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마약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반드시 되풀이되는 현상이 몇 가지 있다. 우선 한 명만 검거돼도 경찰이나 검찰이 ‘연예인 리스트’를 확보했다는 우려 섞인 전망이 쏟아지고, 여론 물타기 용으로 연예인 마약 사건을 활용한다는 의혹과 몇몇 연예인은 특혜를 받아 마약 혐의가 있음에도 기소되지 않았다는 의혹들이 연이어 불거진다. 빅뱅의 지드래곤과 슈프림팀의 이센스로 시작된 연예계 대마초 강풍 역시 유사한 현상을 동반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 이유가 검·경의 연예인 마약 수사가 일반 마약 수사와는 다른 점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연예인 마약 수사에 참여했던 경찰들과 전직 마약업자로부터 연예인 마약 수사의 실체를 들어봤다.
# ‘리스트’ 믿다가 곤란 겪기도
우선 ‘마약 연예인 리스트’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 형사들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그렇지만 언론을 통해 제기되는 ‘마약 연예인 리스트’와는 분명 차이점이 있다. 서울경찰청 소속의 한 형사는 이런 얘길 들려줬다.
“마약 수사는 정말 다양한 정보망을 활용해 관련 정보를 수집한다. 이 과정에서 연예인 이름도 많이 거론되는데 가만 보면 자주 거론되는 연예인들이 있다. 그럴 경우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고, 집중 관찰 대상으로 정리된다. 서류화된 양식의 리스트는 없지만 마약 수사팀이라면 어디나 그런 연예인 몇 명씩은 다 확보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마약 연예인 리스트’가 수사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진 않는다. 허위 제보가 많아 신뢰성이 낮은 데다 연예인의 경우 소환 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한 데다 방문 마약 투약 검사도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꾸 이름이 거론되는 연예인에겐 다소 곤란한 부분도 있다. 괜한 오해를 사 연예인 마약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수사 대상이 돼 마약 투약 검사를 받고, 해외를 다녀올 때에도 출입국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새 감시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가장 곤란함을 겪은 곳은 서울 마포경찰서다. 2009년 서울경찰청의 연예인 마약 사건이 한창 사회적 이슈가 될 무렵 마포경찰서는 구준엽의 집을 방문해 마약 투약 검사를 했다. 이에 구준엽은 검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기자회견을 자청해 경찰 수사 방식에 불만을 토로했다. 이 자리에서 구준엽은 “연예계에 마약 사건이 터질 때 마다 의심을 받는데 그때마다 수치스럽고 모욕을 당하는 기분이었다”라며 “허위제보에 의존하는 수사로 인해 나뿐 아니라 동료와 선후배들도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항변했다. 결국 구준엽은 또 음성반응이 나와 혐의를 벗었다. 2007년엔 수사를 진행하기도 전에 일이 터져버렸다. 신하균이 마약 수사 선상에 올랐다는 기사가 나와 버린 것. 이에 신하균은 자진해서 마포경찰서에 출두해 마약 투약 검사를 받았고 역시 음성 반응이 나왔다.
# 기획수사? 미션 임파서블!
최근 불거진 연예인 마약 수사 관련 소문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정부가 한미 FTA 논란에 대한 ‘여론 물타기’ 용으로 연예인 마약 수사를 대대적으로 진행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바탕으로 인기 걸그룹 멤버 A가 마약 수사 선상에 올랐다는 악성 루머까지 떠돌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형사들은 하나같이 “터무니없는 얘기”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지만 실제로 이런 의혹을 살 만한 사례들이 종종 있어왔다. 특히 용두사미로 끝난 고 장자연 사건의 수사 결과 발표 직후 터진 주지훈 마약 사건은 경찰이 무리했다는 지적도 많았다. 기소도 이뤄지기 전에 경찰이 주지훈의 이름을 거론하며 연예인 마약 수사 중간발표를 한 데다 주지훈은 마약 투약 검사에서 음성 반응이 나왔음에도 마약 투약을 자백한 상태였다. 이런 의혹에 대해 서울 서대문경찰서 소속의 한 형사는 “특정 사례를 놓고 얘기하긴 그렇지만 대부분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 연예인 정보원은 없어
취재 과정에서 마약 관련 범죄로 여러 차례 구속된 바 있는 전직 마약업자 B 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마약 수사가 생각보다 복잡하다고 얘기한다.
“일반적인 ‘작업’(마약수사)은 상당히 복잡하다. 검·경이 자체적으로 마약 투약자와 판매자 관련 정보를 수집해 검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야당’(마약 관련 일을 하는 검찰 정보원)을 보호해주며 그들에게 정보를 받아 작업하는 일이 많다. 검거된 마약 사범도 어떤 정보를 내 놓느냐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고. 그러다 보니 기획수사도 많다.”
그러나 연예인 마약 수사는 상황이 다르다고 한다.
“만약 연예인이나 연예관계자 가운데 ‘야당’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그런 얘긴 못 들어봤다. 마약 업계에선 이 ‘야당’이 누군지 잘 알려져 있다. 즉 연예인과 관계가 없다는 얘기다.”
B 씨가 들려준 검찰의 마약 수사 관련 내용은 너무 복잡해서 이해가 어려울 정도였다. 만약 인기 연예인 가운데 마약 투약 혐의가 있는 이들이 많다면 검찰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겠지만 지금까지는 다른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연루 연예인이 드러나 검거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게 B 씨의 설명이다.
몇몇 연예인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배우 C의 경우 주지훈과 함께 수사 선상에 올랐지만 기소되지 않았다. 또한 빅뱅의 지드래곤이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부분도 의혹이 뒤따른다. 검찰은 “모발 검사 결과 양성 판정이 나왔지만 초범으로 상습 투약이 아니고 흡연량도 적다”며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그렇지만 역시 초범에 상습 투약이 아닌 데다 아예 음성반응이 나온 주지훈은 기소돼 집행유예를 받았다. B 씨는 이 부분 역시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더 큰 건수를 불었다면 특혜를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드래곤 이후 마약 수사가 잠잠하지 않았나. 극미량의 음성 반응으로 기소유예되는 사례는 흔하다. 그가 연예인이라고 해서 이상하게 볼 것은 아니다”
음성반응이 나타난 배우 C의 경우에 대해선 서울경찰청 소속 형사가 “연예인은 마약 공급책까지 어느 정도 드러난다고 해도 음성반응이 나올 경우 기소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