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시켜 놓고 5~6시간 동안 머물다 가는 ‘카페 스터디족’이 늘면서 동네카페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관세청에서 발표한 한국인의 커피 소비 자료다. 이 같은 유별난 커피 사랑으로 불황 속에도 커피전문점 시장은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별다방’과 ‘콩다방’ 중심이던 상표도 다양해져 크고 작은 1000여 브랜드가 등장했고, 경쟁을 피하고자 동네 곳곳에 스며들어 국내 커피전문점은 1만 5000개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제 깊은 산 속 사찰에서도 커피전문점을 쉽게 만날 수 있으니 ‘커피공화국’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커피 시장이 치열해질수록 영세한 커피전문점 운영자의 시름은 더욱 깊어진다. 최근에는 동네카페에 ‘공공의 적’이 늘어나 골치를 앓고 있다는 소식까지 더해졌다. 서울 노원구 한 대학교 인근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장 아무개 씨(40). 매장 밖 매서운 겨울바람과 반대로 그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다. 30평 남짓한 매장 4인석에 한 사람이 앉아 5~6시간 동안 머물다 가는 이른바 ‘카페 스터디족’이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다.
“대형 브랜드에 비해 가격이 30~40% 저렴하다보니 학생들이 많이 찾는다. 그런데 혼자서 2500원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 시켜놓고 이어폰을 꽂은 채 장시간 앉아있는 학생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런 손님들은 대부분 개인 노트북까지 사용해 전기료도 추가 부담해야 하고 3~4명씩 들어오는 손님의 자리를 빼앗고 있어 오히려 매출 마이너스 고객이다. 대놓고 나가라고 할 수도, 못 들어오게 할 수도 없어 답답한 노릇이다.”
최근 동네카페에는 장 씨와 같은 고민을 하는 운영자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서울 송파구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김 아무개 씨(45)의 고민도 마찬가지. 그의 점포는 아파트와 단독주택이 밀집한 주거단지의 상가에 위치하고 있다. 영업 초기에는 동네 주부들이 아이들 등교 후 자주 찾는 사랑방 역할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스터디족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15개 테이블 중 절반 이상인 8~9개가 스터디족이 차지하게 됐다. 이들은 가게 오픈시간인 9시 무렵 들어와 2500원 아메리카노 한 잔 시킨 뒤 토플, 토익은 물론 공무원 시험까지 준비하더란다.
“한가한 시간이면 그래도 나은데, 손님이 넘쳐나는 상황이면 정말 화가 나요. 참다못해 한마디 하려고도 했어요. 그런데 학생들도 대부분 동네 주민인데 괜히 한마디 했다가 야박한 곳이라고 소문날까봐 그냥 참았죠. 시끄럽게 하면 나갈까 싶어 음악을 크게 틀어놓기도 하는데 이어폰을 꽂고 있으니 별 효과도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냥 양심껏 알아서 빨리 나가주기를 바랄 뿐이죠.”
동네카페는 스터디족 등 ‘불청객’에 대해 대형 브랜드 커피전문점보다 상대적으로 민감하다. 거의 전 재산을 털어 넣어 생계를 위해 창업한 경우가 많고 매니저나 아르바이트를 쓰는 대신 점주가 직접 매장에 상주하며 운영하기 때문이다.
동네카페의 불청객은 또 있다. 룰을 지키지 않는 손님이다. 경기도 일산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최 아무개 씨(38). 그의 점포에서는 커피, 음료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 샐러드 등을 판매하고 있다. 음료만으로는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게 내·외부에 ‘외부음식 반입금지’라는 문구를 크게 써서 붙여 놨다. 그런데도 음식을 가지고 와서 몰래 먹거나 모르는 척 대놓고 먹는 손님들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혈압이 오르락내리락 한다.
“김밥이나 빵을 먹는 손님도 있고요, 한번은 도시락을 꺼내서 먹는 손님도 있었죠. 좁은 점포에서 반찬 냄새가 어찌나 심한지. 다가가서 외부음식 반입이 안된다고 말을 했더니 죄송하다고 말을 하면서도 결국 식사를 끝내더라고요.”
