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때문에 공급 계속 미뤄지는 상황…후분양 선택지도 미래 상황 불확실성 커
부동산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전국에서 7월 한 달 동안 3만 5000여 가구가 일반분양을 실시할 예정이다. 7월 일반분양 가구수는 전년 동기 대비 약 78% 늘어난 수치다. 정부가 6월 분양가 상한제와 고분양가심사제 등의 개편을 발표하면서 분양 일정을 미루고 기다리던 단지들의 물량이 몰린 것이다. 그러나 7월 서울 지역의 분양 가구수는 '0'이다. 서울 지역에서 7월 6일 현재 일반 분양이 예정된 3만 1798가구 중 상반기에는 11% 수준인 3575가구만 분양됐고 그나마도 5~6월에 분양된 가구 수는 각각 두 자릿수 남짓으로 ‘공급 절벽’ 상태였다.
문제는 하반기에도 여전히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그나마 동대문구 휘경3구역 주택 재개발(1806가구), 송파구 문정동 힐스테이트e편한세상문정(1265가구), 마포구 마포더클래시(1419가구) 등 규모가 있는 단지들이 각각 8월, 9월, 10월에 일반분양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2022년 하반기 예정된 물량 2만 8223가구 중 약 60%에 달하는 1만 6085가구가 아직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일정을 잡지 못하는 곳들은 동대문구 이문3구역(4321가구)과 이문1구역 래미안(3069가구), 강동구 길동 신동아 1·2차아파트(1299가구), 마포구 마포자이힐스테이트(1121가구)로 전부 대규모 재건축·재개발 단지다.
공급량의 90%를 정비사업에 의존하는 서울 지역 아파트의 경우 분양가에 민감해 당분간 공급 가뭄이 계속되리란 분석이 나온다. 시공사가 분양사업을 하는 경우와 달리 도심에 있는 재정비 사업은 다수 조합원의 이해관계까지 엮여 있다. 원자재값 상승 여파에 따른 공사비 증액분 역시 일반 분양가를 올려서 충당해야 하기 때문에 대다수 재건축·재개발 사업단지 조합들이 분양가를 올리기 위해 분양 일정을 미뤄왔다. 분양 일정을 미룰수록 토지 가격 상승으로 인해 택지비(땅값)를 올려서 산정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6월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를 개편하면서 일부 분양 가격을 올릴 수 있는 여지가 생겼으나 분양가 상승폭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 아파트 공급 일정은 아예 내년으로 넘어갔다. 강남3구 중 올해 하반기 일반분양을 받는 곳은 9월 송파구 문정동 힐스테이트e편한세상문정과 12월 강남구 대치동 구마을 제3지구 재건축(245가구)뿐이다.
서초구 신반포15차를 재건축하는 ‘래미안 원펜타스’는 택지비 감정평가를 높게 받기 위해 올해 5월로 잡혀있던 분양 일정을 내년으로 미뤘다. 서초구 반포주공 1단지 3주구의 경우 서울 지하철 9호선 구반포역과 마주한 데다 4호선 동작역과도 가까운 초역세권으로 일반분양가를 높게 받기 위해 후분양을 선택했다. 문화재 발굴로 일정에 차질을 빚은 송파구 신천동 잠실 진주아파트 역시 후분양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후분양은 공정률 80% 이상인 상태에서 분양이 이뤄지는 것으로 선분양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분양가를 책정할 수 있어 공사비를 감당할 여력이 있는 조합원들에게 유리하다. 상승한 택지비와 원자재 가격 폭등세도 반영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분위기는 미래 상황을 낙관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후분양이 해답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올해 들어 청약 열기가 급격히 식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상반기 서울 민간 아파트 청약 경쟁률도 29.8 대 1로 전년 동기인 164.1 대 1에 비해 크게 줄었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 지역 분양 공급이 이미 크게 줄었는데도 수요가 못 따라온 상황”이라며 “최근 정부가 3기 신도시 사전 청약을 연기한 것도 부동산 구매 지연 신호를 준 것으로 풀이된다. 이미 실수요자들이 집값을 감당할 수가 없는 데다 빚내고 무리해서 집을 산 다음 집값이 오르기를 기대할 수는 더더욱 없는 상태라 당분간 부동산 불패 신화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리 인상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주택 수요자가 후분양 가격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원자재값 상승 속도가 너무 가팔라 건설사들도 수주만 하고 착공하지 않는 경우가 늘었을 정도”라며 “후분양 가격을 주택 수요자들이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후분양으로 갈수록 가격이 높아지게 되는데 실수요자들이 지금처럼 금융비용 부담이 큰 금리 상승기에 선뜻 청약하기 쉽지 않다”며 “분양이 잘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과 그에 따른 리스크도 감안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원자재 값의 폭등과 공사비 증액 등으로 인한 갈등도 분양 지연을 부추기고 있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 재건축 사업이라 불리던 강동구 둔촌 주공아파트 재건축 사업(1만 2032가구)의 경우 시공사업단과 조합이 공사비 증액 문제를 놓고 공사 중단, 법적 공방 등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으며 일반 분양 일정이 뒤로 밀렸다. 은평구 대조1구역도 시공사가 과다한 공사비를 청구했다고 조합 측이 반발해 착공이 지연된 탓에 올해 예정됐던 분양 일정이 내년으로 미뤄졌다.
이와 관련, 부동산플랫폼 직방 한 관계자는 “지금 분양을 지연하는 경우는 원자재값이 너무 올라서 도저히 사업성이 안 보이니까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좀 더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지켜보는 것”이라며 “그러나 내년에 오히려 부동산 시장이 더 안 좋아질 거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라 올해 빨리 분양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지역별로 차이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시장에서는 금리 인상 우려 등으로 관망세가 두드러지는 양상이고 현실적으로 비인기 지역은 분양에 뛰어들기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여전히 시장에서 매매로 매입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시세 대비 분양가가 저렴한 상태기 때문에 강남처럼 미래가치가 있는 분양단지에 대해서는 수요가 있을 조짐”이라고 전망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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