에 집중 투자했다. 자연스레 미래에셋이 손을 댄 종목은 주가가 급등하고, 미래에셋 펀드 수익률도 덩달아 좋아졌다.
증시 최대 주식투자세력인 미래에셋이 어느 증권사에 얼마만큼의 주식주문을 주느냐에 따라 해당 증권사의 연간 경영성과가 좌지우지될 정도였다. 상황이 이 정도다 보니 미래에셋 종목만 따라 사는 펀드매니저도 등장했고, 이들 펀드 수익률은 미래에셋만은 못했지만 수익률 차트 상위에 포진했다. 미래에셋은 이에 대해 “철저한 리서치에 의한 선제투자”라고 설명했지만, 운용업계에서는 대표적인 ‘말아 올리기’라고 해석하는 분위기다. 돈의 힘으로 수익률을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2007년 10월 말 미래에셋은 야심작 인사이트펀드를 내놓았다. ‘펀드의 제왕’ 박현주 회장이 전 세계 유망자산에 투자한다는 입소문과 함께 1주일에 1조 원씩의 자금을 빨아들였다. 증권사에는 인사이트펀드에 가입하기 위한 장사진이 펼쳐졌다. 은행권의 돈이 펀드로 빨려간다는 ‘머니무브’(Money Move)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인사이트에 4조 원이 넘는 돈이 모인 지 얼마 되지 않은 2008년 3월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졌다. 외국인은 주식을 내던졌고 주가는 폭락했다. 특히 2008년 초에는 미래에셋이 많이 가진 종목을 집중적으로 내다팔았다. 자연스레 미래에셋 종목, 미래에셋 펀드의 수익률은 급락했다. 투자자의 기대를 잔뜩 모았던 인사이트펀드 역시 수익률이 곤두박질쳤다. 특히 인사이트가 글로벌 펀드가 아닌 중국펀드 유사품으로 드러나면서 투자자의 실망은 극에 달한다.
이는 2009년부터 펀드 투자자의 이탈로 연결됐다. 올 들어서는 그 행렬이 더욱 강화되는 모습이다. 미래에셋으로서는 이제 돈의 힘으로 수익률을 올릴 수도 없게 됐다. 워낙에 덩치가 큰 탓에 조금만 움직여도 시장의 관심이 집중된다. 대형펀드일수록 시장수익률을 낼 수는 있어도, 시장을 초과하는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미래에셋 주력펀드 상당수는 규모가 조(兆)단위다. 시장수익률 정도로는 실망한 투자자의 발걸음을 돌리게 하기엔 역부족이다.
▲ 박현주 회장. |
이 때문인지 얼마 전 박현주 회장은 올해를 미래에셋 글로벌화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국내보다는 해외로 눈을 돌리겠다는 뜻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문제는 다른 계열사로도 그대로 전파된다.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곳은 미래에셋운용 스타일의 공격적인 주식투자로 자산을 운용하다 막대한 손실을 본 미래에셋생명이다. 증자로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계약자의 신뢰를 잃은 여파가 작지 않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미래에셋증권이다. 미래에셋펀드가 안 팔리면서 최대 수익원인 펀드 판매수수료가 급감했다. 올 들어서는 정부가 펀드 판매수수료까지 인하하면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PEF(사모펀드) 등 투자은행(IB)부문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산가치 급락으로 시원치 않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타격은 미래에셋의 자산관리를 받길 원하는 투자자가 이제 많지 않다는 점이다.
미래에셋증권에 가도 온통 상품은 미래에셋펀드뿐이다. 미래에셋증권 펀드의 95% 이상이 미래에셋 계열사의 주식 관련 상품일 정도로 미래에셋은 좀처럼 유례를 찾기 어려운 폐쇄적 상품 라인업을 갖고 있다. 미래에셋증권 측은 “미래에셋펀드의 우수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아직도 미래에셋펀드로 쓴맛을 톡톡히 본 투자자에게 미래에셋 브랜드가 반가울지는 미지수다.
이는 또 다른 주력상품인 퇴직연금에서도 마찬가지다. 미래에셋이 잘나갈 때야 미래에셋펀드를 통한 퇴직연금 매력도 높았다. 하지만 이미 우리나라 근로자 상당수가 오랜 기간 쌓아온 연금자산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한순간에 반 토막이 된 해외사례를 지켜봤다. 퇴직연금에 증권업계 최고수준의 자금과 인력을 투자했음에도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
미래에셋 경영구조의 문제도 단골 화두다. 물론 미래에셋 측은 “전혀 문제없다”고 말하지만, 밖에서 보는 시각은 다르다. 한마디로 압축하면 ‘미래에셋은 과거 박현주 지점장 시절의 동원증권 압구정지점이 극단적으로 팽창한 모습’으로 요약된다. 자산운용부문은 구재상 사장, 증권부문은 최현만 부회장이 거의 전권을 갖고 있지만, 이들은 철저히 박현주 회장의 복심(腹心)을 따른다. 달리 표현하면 모든 권력이 박 회장을 비롯한 몇몇 측근에 집중된 셈이다. 조직이 확대될수록 사람이 아닌 시스템에 의해 경영되도록 해야 하지만 아직 미래에셋은 몇몇 사람에 의해 경영되는 회사로 비치고 있다.
물론 지난 11년간 미래에셋이 쌓아온 탑은 결코 작지 않다. 수차례 난관을 극복해 온 박현주 회장과 창업그룹의 능력을 과소평가할 때도 아직 아니다. 무엇보다 금융업계 통틀어 가장 활발하고 적극적인 사회공헌활동을 벌이고 있는 점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직도 미래에셋은 수십조 원에 달하는 국민의 ‘미래’를 위탁받고 있고, 국내는 물론 아시아 증시에서의 영향력도 지대하다. 미래에셋의 ‘현재’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다. 이번 난관을 성공적으로 극복해야만 미래에셋은 물론 투자자도, 그리고 시장도 모두 웃을 수 있을 전망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