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체를 자신이 사망한 것으로 속여 보험금을 타낸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 7월 11일 서울지방경찰청은 무속인 안 아무개 씨(여·44)와 안 씨의 친언니, 동거남 김 아무개 씨(44), 보험설계사 최 아무개 씨 등 4명을 살인 및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안 씨는 범행 전 거액의 보험 상품에 가입한 뒤 신원 불명의 노숙자를 살해하고 자신이 죽은 것처럼 허위 사망신고를 해 보험금을 타내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더군다나 앞서 안 씨는 파출부 구인 광고를 보고 찾아온 여성 두 명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살해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 및 지인들까지 모두 7명이 가담한 엽기적인 보험사기 행각의 전모를 살펴봤다.
지난해 무속인 안 씨는 부동산 사업을 계획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고정적인 수입원을 마련하기 위해 경기도 평택에 원룸형 빌라를 지어 세를 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안 씨의 생각과 달리 빌라 건축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3층짜리 건물이 채 2층도 완성되지 못하고 올스톱 상태가 됐다. 결국 안 씨는 5억 원대의 빚만 지게 됐고 사채까지 쓰는 신세가 됐다. 이때부터 안 씨는 밤낮없이 사채업자들의 빚 독촉에 시달렸고 무언가 해결책을 마련해야 했다. 결국 안 씨가 선택한 것은 보험 사기였다. 거액의 보험 상품에 가입한 뒤 사망보험금을 타내 빚도 청산하고 모든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계획이었다.
우선 안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보험설계사 최 씨에게 “언제까지 빚에 쪼들리며 살 테냐. 보험금을 타내면 몫을 나눠 주겠다”며 범행에 끌어들였다. 최 씨는 본인이 가진 1억 원의 채무를 탕감해주겠다는 안 씨의 말에 범행에 가담했다. 지난해 11월 안 씨는 최 씨를 통해 사망 시 1억 원과 33억 원의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는 생명보험 상품 2개에 가입했다.
다음 순서로 안 씨는 ‘시체 바꿔치기’의 대상이 될 희생양을 물색했다. 범행대상 물색에는 과거 안 씨가 법률사무소에서 일할 당시 운전기사로 같이 일했던 A 씨가 가담했다.
지난해 12월 A 씨는 안 씨의 지시에 따라 직업소개소에 파출부 모집 광고를 내고 파출부 두 명을 안 씨 집으로 끌어들였다. 경찰조사 결과 안 씨는 이들에게 수면제를 탄 한약을 먹여 살해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 이유는 사망확인 시 외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면제를 이용한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소량의 수면제에 파출부들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안 씨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범행에 실패한 안 씨는 또 다시 범행 대상 물색에 나섰다. 이번에는 연고도 없고 사망하더라도 누구 하나 찾는 이 없는 ‘노숙자’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영등포역 근처 공원에서 안 씨는 자신과 체격이 비슷한 50대 여자 노숙자 B 씨를 유인해 집으로 데려왔다. 안 씨는 B 씨를 샤워 시킨 뒤 식사를 대접하며 친절하게 대했다. 그런 다음 ‘몸에 좋다’며 수면제를 탄 한약을 마시게 했다. 앞선 실패를 경험 삼아 이번엔 치사량에 가까운 수면제 10일 분을 한꺼번에 섞었다.
경찰조사 결과 이밖에도 안 씨는 막걸리를 이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안 씨의 휴대폰 통화내역을 확인해 보니 그날 저녁 8시경 안 씨가 동네 슈퍼에 전화해 막걸리를 배달시켰던 것으로 나타났다. 저녁 8시는 안 씨와 B 씨가 함께 집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대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한약과 함께) 수면제를 갈아 넣을 경우 손쉽게 색깔을 위장할 수 있는 것이 막걸리다. 이 때문에 막걸리를 범행에 이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수면제가 든 한약을 마신 B 씨는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고, 이튿날 안 씨는 B 씨가 숨진 것을 확인했다.
이후 사망처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번 범행에서 사망처리를 담당했던 안 씨의 언니는 B 씨의 시신에 안 씨의 옷을 입혀 위장한 뒤 119에 “동생이 쓰러져 의식이 없다”고 허위 신고를 했다. 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진 B 씨의 시신은 그 자리에서 사망진단서를 발급 받았다. 문제는 병원 측에서 안 씨 언니의 말대로 시체 검안서를 써 줬다는 점이다. 결국 안 씨 일당의 계획대로 B 씨의 시체는 안 씨의 시체로 둔갑돼 사망 처리될 수 있었다.
병원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동생의 사망확인을 받은 안 씨의 언니는 다음날인 2012년 1월 1일 시신을 화장한 뒤 유골을 임진강에 뿌렸다. 이 자리에는 안 씨의 남자친구 김 씨도 자리해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모든 공식 사망 절차를 끝낸 안 씨의 언니는 한 달 뒤인 지난 2월 말께 보험사 두 곳에 사망 보험금을 청구했다. 이 과정에서 안 씨는 보험사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미리 동생과 짜고 수령자를 동생으로 설정해 놓는 치밀함도 보였다. B 보험사로부터 보험금 1억 원을 받은 안 씨의 동생은 본인 몫으로 2500만 원을 챙기고, 사체 처리를 담당했던 안 씨의 언니는 7500만 원을 자기 몫으로 챙겼다.
이후 안 씨는 완전 범죄를 꿈꾸며 나머지 33억 원의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도피행각을 펼쳤다. 안 씨의 도피행각에는 남자친구 김 씨가 함께했다. 또 도피행각에 쓸 대포폰은 운전기사 A 씨가 마련해 주는 등 주변인들의 조직적인 가담 행위가 드러났다. 안 씨와 김 씨는 강원도 강릉, 전남 보성, 광주광역시 등 전국 각지를 돌며 경찰과 보험사의 눈을 피해 다녔다.
완벽한 시체 처리와 보험설계사까지 포섭한 상황에 어느 누구도 안 씨의 범행을 의심할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안 씨 일당의 범행은 보험사에 꼬리가 잡혔다. 보험사는 안 씨가 보험 가입 후 두 차례만 보험료를 납입한 뒤 사망한 것을 수상히 여겼다. 결국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을 미루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경찰의 끈질긴 추적 끝에 안 씨 일당의 범행 전모가 드러났다.
이번 보험사기 사건이 더욱 충격적인 이유는 바로 아무도 찾지 않는 노숙자를 범행대상으로 이용했다는 점이다. 노숙자의 경우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도 누구하나 궁금해 하지 않는다는 씁쓸한 현실을 안 씨는 악용한 것이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