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후보와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가 지난달 28일 한국방송기자클럽 서울시장 후보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농약급식 관련 격한 공방을 벌였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동시에 여권 핵심에서는 이 같은 흐름을 크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 후보 측이 제기한 ‘농약급식’ 문제는 지난 22일 발표된 감사원 자료로 인해 촉발된 것으로, 하나하나 짚어보면 되레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에게 예민한 지점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지역으로 봐도 서울보다는 경기도의 지적 사항이 컸다.
<일요신문>은 이번 ‘농약급식’ 취재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바로 옆자리까지 꿰찬 ‘농피아(농업+마피아)’의 실체를 엿볼 수 있었다.
지난 5월 22일 감사원이 ‘학교급식 공급 및 안전관리 실태’에 관한 감사결과 처분요구서를 발표했다. 2012년 기준 초·중·고 학교급식은 전체 지방교육 예산 47조여 원 가운데 5조 3000억 원이 사용될 만큼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서울시는 오세훈 전임 시장이 ‘친환경급식’을, 박원순 후보가 ‘무상급식’에 공을 들이면서 지금의 ‘친환경무상급식’ 체제로 자리 잡았다.
친환경에 따른 급식재료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따져보는 것은 실제 이번 감사의 주요한 목표임은 분명하다. 적지 않은 문제점이 노출됐고, 서울시장 선거 1차 TV토론 당시 “농약급식은 없다”던 박원순 후보는 지난달 28일 입장을 바꿔 농약검출 사실을 일부 시인하기도 했다.
직접적으로 문제가 된 부분은 감사보고서 33쪽의 “2011년 1월부터 2013년 6월까지 서울특별시 농수산식품공사 친환경유통센터를 거쳐 학교에 납품된 농산물을 대상으로 잔류농약 분석을 실시하여 생산자 10명이 납품한 일반농산물에서 허용기준 이상의 잔류농약이 검출”됐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뒤에 이어진 내용을 보면 해당 농산물을 친환경유통센터에서 직접 폐기했다는 것으로 “농약이 검출된 급식재료가 학교에 납품됐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실제 감사원이 서울시 감사담당관에게 보낸 ‘감사결과 처분요구 및 통보’ 문건에는 친환경농산물에서 잔류농약이 검출됐는데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이를 통보하지 않는 일이 없도록 사후관리 업무를 하라는 통보가 있을 뿐이다. 친환경유통센터는 오세훈 전임 시장이 주도해 건립했던 만큼 박원순 시장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따져 묻기도 어렵다.
‘친환경급식’ 문제는 선거 이전부터 새누리당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보수 단체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사안이기도 하다. 실제 집권여당과 보수 성향의 문용린 교육감 등은 박 시장을 견제하는 의미에서 서울시 일선 학교에 ‘친환경유통센터’를 이용하는 대신 ‘전자조달 시스템’을 적극 권장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 친환경 식재료 의무구매비율이 대폭 줄어 교육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렇듯 ‘농약급식’ 이슈는 박원순 시장만의 문제가 아닌 오세훈 전임 시장, 문용린 교육감 등이 모두 얽혀 있다. 저간의 사정을 모른 채 정몽준 후보 측에서 서울시장 선거 과정에서 지나치게 정치쟁점화 시켰다는 것이 전반적인 평가다.
여기까지가 6·4 지방선거 과정에서 감사원 보고서가 촉발시킨 1라운드 공방이다. 정치권은 2라운드를 예견한다. 이번에는 서울이 아닌 경기도가 타깃이다. 경기도는 친환경급식 재료 공급과 관련해 서울시와 달리 상당 부분을 민간업체에 의존하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곳이 경기친환경조합공동사업법인이다. 경기친환경조합은 도내 13개 지역농협에서 출자한 비영리 법인으로 도내 1000여 학교에 친환경농산물을 가공·유통해 오고 있다.
문제는 이곳이 ‘관피아’, 그중에서도 ‘농피아’들의 유착 관계로 얽히고설켜 있다는 것이다.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친환경조합의 A 실장은 대표이사인 정 아무개 씨로부터 “2012년부터 경기도 관내 공급되는 친환경 농산물 가공품에 보조금이 지급될 예정이므로 유통업체를 설립하면 높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구상을 듣고 별도의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A 실장이 설립한 B 회사는 경기친환경조합이 학교에 납품해 오던 친환경 가공물 51개 가운데 37개의 공급권을 따냈고, 조합 측은 이 과정에서 각종 편의를 제공했다. 그 결과 2012년 9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B 회사는 5억 5740만 원에 달하는 중간이윤을 취득했지만 실제 유통과정에서의 변화는 없었다. B 회사는 ‘서류상 납품회사’였던 셈이다.
그런가 하면 B 회사가 사업 확장을 이유로 경기도 이천에 농산물 가공 복합단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자금난에 빠지자 정 대표는 B 회사와의 실제 농산물 거래 없이 판매 중간단계에 끼워 넣은 뒤 허위의 거래전표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부당이득을 제공했다. 당연히 경기도 일선 학교는 B 회사에 돌아간 금액만큼의 손해를 입은 셈이다.
감사원의 한 관계자는 “7600만 원 상당의 허위전표를 작성하는 등의 방식으로 부당한 이익을 제공한 경기친환경조합 대표이사 등 2명에 대해 수사 의뢰를 요청한 상황”이라며 “경기친환경조합이 사실상 민간 기업이기에 감사로는 한계가 있었다”라고 전했다.
감사 내용에 관해 경기친환경조합 측에서는 말을 아낀다. 조합의 한 관계자는 지난 3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우리도 내용을 파악 중에 있어 관련 사항을 확인해줄 수 없다”라며 “다만 정 아무개 대표는 3월에 그만뒀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기자가 5월 28일자 법인등기부를 확인한 결과, 정 씨는 대표이사직에서는 물러났지만 이사로는 버젓이 등록돼 있었다.
해당 조합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경기농림진흥재단 측은 “감사 결과가 도청에 통보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도청과 함께 추후 대책을 논의 중에 있는 만큼 관련 내용을 언급하기가 부적절한 것 같다”며 “중요한 것은 경기도 내 초·중·고 학교급식에 차질이 없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 신중하게 살피겠다”라고 전했다. 바꿔 말하면, 경기도가 학교급식에 관해 별도의 대안 없이 외부 민간업체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일요신문>은 A 실장과 현 정권의 유착 관계가 의심되는 정황도 일부 포착할 수 있었다. A 실장은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부처별 업무보고 당시, 농산품 유통 관련 기술을 박 대통령 옆자리에서 직접 소개하는 등 일종의 ‘창조경제인’으로 관심이 부각됐던 인물이었다. 부지불식간 관피아가 박 대통령 옆자리까지 꿰차고 들어온 셈이다.
이를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는 힘들다. 청와대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A 실장은 보수논객 C 씨, 청와대 D 비서관 등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안다”라며 “D 비서관은 박근혜 대통령 보좌관 3인방 못지않은 친박계 핵심이기에 그 라인을 타려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전했다.
반면 새누리당 외곽 조직의 한 인사는 “A 실장을 현 정권과 연결 짓는 것은 무리다. 그는 김대중 정부 때부터 농림부 산하 기관에서 일해 온 사람이다. 현 정권과 유착 관계가 있다기보다는 그만큼 박근혜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관피아가 정권을 장악하고 있음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