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의 강도는 한층 세졌다. 보폭도 한층 넓어졌다. 진보논객과는 이미 손을 맞잡았다. 연대설의 대상인 보수진영에 러브콜을 받는 정황도 포착됐다. 요지부동인 지지도는 그의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보수 유턴의 갈림길에 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얘기다. 안 대표는 ‘보수 유턴이냐, 제3세력이냐’의 갈림길에 섰다. 안 대표가 보수 합류를 택하면, 반문(반문재인) 연대의 지각변동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쉽지 않은 길이다. 이마저도 실패할 땐 안 대표는 ‘정치적 퇴장’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6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3차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모습. 사진=박은숙 기자
8월 정국에서 보수진영의 분위기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그 중심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당 지지도는 상승 추세로 바뀌었다. 전광훈발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문재인 대통령 지지도가 반등했지만, 8월 정국을 흔들었던 이슈는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데드크로스(지지도 역전 현상)였다. 야권 한 관계자는 “박근혜 탄핵 이후 연패를 했던 보수진영에 해볼 만하다는 시그널을 준 계기”라고 했다.
그러자 보수진영은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 판 키우기에 시동을 걸었다. 지지도 상승 이후 통합당이 꺼낸 것은 진보의 전유물인 ‘국민참여경선’이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8월 23일 언론 인터뷰에서 “많은 국민이 참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TV조선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인 ‘미스트롯’을 언급, “눈에 잘 안 띄던 사람이 재평가되고 인기 있는 가수가 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기존 통합당 룰인 ‘당원투표 50%+국민 여론조사 50%’를 사실상 폐기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이는 윤희숙 의원을 비롯한 신진 정치인을 후보로 내세울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됐다.
여기서 정치권이 주목한 대목은 따로 있다. 통합당이 국민참여경선 채택 시 안철수 대표 등 중도진영을 포함한 제3세력에도 문호가 개방된다는 점이다. 특히 주 원내대표의 ‘미스트롯’ 방식 도입 시사 발언은 통합당과 국민의당의 정책연대가 하나둘씩 늘어나는 시점에서 나왔다. 두 당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탄압 금지 및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 공동 결의 △태양광 사업에 대한 국정조사 등에서 공조행보를 펼쳤다. 여의도 정치권에선 “안 대표와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발언을 바꿔도 모를 정도”라는 말까지 나왔다.
국민의당 내부에서도 기류 변화가 엿보였다. 8월 초만 해도 안 대표 측근들은 통합당과의 연대 등에 대해 “현재 검토하고 있지 않다(이태규 의원)”고 선을 그었지만, 최근에는 “좀 더 진지하게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권은희 원내대표)”와 같은 긍정론도 부상했다.
개별 의원의 접촉설도 포착됐다. 국회의원들의 연구단체인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이 안 대표를 특별 강연자로 삼고초려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 8월 여의도 일대에 퍼졌다. 장제원 통합당 의원이 주도하는 이 모임은 여야 대선주자들의 릴레이 초청을 예고한 바 있다. 여야가 함께하는 초당적 모임이지만 장 의원이 이끄는 만큼, 여의도에선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이 보수 새판 짜기의 분수령으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도 일찌감치 제기됐다.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은 21대 국회 출범 이후 특별강연자로 보수 인사인 원희룡 제주도 지사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각각 초청했다.
첫 번째 특별강연자로 나선 원 지사는 6월 9일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에서 “대한민국 보수의 이름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유전자”라며 “진보의 아류가 돼선 영원히 2등이고, 영원히 집권할 수 없다”고 밝혔다. 차기 대권 도전의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읽혔다.
