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에 결혼한 부산 KT 조성민 선수(왼쪽)와 윤숙정 씨 부부. 요즘은 2세 만들기에 힘쓰고 있다고.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어느날 플루트 연습을 마치고 거실로 나와 TV를 켰더니 대학농구 경기가 중계되고 있더라고요. 그때 자유투를 쏘는 선수의 얼굴이 클로즈업이 됐고, 그 자유투가 성공하면서 선수의 이름이 불렸어요. 한양대 조성민 선수라고. 그때부터 대학 농구를 챙겨봤어요. 조성민 선수를 보기 위해서였죠. 그러다 한양대 무용과에 다니는 친구의 소개로 그 사람과 직접 연락이 됐어요. 일주일 동안 전화통화만 하다 경기 보러 오라는 얘기에 냉큼 달려가서 처음으로 얼굴을 보고 인사를 했던 게 인연으로 이어졌습니다.”
조성민-윤숙정 부부의 만남은 한 편의 드라마 같다. TV를 통해 조성민의 얼굴과 농구 실력에 푹 빠진 윤숙정 씨는 친구를 통해 조성민을 직접 만나게 됐고, 농구장에서 처음 인사를 나눈 후 본격적인 데이트를 시작했으니 말이다.
윤 씨는 포항에서 사업을 하는 부모 밑에서 태어난 외동딸이다. 유치원 교사였던 어머니는 딸의 음악을 위해 모든 활동을 접고 뒷바라지를 시작했다고 한다. 다행이 윤 씨는 단 한 번도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원하는 학교에 모두 입학했고, 졸업 후 ‘하늘의 별따기’로 불리는 도립교향악단에 입단하게 된다. 이때는 두 사람의 만남이 깊어진 상태.
“졸업연주회 때 처음으로 부모님께 성민 씨를 소개시켜드렸어요. 그 당시만 해도 부모님께서 우리의 만남을 반대하실 거라고 예상했고, 그 반대를 어떻게 헤쳐 나갈까 싶었는데 막상 성민 씨를 보신 부모님의 반응이 상상 이상이었죠. 정말 좋아하셨으니까요(웃음).”
옆에 있던 조성민도 아내의 말을 거든다.
“장인어른이나 장모님께서는 안정된 직업을 가진 사위를 원하셨을 텐데, 외동딸이 운동선수를 만나고 있다고 하니 얼마나 놀라셨겠어요. 그런데 직접 만나 뵈니까 정말 따뜻한 분들이었어요. 제 손을 잡고 ‘만나서 반갑다’고 하시며 안아주시는데 가슴이 울컥하더라고요.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뿐이었죠.”
윤 씨는 조성민과 교제하면서 유학을 준비했었다. 음악인으로의 삶을 살기 위해선 유학은 필수였고, 직접 파리까지 가서 유학 생활을 알아보기도 했단다. 그러나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그다. 유학을 떠나면 영원히 헤어질 것만 같았고, 조성민이 없는 도시에서의 생활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윤 씨는 결국 유학을 포기하게 된다.
“제 성격이 두 가지 일을 못하는 스타일이에요. 오빠를 좇아 농구장을 다니면서 농구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됐어요. 농구를 좋아하면서 제 분신이나 다름없던 플루트를 서서히 놓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엔 친구들이 제정신이냐며 만류했지만 교향악단에 사표를 내고 농구선수의 아내로만 살기로 했어요. 물론 성민 씨도 처음에는 반대를 했는데, 제 직장이 대구이고, 자주 볼 수 없다 보니까 나중에는 ‘고맙다’며 이해해주더라고요. 부모님이요? 농구선수를 사위로 받아들인 후부턴 음악 얘기는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아요. 모두 농구 얘기만 하고 있죠.”
2006년 9월, 미국에서 대표팀 전지훈련을 하고 있던 조성민은 귀국길에 비보를 접했다. 전주에서 생활하셨던 조성민의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모두 세상을 떠났다는 내용이었다. 사고 직후 의식이 남아 있던 조성민의 아버지가 프로 데뷔를 앞두고 있는 아들에게 자신들의 사고를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터라 조성민은 장례식에도 참석 못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그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때 전 성민 씨랑 연애 중이었고, 아직 성민 씨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지 못한 상태였다가 성민 씨 누나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었어요. 성민 씨에게 말도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성민 씨는 오히려 집에 전화가 안 되니까 저한테 전주에 가보라고 하더라고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던 거죠. 결국 한국 오는 날 가슴 아픈 얘기를 털어놨는데, 성민 씨가 부모님 산소에 찾아가선 딱 한 번 크게 울고, 그 후론 제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성민은 사랑하는 부모님을 하늘나라로 보내드리고 새로운 부모님을 가슴으로 맞이했다. 바로 아내 윤숙정 씨의 부모님이다. 다음은 조성민의 이야기이다.
“이 사람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어요. 임종도 못하고, 아버지 어머니 마지막 얼굴도 보지 못한 상태라 솔직히 믿어지지가 않았었죠. 많이 울고 싶은데, 주위에서 걱정할까봐 제대로 울지도 못했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헛헛함을 채워주신 분들이 장인, 장모님이세요. 돌아가신 부모님은 가슴에 묻고, 앞으로는 자신들을 진짜 엄마 아빠로 생각하고 살라며 절 아들처럼 챙겨주셨어요. 두 분의 헌신적인 보살핌 덕분에 농구를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하늘에 계시는 부모님도 지금의 제 모습을 보시고 흐뭇해하실 것 같아요. 제가 좋은 가정을 가졌고, 저를 친아들처럼 사랑하시는 장인, 장모님을 만나게 됐으니까요.”
윤숙정 씨에 의하면 아버지가 늘 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우리 사위는 천사다. 우리 사위 같은 사람은 세상에 없다’라고. 그러면서 재미있는 말도 덧붙인다.
“엄마가 저를 시집보낸 후 갱년기가 올 시점이었는데 그 갱년기를 농구로 극복하셨다고 해요. 이전에는 음악하는 딸 뒷바라지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면 지금은 아버지랑 농구장 순회하시면서 농구 공부에 푹 빠지셨어요(웃음).”
‘자유투의 사나이’ ‘3점슛의 사나이’로 우리나라 명품 슈터의 계보를 잇고 있는 조성민과 아내 윤숙정 씨. 아름답고 풍부한 연애+결혼스토리를 이어가고 있는 그들에게 남은 숙제가 있다고 한다. 조성민 주니어다. 계획 중이냐고 묻자 두 사람은 똑같이 입을 연다. “계획은 매일 하고 있다”면서 말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