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점을 향해 걷고 있는 이후락 전 중정부장.(왼쪽), ‘급한 볼일’이 생겨 야산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항간에 ‘건강악화설’이 나돌고 있지만, 이날 만난 이 전 부장은 거동이 조금 불편해 보이긴 했지만 심각할 정도는 아닌 듯했다.
3공화국 시절 대통령비서실장과 중앙정보부장을 맡으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이후락. 입을 굳게 다물고 걷는 그의 모습에선 ‘나는 새도 떨어뜨렸던 이후락’의 강인한 인상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가는 세월은 아무도 막지 못하는 법. 그의 얼굴엔 검버섯이 피어 있었고, 백발이 성성했다. 목소리도 여느 노인과 마찬가지로 힘이 없었다.
▲ 지난 94년 8월 ‘하남별장’ 앞에서 <일요 신문> 카메라에 잡힌 이후락 전 중앙정보 부장. 현재 모습보다 훨씬 건강해 보인다. | ||
감색 운동복에 운동화를 신은 그의 모습은 산책을 나가는 ‘평범한 노인’과 다름 없었다. 비록 지팡이를 짚고는 있었지만 그건 이미 80년대 말부터 그가 ‘액세서리’처럼 지니고 다닌 물건이다. 실제 걸으면서도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지는 않았다.
그는 운동복 주머니에 손을 꽂고 손님들과 함께 걸으며 가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특별히 웃거나 즐거운 모습은 눈에 띄질 않았다. 그는 내내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이 전 부장 일행은 음식점 입구에서 취재진과 마주쳤다. 신분을 밝혔지만 놀라는 눈치는 아니었다. 사진을 찍자 “지금 뭐 하는 거냐”며 다소 불쾌한 심사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는 강하게 취재를 제지하거나 항의하진 않았다. 그의 일행은 이내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고, 한 시간 정도 흐른 오후 1시30분께 식당 문을 나섰다.
이 전 부장은 음식점 입구에서 운전기사의 부축을 받으며 운동화를 신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나왔다. 기자는 그에게 ‘정식으로’ 인사하고, 요즘의 건강 상태를 물었다. 이 질문에 이 전 부장은 “건강이 안좋아서…”라고 짧게 말하며 취재진을 피하려 했다. 함께 왔던 일행 중 세 명은 이 전 부장에게 인사를 한 후 차를 타고 그 자리를 떠났다. 기자는 건강 상태를 다시 물었다. 이에 그는 “몸이 이렇다. 건강에 신경 써 줘서 고맙다. 죄송하다”면서 바로 자리를 뜨려 했다. 취재진을 피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이 전 부장. ‘치매 소문’과는 달리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다. | ||
옆에 있던 일행들도 서둘렀지만 이 전 부장은 차가 도착하기도 전에 더딘 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했다. 방향은 집으로 향하는 도로가 아닌 길 옆 야산 쪽이었다. 기자는 취재진을 따돌리기 위한 제스처인 것으로 여기고, 그를 따라갔다. 하지만 ‘다급한 볼일’은 실제 상황이었다.
집에서 허겁지겁 차를 몰고 온 운전기사는 부리나케 차 안에서 휴지를 챙겨 이 전 부장에게 뛰어갔다. ‘볼일’을 마친 이 전 부장은 일행의 부축을 받으며 서둘러 ‘자신만의 성’인 ‘하남별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대문은 다시 굳게 닫혔다. 이 전 부장은 취재진의 ‘갑작스런 출현’에 상당히 긴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런 ‘실수’를 한 것 같다. 자신의 몸을 조절할 수 없었던 것일까.
그의 막내아들인 동욱씨는 “조금만 피곤하시거나 약주를 드셔도 깜박깜박 하신다”며 “가족들도 못알아보시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치매증세가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날 만난 이 전 부장의 모습에선 이를 확인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