두 번째 특별강연자인 오 전 시장은 7월 7일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에서 ‘서울 반값 아파트’ 공급론을 설파했다. 그는 “한때 반값 아파트를 공급했는데, 지금 얼마에 거래되는지 확인해보라”며 “이명박(MB) 정부 때 성공했던 정책인데, 자존심이 강해서 (현 정부는)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오세훈표 부동산 정책으로 문재인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것이다. 오 전 시장은 이 자리에서 문재인 정부를 향해 “헛발질만 한다”고 비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이 2016년 3월 10일 ‘김종필 증언록’ 출판 기념회에 참석한 모습. 사진=일요신문DB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이 이르면 9월, 늦어도 올해 하반기 내에 안 대표를 특별강연자로 초청할 경우 통합당과 국민의당의 연대 속도는 한층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양측의 연대 강도에 따라 ‘안철수 보수통합 후보론’이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 이 경우 통합당과 국민의당은 ‘선 서울시장 연대→후 보수대통합’ 플랜을 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회 한 보좌관은 “차기 대선 직전 막 오를 보수대통합 시험대는 다름 아닌 ‘안철수 카드’일 것”이라고 전했다.
국민의당도 당 차원에선 손해 보는 게임은 아니다.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의 8월 3주 차(지난 18∼20일 조사·21일 결과 공개·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정례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당 지지도는 고작 4%에 불과했다. 지역과 세대, 직업별, 이념성향별 등 세부 조사에서도 모두 한 자릿수를 기록했다. 한국 사회를 가르는 진영 논리에 대한 비판 여론은 커졌지만, 정작 다수의 국민은 중도정당을 표방한 국민의당을 외면했다.
관전 포인트는 대권잠룡인 안 대표의 ‘서울시장 불쏘시개론’ 수용 여부다. ‘안철수 보수통합 후보론’은 반문연대를 위한 일종의 방아쇠다. 4연패를 당한 통합당도, 생존이 불투명한 국민의당도 ‘안철수 카드’는 천군만마다. 176석의 거여에 맞설 보수대통합 만들기는 내년 4월 재보선과 2020년 3·9 대선, 6·1 지방선거를 이길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다만 안 대표 개인에게는 ‘위험한 도박’이다. 선거 패배는 곧 ‘정치적 생명의 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선거는 패해도 남는 선거판이 아니다. 2위를 해도 최악은 피할 수 있는 정치적 포지션도 아니다.
내년 4월 재보선은 문재인 대통령 집권 5년 차에 치러진다. 여당의 입법 독주와 부동산 실정, 청와대 인사 실패 논란 등의 반사이익으로 통합당의 기세는 어느 때보다 세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의 미투 파동으로 열린다. 야권에 불리한 판세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 대표가 패할 땐 정치적 내상은 상상 이상이다.
더구나 안 대표는 2년 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지만, 자유한국당(현 통합당) 후보로 나섰던 김문수 전 의원에게조차 밀리면서 3위로 미끄러졌다.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안철수 서울시장 출마’에 대해 “또 나오겠느냐”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최악 땐 ‘정계 은퇴’ 압박에 시달릴 수도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지면 범보수 대선주자 노릇을 할 수 있겠느냐”라며 “보수 재건도 중도 재건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안 대표가 반문 연대를 매개로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정치적 행보를 가속화, 연말까지 몸값 높이기에 나설 것으로 전망한다. 진중권 전 교수와 유튜브 대담을 진행하는 게 대표적이다. 보수 통합 후보론에 불이 지펴진 상황에서 안 대표는 진보 논객과 협공 작전을 연일 펼치고 있다. 일각에선 안 대표의 궁극적인 정치적 포지션이 반문 연대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반문 연대는 안 대표가 2015년 말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탈당 이후 이어온 정치 기조 중 하나다.
문제는 반문 연대의 ‘딜레마’다. 안 대표는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장 시절이던 지난 2월 반문 연대론에 대해 “일리가 있다고 보지만, 개혁의 길을 가야 한다”며 거부한 바 있다. 당시 국민의당은 4·15 총선을 앞두고 일부 의원들의 ‘통합당 이적설’과 ‘통합당과의 선거연대설’에 휩싸였을 때다. 그는 귀국 당시를 언급하며 “실용적 중도 정치의 길을 가겠다고 말씀을 드렸다”며 “이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사즉생의 각오를 밝혔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안 대표가 반문 프레임에 들어가는 순간, 그나마 남았던 개혁성도 없어질 것”이라며 “정치적 명분을 중시하는 그가 보수진영의 서울시장 후보로 나설지도 의문”이라며 대선 직행 가능성에 한 표를 던졌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