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은 미국의 한 잡지에서 선정한 ‘세계 희대의 연쇄살인범’ 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작은 사진은 피해자 유족의 오열 모습.
유영철은 지난 2005년 6월 9일 사형선고를 받고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사형수 신분이 된 지도 어느덧 10년. 그의 구치소 생활 첫 근황은 구치소에 입감된 직후인 2004년 알려졌다. 당시 동료 수감자들을 한번 훑어본 뒤 “죽기 전에 조폭 한 명과 경제사범 한 명은 데리고 가겠다”고 공언해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구치소 측은 유 씨 전담 교도관을 4~5명으로 늘리며 혹시 모를 돌발 사태에 대비했다. 하지만 유 씨의 말을 전해들은 조직폭력배 수감자들은 “유영철을 한번 혼내주겠다”고 코웃음을 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잠잠했던 유 씨의 근황은 2011년 4월경 유 씨가 구치소에서 난동을 부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또다시 전해졌다. 교도관 3명으로부터 거실검사(수형자의 방 내부와 몸 등에 무기류 혹은 외부 물건이 없는지 등을 파악하는 검사)를 받던 중 교도관 1명의 목을 잡고 “내가 사이코인 거 모르냐”며 흥분하고 욕설을 하는 등 난동을 부린 것이다. 유 씨는 평소 엄격하고 자주 이뤄지는 거실검사에 상당한 불만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교도관으로부터 진압된 유 씨는 독방에서 징벌수형방으로 옮겨졌다. 징벌수형방은 수갑은 채우지 않지만 창문이 없어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며칠만 있어도 정신이 멍해질 정도로 극도의 불안감을 동반한다고 한다. 여기에서도 ‘교화’가 되지 않으면 진정실로 옮겨진다고 한다.
이후 유 씨의 근황은 또 다시 잠잠했다. 난동을 부리고 석 달 후인 지난 2011년 7월 <일요신문>에서 유 씨의 구치소 동기를 인터뷰해 근황을 전한 게 마지막이다. 구치소 동기 A 씨에 따르면 유 씨는 여전히 구치소 내 요주의 인물이며 삶에 대한 의욕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꿈에 나타난다”는 얘기를 가끔 하는 등 심경의 변화를 조금씩 드러내기도 했다고 전한 바 있다.
그렇다면 유 씨는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서울구치소 한 관계자는 “유 씨가 현재 생활을 매우 잘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전과 같이 교도관과 시비가 붙거나 난동을 부리는 일이 최근까지 없었다는 것이다. 앞서의 관계자는 “유 씨를 최근에 마주친 적이 있는데 눈에 독기가 많이 풀린 것 같았다”고 전했다.
전언에 따르면 운동시간에 일절 운동을 하지 않고 독방에만 남아 있던 습성도 조금은 변한 것으로 전해진다. 수감 초기 유 씨는 키우던 물방개와 개구리의 먹이를 위해 벌레를 잡다가 한 수감자가 “당신은 유영철이니까 벌레도 잡지마”라는 얘기를 들은 후 운동시간을 거부하고 방 안에만 남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날씨가 풀린 최근에는 사동 밖으로 나와 운동을 조금씩 하는 등 외부 활동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 씨가 구치소 생활에 어느덧 익숙해졌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와 정반대의 증언도 있다. 큰 난동을 부리진 않았을 뿐, 유 씨가 아직도 구치소 생활에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정당국 관계자는 “유영철 하면 교도관들 모두 안 좋은 기억 하나씩 갖고 있다. 힘이 어찌나 센 지 한번 난리를 피우면 교도관 여러 명이 달라붙어도 진정이 안 된다”며 “교도관 중 한 명은 가발을 썼는데 유영철 때문에 가발이 벗겨져 창피를 당하기도 했다. 운동시간에 밖으로 나와 화단을 발로 차서 다 망가뜨리는 일도 있었다”라고 전했다.
교정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유 씨는 가끔씩 신경질적이고 까다로운 주문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의 관계자는 “입맛이 조금 까다로워서 콩나물국에 콩나물을 빼서 달라고 한 적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유 씨의 심기를 건드리면 서로 안 좋기에 교도관이 꼼꼼히 메모해 이를 반영하기도 했다”라고 귀띔했다. 이밖에도 유 씨에게 배식을 하려고 배식구에 밥그릇을 넣으면 유 씨가 갑자기 교도관의 팔을 잡아끌고 꺾어 부러뜨리려 한다는 전언도 몇 년 전까지 심심찮게 돌았다고 한다. 구치소 입소 후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유 씨와 교도관 사이의 긴장감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 모든 사실은 주변의 전언일 뿐, 유 씨 본인에게 정확히 확인되지는 않았다. 기자는 직접 유 씨에게 면회를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다만 현재 유 씨가 지인이 아닌 이상 면회를 일절 거절하고 있다는 사실만 접할 수 있었다. 이밖에도 유 씨가 독서를 즐겨 책을 보내주면 좋아할 것이라는 구치소 관계자의 말도 접했다. 유 씨는 현재 별다른 종교를 갖고 있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강호순은 동료 재소자에게 그림을 선물하기도 한다고. 사진제공=조선일보
지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경기도 서남부에서 여성 7명을 납치 살해한 ‘강호순’ 역시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2009년 8월 3일 사형이 확정된 강 씨는 잔인하고 치밀한 살인행각으로 ‘희대의 사이코패스’라는 별명을 얻은 바 있다. 강 씨 사건을 모티브로 지난 1월에는 <살인자>라는 영화가 개봉되기도 했다.
