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대로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가능한 모든 대응을 할 겁니다. 이미 법적 검토도 끝났고, 구단을 상대로 싸울 자료도 다 모아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선수를 죽일 수는 없는 겁니다. 너무 억울해서 농구를 접는 한이 있어도 제대로 대응할 생각입니다.”
김승현의 부친 김찬호 씨는 말을 아끼면서도 오리온스 구단에 대한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특히 심용섭 오리온스 단장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불신감을 나타냈다.
먼저 가까운 시일 내에 법적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제보내용부터 확인했다. 김 씨는 “소송은 반드시 한다. 그리고 법적 검토도 다 끝났다. 단 아직 (김)승현이가 선수이고, 또 일이 커졌을 경우 승현이에 대한 오리온스 및 KBL(한국농구연맹) 차원의 보복이 걱정돼 실행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즉 법의 힘을 빌려서라도 김승현이 강제로 계약까지 파기당하고, 또 그 과정에서 수모를 겪고, 제재를 당한 1년 전 ‘이면계약 파문’과 올해 연봉삭감 불이익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다. 동국대를 졸업하고 2001~2002시즌부터 프로에 뛰어든 김승현은 최고의 기량으로 농구팬들을 매료시키며 오리온스의 ‘꼴찌에서 우승’ 신화를 이끌었다. 실력과 인기 모두 최고였다. 이후에도 오리온스를 강팀으로 이끌었고,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는 20년 만의 한국 우승의 주역이 되기도 했다. 2006년 김승현이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을 획득하자 그를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다른 구단의 치열한 로비가 있었지만 샐러리캡과 KBL 규정상 여의치 않았고, 오리온스가 파격적인 제안을 해 김승현을 잡아두는 데 성공했다. 당시 연봉은 4억 3000만 원. 하지만 이는 무늬에 불과했다. 당시만 해도 뒷돈거래가 일반화돼 있었고, 김승현이 연봉의 두 배가 넘는 돈을 보장받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2008년 여름 KBL은 자정선언을 통해 ‘뒷돈 거래 문화’를 없애기로 했고, 김승현은 지난해 연봉협상 과정에서 2006년 약속했던 돈을 지급하지 않으려는 오리온스를 상대로 이면계약서 공개라는 초강수를 두며 버텼다. 이때 밝혀진 실제 연봉은 10억 5000만 원. 예전 소문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큰 파문이 일었고 다급해진 김승현-오리온스-KBL은 다시 이면계약을 부인하고, 적당히 제재를 주고받는 선에서 사태를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김승현의 연봉은 6억 원이 됐다. 고질적인 허리부상에 마음까지 상한 김승현은 2009~2010시즌 54경기 중 25경기 출전에 그치며 기대에 못 미쳤다. 그리고 올 시즌 과거 일을 고려해 6억 원 동결을 요구한 김승현과 50% 삭감 카드를 들고 나온 오리온스는 다시 갈등을 빚었고, KBL의 심사를 거쳐 지난 7월 9일 김승현은 마지못해 3억 원에 사인을 한 것이다. 말이 3억 원이지 옵션 9000만 원은 받는다는 보장이 없어 사실상 2억 1000만 원이다.
쉽게 말해 이면계약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10억 5000만 원을 받다가 2년 만에 졸지에 2억 1000만 원으로 수입이 준 것이다. 역시 농구인인 제보자의 말에 따르면 “내가 김승현이라도 이런 상황이라면 운동을 할 기분이 안 날” 상황이 된 것이다.
“이해할 수 없고, 용서가 안 되는 부분은 충분히 협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었는데 오리온스가 너무 심하게 했다는 겁니다.”
김찬호 씨는 구단의 처사를 맹비난했다. 즉 KBL의 자정선언 이후 다른 구단들은 뒷돈을 주던 스타플레이어와 협의해 타협점을 찾았는데 오리온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심지어 이면계약 파문이 터지기 전 김승현 스스로 8억 원으로 연봉을 낮춰 제안했는데도 심용섭 단장이 무자비하게 강수로 일관해 상황을 최악으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또 올해도 오리온스 구단이 이전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대폭 삭감만을 고수한 것에 분개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이런 상황에서 김승현이 구단을 위해 열심히 뛰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다른 구단으로부터 온 구체적인 트레이드 안까지 거부했다는 것이다(<일요신문>은 A 구단 감독이 직접 오리온스 단장을 찾아가 김승현을 달라고 했고, 그 자리에서 “트레이드는 없다. 데리고 있으면서 죽이겠다”는 단장의 발언을 A 구단 감독으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이건 뭐 선수를 죽이자는 얘기밖에는 안 되죠. 까불지 말고 무조건 구단 말에 복종하라는 위압적인 태도 아닙니까?”
김찬호 씨는 새로운 사실도 공개했다. 원래 2011년이면 오리온스와의 5년 계약이 만료되는 것으로 알려진 김승현이 ‘시즌당 최소 27경기를 뛰어야만 당해 시즌을 뛴 것으로 인정한다’는 KBL의 규정 때문에 2012년이 돼야 FA가 된다는 것이다.
“현재 그동안 오리온스와의 각종 계약 과정에 관련된 법적 효력이 있는 서류들, 그리고 오리온스 및 KBL과 관련된 각종 문제를 하나씩 자료화해서 갖추고 있습니다. 법이 안 되면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세상에 알릴 겁니다.”
확실한 것은 김승현이 이미 오리온스와는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오리온스에서 정상적인 선수생활을 하기는 힘들다는 사실이다. ‘김승현 vs 오리온스의 법적공방’이 예고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프로농구가 1년 전의 이면계약 파문을 넘어서는 소동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부상 탓에 국가대표 합숙훈련에도 참가하지 못하고 있는 김승현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하고 있다. 지난해 입었던 상처가 워낙 큰 탓이다. 하지만 지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돈을 떠나 오리온스만 아니라면 어디서든 열심히 운동하겠다”는 말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
“보복 발언? 그런 식으로 말 안했다”
김승현 측의 격앙된 반응에 대해 오리온스 구단의 반응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노골적인 비난의 대상이 된 심용섭 오리온스 단장의 설명을 꼭 듣고 싶었다. 전화로 연락이 된 심용섭 단장은 먼저 김승현 및 부친 김찬호 씨가 이번 연봉협상 결과에 대해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상황 설명에 “격앙될 것이 무엇이 있느냐? 앞으로 자기가 열심히 해서 자신의 주가를 올리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연봉계약 후 김승현 측과 연락을 했느냐는 질문에는 “주로 직원들이 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접촉이 없었다고 밝혔다.
가장 문제가 될 만한 발언에 대해서도 확인을 요구했다. 즉 김승현의 트레이드를 요청한 A 구단 감독에게 “데리고 있으면서 죽이겠다”고 말한 것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심 단장은 “트레이드 요구는 한 구단이 아니라 세 군데 정도 된다. 그리고 트레이드라는 게 조건이 맞아야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냥 (김)승현이만 내줄 수도 없는 것이고 우리도 선수를 받아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 부상이 있는 승현이를 데려가면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선수를 줄 만한 구단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타 구단 감독에게 ‘데리고 있으면서 죽이겠다’는 식으로는 말하지는 않았다. 현 상태에서 김승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오리온스에 남아서 열심히 운동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 자신만 손해 보는 것이라고 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심 단장은 김승현과의 관계개선 가능성에 대해서는 “구단을 책임지는 단장으로 당연히 선수를 만나고 좋은 관계를 맺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수로서 김승현이 몸을 만들어 운동을 열심히 하고 코트에서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