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미지역에서 대규모 마약조직을 운영해온 한국인 마약왕이 7년간의 추적끝에 적발됐다. 이는 한국인이 국제 마약조직을 구성해 대륙간 마약거래를 감행한 최초의 사례로 남게 됐다. |
그런데 최근 한 한국인이 마약범죄의 근원지라 할 수 있는 남미지역에서 대규모 마약조직을 운영해오다 적발돼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국제마약범죄 무대에 한국인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셈이다.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는 지난 6월 13일 선량한 교포들을 운반책으로 이용해 남미 등지에서 대규모 코카인 밀수에 나선 조 아무개 씨(59)를 구속기소했다. 조 씨가 국제 마약시장에 밀수하다 적발된 코카인의 양은 무려 48.5kg에 달하는 규모였다. 이는 160만 명(1회 투약 분:0.03g)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이다. 소매 거래가로 따지면 무려 1600억 원에 해당하는 국내 마약범죄 역사상 역대 최대 규모다.
불과 20여 년 전, 한 평범한 기술자였던 한국인 조 씨는 어느 순간 전 세계에서도 악명 높은 남미 마약범죄 무대의 중심에 서 있게 됐다. 과연 20여년간 그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조 씨가 처음 남미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80년대의 일이었다. 그는 한 업체의 선박냉동 기사로 입사해 남미의 소국 수리남에서 8년간 활동하게 됐다. 수리남은 네덜란드령의 자치국가로 다른 남미국가와 마찬가지로 이미 오래전부터 마약범죄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지역이었다.
조 씨는 이 당시부터 수리남인들과 인맥을 쌓기 시작한다. 특정 인종만이 아닌 각종 인종들과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향후 범죄에 필요한 기반을 탄탄하게 다지게 된 것이다. 검찰은 조 씨의 농익은 범행행태로 볼 때 그가 이 당시부터 마약거래를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 씨는 수리남에서 8년간 장기 체류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게 된다. 그는 귀국 후 잠시 국내 건축업계에서 활동했다. 1994년 당시 그는 사람들을 끌어 모아 빌라신축 사업을 벌여 투자자의 투자금 10억 원을 챙기는 등 사기행각을 벌이고 도주하기도 했다. 지명수배로 국내서 활동이 어렵게 되자 그는 다시금 수리남으로 출국했다. 그리고 얼마 후 한국 국적을 버리고 현지 국적을 취득하기에 이른다.
조국을 등지고 수리남에서 활동한 조 씨는 자신의 인적네트워크를 총동원해 본격적으로 마약밀매에 뛰어들게 된다. 2002년 코카인 20kg 대륙간 밀수에 가담한 그는 이를 기점으로 자신의 독자적인 마약범죄조직을 꾸린다. 그는 대륙간 대규모 마약밀매를 위해 한국교포, 수리남인, 네덜란드인 등 다국적 조직원들을 규합해 대규모 마약조직을 설립했다. 조 씨는 조직원을 구입책, 판매책, 운반모집책 등으로 세분화하는 등 마치 MNC(다국적기업)를 연상케 하는 체계적인 조직으로 성장시켰다.
그의 마약조직은 남미 최대의 마약범죄조직으로 알려진 ‘칼리카르텔’과 연계된 것으로 검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일개 한국인이 세계적인 마약범죄조직과 연결됐다는 것은 그 이전에는 없었던 매우 놀라운 일이다.
조 씨는 2004년~2005년 사이, 구입책을 통해 남미 등지에서 코카인을 대량 확보했다. 그는 이렇게 확보된 코카인을 유럽 등 세계시장에 내다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조 씨는 자신의 신변확보를 위해 자신을 대신해 코카인을 해외에 유통시킬 운반책을 모집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마약운반’을 ‘보석원석운반’이라고 속여 가정주부, 조경기술자, 용접공, 미용사 등 생활이 넉넉하지 않고 세상물정에 어두운 교포들을 운반책으로 끌어들였다. 운반에 성공하면 400만~500만 원을 준다는 솔깃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의 범죄는 2004년과 2005년 두 차례에 걸쳐 발각된다. 2004년 운반책을 통해 37kg의 코카인을 프랑스로 보내려다 현지 경찰에 발각됐고, 2005년에는 페루에서 스페인으로 11.5kg의 코카인을 보내려다 페루 현지 경찰에 발각됐다. 하지만 조 씨는 당시 체포되지 않았다. 가방 속 ‘코카인’이 순전히 ‘보석 원석’인 줄만 알았던 무고한 운반책들만 고스란히 누명을 쓰게 된 것이다.
이후에도 조 씨는 남미에서 또 다른 국제 마약범죄 무대인 중국으로 옮겨 마약밀매를 감행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국내에서 활동하는 그의 운반총책 한 명이 검거되면서 조 씨의 실체가 국내 검찰에 파악된 것이다. 검찰은 지난 2005년 조 씨 검거를 위해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의뢰했다. 이후 검찰은 그가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뒤 2009년 그를 브라질로 유인해 현지 경찰로 하여금 검거에 성공한다. 그 해 8월 검찰은 범죄인인도청구를 브라질 사법당국에 신청했다. 결국 지난 5월 말 조 씨는 국내에 압송됐다. 검찰이 7년간의 끈질긴 추적 끝에 국내 역사상 최대 규모 코카인 밀매범을 검거하는 순간이었다.
이번 사건은 국내 마약수사 역사상 한국인이 국제 마약조직을 구성해 대륙간 마약거래를 감행한 최초의 사례로 남게 됐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무심코 건네받은 가방 허걱~ 마약이 한 보따리
2004년 조 씨의 꼬임에 넘어가 프랑스로 코카인 37kg을 나르다 적발된 주부 장 아무개 씨(41)는 자신의 가방에 마약이 들어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프랑스 현지서 현행범으로 적발된 장 씨는 프랑스 외딴섬에 위치한 차가운 감옥에서 2년간 억울한 옥고를 치렀다. 그의 사연은 지난 2006년 KBS 프로그램 ‘추적 60분’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2005년에는 한국인 이 아무개 씨(46)가 조 씨에게 속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조 씨의 부탁을 받고 페루에서 스페인으로 물건을 나르려 한 이 씨는 출국지인 페루에서 마약소지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이 씨 역시 자신의 가방에 들어있는 물건이 단지 원석인 줄만 알았지, 마약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체포된 이 씨는 식사마저 자비로 부담할 정도로 열악하기로 유명한 페루 교도소에서 5년간 처참한 수감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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