강 씨의 근황이 알려진 것은 지난 2009년 12월이 마지막이다. 사건 당시 강 씨를 검거한 경기지방경찰청 한춘식 경위는 사형이 확정된 강 씨와 구치소 면회를 했다. 경찰서 주차장에 방치된 강 씨의 무쏘 차량을 폐차해도 될지를 묻는 포기각서를 받기 위해서다. 강 씨는 무쏘를 이용해 6명의 여성을 유인하고 살해했다. “무쏘를 폐차해도 되겠느냐”는 한 경위의 질문에 강 씨는 “어차피 앞으로 탈 일도 없을 텐데… 그러십쇼”라고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한 경위에 따르면 강 씨는 시종일관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5년이 지난 현재 강 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구치소 관계자에 따르면 강 씨의 수감생활은 상당히 원만하다고 한다. 한때 난동을 부렸던 유영철과는 달리 여유롭고 조용한 수감생활을 이어간다는 것. 수감 초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서울구치소 관계자는 “강 씨가 운동도 잘 나오고 있다. 밥도 잘 먹고 조용하게 지내고 있다”라고 전했다.
구치소 관계자들에 따르면 강 씨는 독방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다고 한다. 주로 인물 그림을 그리는 강 씨는 그림을 원하는 동료 재소자에게 선물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조각에도 상당한 취미가 있어 비누를 다듬어 조각상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그 실력이 상당해 여러 명이 놀랐다는 후문이다. 한 교정당국 관계자는 “그림이나 조각상을 보고 ‘어디서 미술을 배운 일이 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강 씨가 ‘배운 일은 없고 혼자 그냥 해보는 것’이라고 말하더라. 어쨌든 손재주는 타고난 것 같다”라고 전했다.
강 씨는 구치소에 들어 온 직후인 5년 전부터 최근까지 기독교 종교 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한 구치소 관계자는 “몇 달 전 강 씨가 담당 목사를 기다리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주변을 말끔히 정리하고 차분하게 기다리고 있더라. 그 모습만 본다면 영락없이 멀쩡하고 말끔한 한 청년을 보는 듯했다”라고 전했다. 강 씨는 이따금씩 예수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강 씨가 종교를 통해 그동안의 죄를 참회하는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강 씨를 수감 초기부터 꽤 오랫동안 지켜본 한 구치소 관계자는 “강 씨가 조금씩 변화한 것은 맞다. 그러나 종교를 가진 다른 사형수에 비해서도 그렇고 크게 반성은 하진 않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구치소 생활 초기부터 기독교 종교 활동을 했던 강 씨는 “가족들이 성당을 다니니 그쪽으로 가겠다”며 최근 종교 활동도 그만둔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유영철과 강호순 모두 누군가가 면회를 오는 일이 최근에는 거의 없다고 한다. 강 씨의 경우 수감 초기에는 가족들이 면회를 종종 왔으나 현재는 발길이 뜸하다는 것이다. 한 구치소 관계자는 “사형수의 생활이 그렇다. 면회는커녕 매일 눈 뜨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한다. 두 사람 역시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근황을 알리는 것도 2차 피해가 생길까봐 상당히 조심스럽다”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서진환·김길태·김홍일은? ‘김길태 탈옥’ 한때 괴소문 지난 2012년 8월 서울 중곡동 주부 이 아무개 씨(37)를 성폭행하려다 무참히 살해한 서진환은 1심과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현재 서울 성동구치소에 수감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진환은 1심 공판 전 구치소 독방에서 ‘자살 기도’를 했던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독방 사물함 바구니의 플라스틱 조각을 떼어내 뾰족하게 갈다가 교도관에게 적발된 것. 이를 두고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라는 비판 여론이 쏟아졌다. 서울 성동구치소 관계자는 “서진환의 근황은 개인정보이기에 알려줄 수 없다. 면회도 본인이 원해야만 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왼쪽부터 서진환, 김길태, 김홍일이 경찰에 잡힐 당시 모습. 2010년 부산 사상구에서 여중생을 납치 살해한 김길태는 현재 경북북부 제1교도소(전 청송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뒤 결국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김길태의 무기징역 판결에 대해 당시 비판 여론이 상당했다. 피해자 여중생의 가족은 “내 딸을 죽인 김길태에게 감형된 무기징역을 확정한 것은 남은 가족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며, 억울하고 분하다”고 격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때 김길태는 “교도소에서 탈옥을 했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지난 2011년 SNS을 통해 소문이 확산된 것이다. 이에 법무부는 ‘김길태의 탈옥이 불가능한 다섯 가지 이유’라는 글을 이례적으로 발표하며 괴소문 확산을 차단했다. ‘울산 자매 살인사건’을 벌인 김홍일 역시 지난해 7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당시 피해자 자매의 부모와 친구들은 ‘김홍일 사형촉구 서명운동’을 벌여 2만 5000여 명의 서명을 받은 바 있다. 김홍일은 지난해 11월 또 다시 약식 기소돼 눈길을 모았다. 자매 살해 당시 범행 현장인 2층 주택 베란다에서 1층 중형 승용차 위로 뛰어내려 차를 파손한 혐의가 추가된 것. 김홍일은 이에 대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가 스스로 재판을 취하했다. [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