여러 사람이 들어와 음료를 사람 수보다 적게 시키고 다시 리필해달라고 요구하는 손님, 리필이 안 되는 음료를 리필해 달라는 고객들도 혈압을 올리기는 마찬가지다.
“네 사람이 들어와 음료를 두 잔 시키고 리필 두 잔 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요, 음료 두 잔에 따뜻한 물 두잔 달라고 해서 네 사람이 나눠먹는 경우도 있어요. 운영자 입장에서는 황당하죠. 아메리카노에 한해 1000원 더 받고 리필해 주는데 라떼나 카푸치노 같은, 그보다 비싼 음료로 리필해 달라고 떼쓰는 손님도 있어요. 안된다고 얘기하면 뭐 이런 데가 다 있느냐, 맛도 없는데 가격만 비싸다고 투덜대면서 나가기도 하죠. 그럴 때면 내가 왜 카페를 열어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나 후회가 되기도 해요.”
지나친 애정행각을 벌이는 연인도 민폐다. “예전에는 구석자리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광경이었는데 요즘에는 정도가 좀 심해진 것 같아요. 다른 사람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젊은 연인들이 많아졌어요. 그런 커플이 등장하면 불쾌해서 나가는 손님들도 적지 않아요. 카페는 공공장소이고, 아이들을 동반한 손님도 있는데 기본적인 예의를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죠.”
카페 소모품을 과하게 사용하는 손님도 불청객으로 꼽혔다. 냅킨을 사전 두께만큼 집어 가방에 넣어가는 사람, 빨대와 일회용 컵, 스푼, 포크, 설탕 등을 한 묶음씩 가져가는 사람이 바로 그들이라고. 테이블을 쓰레기더미로 만들고 사라지는 손님은 불청객을 넘어 ‘진상’급이다. “특히 흡연자들이 그런 경우가 많아요. 일회용도 아니고 머그잔에 휴지와 쓰레기, 담뱃재는 물론이고 가래까지 뱉어놓은 사람도 있어요. 그 외에도 냅킨을 수십 조각으로 찢어놓거나 설탕 스틱을 흩뿌려 그림을 그려놓고 가는 손님들까지, 치우다보면 온갖 생각이 다 들어요.”
동네카페 운영자들은 이런 민폐 고객들은 차라리 찾아오지 말았으면 하는 게 솔직한 마음이지만 말 그대로 동네장사라 속마음을 드러내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해결방법은 없을까? 서울 송파구에서 동네카페를 6년째 운영하고 있는 김 아무개 씨는 ‘솔직화법’을 권한다.
“저희 카페는 테이블이 4개로 아주 규모가 작아요. 오래 머물면 손님들이 오히려 눈치를 보고, 대기 손님이 많다 싶으면 알아서 자리를 비워줍니다. 반면 바쁜 시간에 음료 한 잔으로 넓은 자리를 오래 차지하고 있는 손님도 간혹 있어요. 그런 손님에게는 솔직히 말해요. 죄송하지만 바쁜 시간이라 다른 손님들도 생각해서 자리를 비워달라고요. 물론 불쾌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진짜 단골들은 얌체 행동을 하지 않고 오히려 매장을 더 배려해주거든요. 불청객이 없도록 하는 것이 다수의 양심 있는 손님이 편하게 하는 것이고, 결국 매출에도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앞서 일산의 최 씨는 ‘1인 1메뉴 주문을 원칙으로 합니다’라는 안내 문구를 내걸으며 원칙을 지키고 있다.
“회전율이 곧 매출인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고민 끝에 1인 1메뉴 주문을 원칙으로 하고, 대신 아메리카노를 1000원에 리필해주는 서비스를 실시했습니다. 처음에는 시큰둥한 반응이었어요. 다른 곳으로 가시는 손님도 많았고요. 지금은 정착이 된 것 같습니다.”
김미영 객원기자 may424@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