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내각부 직원의 시신이 실린 고무보트가 기타큐슈 앞바다에서 발견됐다. ANN 뉴스 캡처
시신에는 특별한 외상은 없었으며, 25만 원가량의 한국 돈과 본인 명의의 신용카드가 옷 안에서 발견됐다. 그리고 그가 입고 있던 방한복과 고무보트는 한국산 제품으로 밝혀졌다. 신원 확인 결과, 남자는 30세의 내각부 소속 공무원. 지난해 7월부터 2년 예정으로 미국 미네소타대학에서 유학 중이었다고 한다. 2010년 4월 내각부 산하 싱크탱크 경제사회종합연구소에 채용된 그는 올해 1월 초 한국에서 열린 경제관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서 서울로 입국한 뒤 연락이 끊어졌다.
한국에 입국했으나 출국한 기록은 없고, 행방이 묘연한 상태. 그런 와중에 남성의 시신이 일본 기타큐슈 앞바다에 떠올랐다. 의문스러운 것은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만이 아니다. 속속 드러나는 그의 한국에서 행적은 그야말로 ‘미스터리’의 종합판이다.
우선 남성은 서울의 한 호텔에 묵었는데, 이상한 점은 가명으로 다른 호텔에 자신의 짐을 따로 맡겼다는 것. 짐 안에는 신용카드와 지갑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수상한 그의 행적은 계속된다. 지난달 6일에는 서울 시내의 보트 판매업체를 방문해 고무보트를 구입하고, 부산의 한 호텔로 배송시켰다.
또 다음 날인 7일 부산에서는 고무보트에 부착하는 소형엔진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서 드는 의문점 하나. 부산에서 함께 사는 것이 수고를 덜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고무보트와 엔진을 각각 다른 곳에서 샀을까. 게다가 부산에서 엔진을 구입할 당시 남성은 모자와 마스크를 쓴 채 영어로 자신을 홍콩 출신 ‘알렉스’라고 밝혔다고 한다.
그 후 남성의 행적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정황상 그가 직접 고무보트를 타고 일본까지 건너갔다는 추론이 가능하지만, 국제회의 참석차 방한한 공무원이 왜 밀항을 했는지가 의문으로 남는다. 그가 한겨울에 고무보트를 탄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전복되지 않고 일본 해안까지 도달했을까. 해상 보안본부의 설명을 빌리자면 “한국에서 일본까지 고무보트로 전복되지 않고 표류하는 것은 거의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이처럼 사망 경위가 미스터리에 빠지자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갖가지 추측과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대부분 “단순한 사고사는 아니다”는 반응이 많다. 몇몇 네티즌들은 “남성이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일본으로 돌아오려고 한 것 같다”고 말하는 가하면, 일부는 “일본을 싫어하는 한국인이나 특정단체에게 피살된 것”이라는 억측을 펼치기도 했다.
시신으로 발견된 남성이 입고 있던 한국산 검은 재킷.
또한 일본 정부가 한국에 즉각 수사요청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혹시 남성이 스파이 활동과 관련해 사망한 것 아니냐”는 음모론도 불거지고 있다. 지난달 20일 시신이 발견된 후 한동안 속보가 없다가 언론이 2월 1일에야 “숨진 남성은 내각부 직원”이라고 뒤늦게 보도한 점도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본 정부가 피해자의 이름 등을 숨기고 있고, 수사에 소극적인 것은 남성이 스파이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어느 쪽 스파이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남성이 일본 정부의 비밀을 한국 정부에 흘리려는 것을 우려해 일본의 비합법적인 조직이 암살한 것”이라고 추측한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북한에 포섭된 스파이였으며 한국과 일본 정부 둘 다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일본 수사당국은 “모종의 사건에 휘말렸을 것으로 보이는 정보는 얻지 못했다”며 의혹들을 일축하고 나섰다. 이어 “사인은 저체온증이나 익사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현재 사건은 일본의 해양경찰인 제7관구 해상보안본부가 담당하여 사건과 자살, 사고사의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온통 의문투성이인 남성의 죽음. 과연 사고사일까. 타살일까. 그것도 아니면 자살일까. 일본 네티즌들은 “피해자의 이름 등이 공개되지 않아 확실한 추리는 힘들지만, 한 가지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바로 사건이 미궁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들은 “아직은 속보가 나오고 있지만, 어느 순간 유야무야 되어 덮일 것”이라고 ‘뼈있는’ 말을 내놓았다.
한편 이번 사건은 중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신화통신>은 “일본 내각부 직원의 의문사 미스터리에 중국 웹상에서 억측이 퍼지고 있다”고 전하며 “한국만 귀찮게 됐다. 실종은 개전 구실이고 일본의 자작극이다”는 의견과 “대담한 한국인이 과거사 반성 없는 일본에게 본보기를 보여준 것”이라는 일부 중국 네티즌들의 반응을 살피기도 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