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필라델피아의 로커스트가와 11번가 교차로에서 발견된 토인비 타일. 작은 사진은 미국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는 다양한 토인비 타일들. |
‘수수께끼 ‘토인비 타일’을 아시나요.’
혹시 앞으로 미국을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걷는 도중에 아스팔트 위를 한 번 눈여겨보라. 운이 좋다면 자동차 번호판 크기의 작은 타일을 발견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아스팔트 위에 박혀 있는 ‘토인비 타일’이라고 불리는 이 정체불명의 타일은 30년이 넘도록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수수께끼다. 누가 만들었는지, 왜 아스팔트 위에 박아 놓았는지, 그리고 그 의미는 무엇인지 모든 것이 죄다 비밀에 싸여 있어 미국인들의 호기심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 80년대 처음 목격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타일은 현재 미국 내 24개 주요 도시의 도로 한복판이나 교차로, 혹은 횡단보도나 보행자 도로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브라질, 칠레 등 남미에서도 간혹 발견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심오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장난질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타일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타일에 찍혀 있는 네 줄의 문구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숨어 있는 걸까.
이 자그마한 타일이 ‘토인비 타일’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타일에 찍혀 있는 수상한 문구 때문이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의 타일에는 모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스텐실로 찍혀 있다.
TOYNBEE IDEA
IN KUBRICK’S 2001
RESURRECT DEAD
ON PLANET JUPITER
이 문구들을 위에서부터 그냥 순서대로 직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토인비 사상 / 큐브릭의 2001 / 죽은 자들의 부활 / 목성에서).
이 수상한 문구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여태껏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어떤 사람들은 정치적 음모가 깔려 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종교집단의 횡포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미래의 우주여행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문구를 통해 그나마 명확하게 추측해볼 수 있는 것은 ‘토인비’가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를, 그리고 ‘큐브릭의 2001’이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의미한다는 것 정도다.
1968년 제작된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시대를 앞선 획기적인 특수 효과와 충격적인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SF 명작으로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렇다면 토인비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우선 영화의 내용을 살펴보자. 영화는 먼 미래인 2001년 목성을 탐사하러 가는 우주비행사들을 둘러싼 음모를 소재로 하고 있으며,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모든 사람이 죽고 홀로 목성에 도달한 주인공이 침대에 누운 채로 점차 늙다가 마침내 다시 태아로 돌아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말하자면 다시 태어나는 것, 즉 부활(윤회)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 관련해서 토인비 타일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토인비도 생전에 이와 비슷한 사상을 피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령 레이 브래드베리의 공상과학 단편소설인 <토인비 컨벡터>에도 언급된 토인비의 사상, 즉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 미래를 만나야 한다. 더 나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하고,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을 목표로 살아야 한다. 닿을 수 없는 것에 닿기 위해서 그 이상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큐브릭의 영화에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 목성을 지배하려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사람들은 토인비의 저서 <경험>에도 ‘윤회’를 의미하는 비슷한 내용이 실려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아서 C. 클라크의 단편소설 <쥬피터 V>에서도 큐브릭의 영화와 토인비가 여러 차례 언급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럼 타일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가장 그럴 듯한 주장은 1983년 데이비드 마멧의 연극 시나리오인 <4 A.M>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연극에서는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가 큐브릭 영화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 한 청취자와 통화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전화를 건 청취자는 큐브릭의 영화가 토인비의 책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목성으로 인류를 이주시키려는 비밀스런 계획을 알고 있다는 다소 황당한 주장을 해서 진행자를 난처하게 만든다.
물론 이 전화 통화 내용은 마멧이 꾸며낸 연극 속의 설정이었다. 이에 대해 마멧은 훗날 “아마도 토인비 타일은 이 연극을 본떠서 만든 오마주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렇다면 누가, 왜 이런 타일을 만들었던 걸까.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필라델피아에서 사회사업가 겸 목수로 일했던 제임스 모라스코였다. 2003년 사망한 그는 마멧의 시나리오 <4 A.M>이 발표됐던 같은 해인 1983년,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비슷한 주장을 했다. 당시 그는 “목성에서 인류를 부활시키면 목성을 정복할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자신이 이 계획을 위해서 ‘마이너리티 어소시에이션’이라는 ‘목성 정복을 준비하는 단체’까지 설립했으며, 죽은 자들을 목성으로 보내면 인류가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모라스코는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토인비의 사상 중 하나인 윤회사상, 즉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생성과 소멸 과정을 거치는 유기체라는 이론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토인비의 이런 윤화사상이 큐브릭의 영화에서 묘사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을 바탕으로 앞서 직역한 타일의 문구를 의역해보면 이 정도가 될 것이다. ‘목성에서 죽은 자들이 부활하는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타난 토인비 사상.’
이에 일부 사람들은 큐브릭 타일을 만든 사람은 분명히 모라스코가 맞으며, 토인비 타일이 유독 필라델피아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은 여전히 있다. 모라스코가 사망한 2003년 이후에도 토인비 타일은 필라델피아뿐만 아니라 미 전역에서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으며, 과연 70대 노인이었던 그가 혼자, 그것도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타일을 박고 다니는 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사업가 월급으로는 그런 여비를 충당하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세월이 지나면서 타일의 크기와 모양, 그리고 글씨체와 문구 내용도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토인비 타일을 흉내내는 모방작들일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지난 2005년에는 필라델피아의 예술가 겸 연구가인 저스틴 도어가 토인비 타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평소 토인비 타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 미스터리를 반드시 풀고야 말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하지만 이 다큐는 아직까지 완성되지 않고 있으며, 웹사이트 역시 2006년 이후 닫혀 있어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타일이 발견된 곳은 필라델피아를 비롯해 뉴욕, 워싱턴 D.C, 시카고, 보스턴 등이며, 칠레 산티아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등 남미에서도 간혹 발견되고 있다.
세월이 오래된 타일들은 자동차 바퀴나 사람들 발자국에 밟혀서 형체가 거의 사라지거나 또는 아스팔트 재포장으로 덮혀 아예 없어졌으며, 2000년대 들어 새롭게 만들어진 타일들은 그나마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한편 타일을 아스팔트에 박는 것은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닌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타일을 타르 종이로 감싼 후 이른 새벽 인적이 드물 때 몰래 도로 한복판에 올려놓기만 하면 된다는 것. 그러면 여러 주에 걸쳐서 자동차들이 이 타일을 밟고 지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아스팔트에 박히게 되며, 시간이 지나면서 타르는 사라지고 타일에 적힌 메시지가 나타난다.
현재까지 발견된 타일은 총 250개 정도로 추산되고 있으며, 모양과 글씨체가 시간이 갈수록 다양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일각에서는 반달리즘(문화·예술 및 공공시설을 파괴하는 행위 또는 그러한 경향)의 한 형태로 발전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에 시카고는 토인비 타일을 공공재인 도로를 훼손시키는 ‘타일 반달리즘’으로 규정하고 보이는 대로 모두 제거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태다.
토인비 타일의 정체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는 이상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타일이 발견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