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나의 명확한 항고 취하 이유는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의 ‘이탈’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이기도 했다. 전속계약 효력 정지 본안 재판을 앞둔 피프티 피프티 멤버들은 8월 17일 공개한 첫 입장문 이후 약 2개월 만에 연달아 입장문을 내 어트랙트를 비난해 왔는데, 이 단체 행동에 키나는 이미 빠져있었다. 첫 입장문에서는 키나, 새나, 시오, 아란의 4명 이름이 자필로 모두 적혀있었으나 10월 12일 공개한 두 번째 입장문부터는 전홍준 대표에게 멤버들이 직접 요구하는 문장을 넣으면서도 멤버들의 이름을 표기하지 않았다.
이어 10월 13일 공개한 세 번째 입장문에서 피프티 피프티 측은 멤버들에 대한 어트랙트의 관리 의무 소홀을 중점적으로 지적했다. 새나는 다이어트로 인한 심한 강박과 내부 환경 스트레스로 인한 탈모, 생리 불순을 주장했고 시오는 공황장애와 대인기피증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멤버들 가운데 유일하게 병명이 공개됐던 아란은 지난 1월 급성 담낭염에 걸렸으나 컴백 스케줄로 인해 수술을 받지 못했고, 5월 수술 결과 만성 담낭염 소견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후 약 8주간 휴식을 취하라는 의사의 권고가 있었지만 어트랙트 측이 지속적으로 복귀 여부를 물어 압박했고 자신들에게 사전 고지하지 않은 광고 촬영까지 권유했다고도 덧붙였다.
어트랙트 측에 따르면 키나는 10월 16일 가처분 항고 취하서를 내기 직전 어트랙트 사무실을 찾았다. 눈물로 사죄하며 “소속사로 돌아가고 싶다”고 밝힌 키나의 뜻을 들었다는 전홍준 대표는 “저와 어트랙트는 돌아온 키나를 당연히 받아줄 것”이라며 “일단 자숙의 시간을 가지고, 며칠 푹 쉰 뒤 이후의 일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키나는 타 소속사를 포함해 7년여의 연습생 생활을 해 온 피프티 피프티의 맏언니로 긴 기다림 끝에 데뷔하게 된 것을 가장 행복해 했던 멤버로 알려졌다. 소송 이탈의 이유도 연예 활동에 미련이 없다고 주장한 다른 멤버들과 달리 향후 활동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키나의 이탈은 피프티 피프티 멤버들이 제기한 계약 해지 소송과 상표권 분쟁에서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계약 해지 소송에서 멤버들은 어트랙트에 대해 △수익 항목 누락 등 정산자료 제공 의무 위반 및 회계 불투명성 △멤버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관리 의무 위반 △연예활동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보유하거나 지원할 능력의 부족 등을 들어 해지의 정당성을 주장해 왔는데, 실제 멤버들과 함께한 키나가 어트랙트 측에 힘을 실어주는 주장으로 반박할 경우 재판부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연예인과 소속사 간 전속계약 해지는 신뢰관계가 깨질 경우 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전속계약의 해지가 가능하다. 그런 이유에서 이 점에 주목한 피프티 피프티의 나머지 멤버들이 전홍준 대표와 어트랙트에 대한 신뢰가 회복될 수 없을 만큼 파탄 났다고 주장하기 위해 최근 공개한 비난 입장문들을 근거자료로 활용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어트랙트는 그동안 피프티 피프티 멤버들이 요구한 사안에 대해 일부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최대한 성실히 응한 점과 관리 의무도 충분히 이행해 온 것으로 보인다는 점 등이 앞선 가처분 재판에서 인정된 바 있다. 분쟁 이후에도 멤버들의 복귀와 앞으로의 지원을 꾸준히 호소해 왔던 만큼 멤버들이 주장하는 일방적인 신뢰관계 파탄이 본안 소송에서 배척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피프티 피프티 멤버 3인이 연일 내놓고 있는 비난 입장문에 대해 어트랙트가 적극 대응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으로 알려졌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만일 지금 어트랙트 측이 멤버들의 주장에 일일이 반박한다면 재판부는 양측 모두 더 봉합할 수 없을 만큼 갈등이 심화됐다고 판단할 것”이라며 “입장 발표 이후에도 멤버들에게 부정적인 여론이 높은데 전 대표가 직접 반박할 경우 더 (멤버들을) 벼랑 끝으로 모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결국 명확한 건 법정에서 가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침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