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마약이 마치 술처럼 평범한 가정에까지 파고들었다는 점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게 됐을까.
과거 마약은 비싼 가격과 폐쇄적 공급루트 때문에 ‘탈선 부유층’ 등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원하기만 하면 누구나 마약의 백색 세계로 입문할 수 있는 실정이다. 바로 국제마약조직들이 우리나라에 본격 상륙하는 등 공급이 급속도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마약에 빠진 ‘위기의 주부들’. 마약에 빠졌다가 현재 새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을 통해 그 위태로운 실태를 들여다보았다.
“그땐 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하면 눈물만 납니다. 아이들 앞에서 내가 그랬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그 순간을 생각하면 죽고 싶을 따름입니다. 정말 마약은 모든 것을 앗아간다는 말 그대로인 것 같아요.”
육체와 정신이 마약의 노예가 되었다가 6개월 전 친오빠에 의해 강제적으로 치료를 받게 되었다는 이순녀 씨(가명·여·36)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이 씨는 1년 반 전쯤 두 살 연하의 남편이 권하는 마약에 손을 댔다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만 남기게 됐다. 그는 현재도 기도원에서 ‘마약의 유혹’과 싸우고 있다고 말문을 연 뒤 자신의 사연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이 씨는 어느 날 남편 앞으로 온 택배 물건을 전달받았다. 남편이 퇴근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 자신에게 말도 안하고 주문한 물건이 무엇인지 궁금한 마음에 이 씨는 그만 물건에 손을 대고 말았다. 포장을 뜯어본 뒤 이 씨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 안에는 형형색색의 형광펜 세 세트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한 세트에 여섯 자루씩 모두 열여덟 자루였다.
이 씨는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려는 줄 알고 그것을 그대로 놔두었다가 남편이 돌아왔을 때 택배가 온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남편의 태도가 이상했다. 형광펜이 택배로 왔다는 소리를 들은 남편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좀처럼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이 든 이 씨가 방문을 두드려 보았으나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열쇠로 문을 열고 방안을 들여다본 이 씨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정신나간 사람처럼 눈이 풀린 채 방에 드러누워 허우적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된 일이냐’고 물어도 남편은 대답도 않고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그런 상태가 한동안 지속된다 싶더니 서서히 눈빛이 돌변해 광폭하게 이 씨에게 달려들어 옷을 찢었다. 이 씨는 남편의 이상한 행동에 겁도 났지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앞섰다.
이 씨는 “알고보니 남편은 인터넷을 통해 히로뽕(필로폰)을 주문해 집에서 그걸 한 것이었다”며 “그 형광펜 가운데 붉은색 형광펜 뒤꼭지 안쪽에 나 있는 작은 공간에 히로뽕을 숨겨서 택배로 보낸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아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남편이 약에서 깨어난 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져 물었다. 하지만 남편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히로뽕을 이 씨에게 권했다.
이 씨는 두려운 마음이 앞섰지만 호기심도 생겨 마침내 히로뽕을 투약했다. 과연 남편의 말대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최고의 기분을 맛보는 듯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이 씨의 인생은 철저히 파괴되기 시작했다. 마약 없이는 잠시도 살기 힘들었고 신체 곳곳에서 이상증상이 일어나 정상생활이 도저히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 씨는 마약에 손댔던 초기에 투약행위를 중단하려고 노력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몸은 이미 마약과 남편에게 길들여져 있어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이 씨는 마약 투약 후 맛본 쾌락을 한동안 결코 잊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에 따르면 남편은 “일본 소설에서 읽은 적이 있다”며 마약을 투약한 뒤 갖가지 변태섹스를 요구했고 역시 마약에 취한 이 씨도 이를 즐겼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런 일이 반복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늦은 밤 이 씨를 집 근처의 한 여관으로 불러냈다. 남편이 머물고 있다는 여관방에 들어선 이 씨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남편이 한 여성과 약에 취해 성관계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이 씨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반강제로 마약을 투약했고 곧 이 씨도 침대로 합류했다. 이후부터 이들 부부는 이 여성과 함께 벌건 대낮에 각각 다섯 살, 여덟 살 된 아이들이 보는 가운데서도 이른바 ‘3섬’(1 대 2 섹스)을 즐겼다. 순간의 쾌락 때문에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치유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처를 줬던 것.
이 씨 부부의 마약 섹스 행각은 결국 가정의 파괴를 불렀다. 돈도 마음도 자식이나 부부의 미래가 아니라 값비싼 환각을 사는 데 쏟아부었다. 그리고 백색 유혹이 스쳐지나간 자리에는 황폐화된 몸과 영혼만이 덩그러니 남겨졌다. 이 씨는 “마약은 사람을 수치심을 모르는 짐승으로 만든다”며 지난날을 후회했다.
주부들의 타락을 야기하는 충격적인 마약 스토리는 이외에도 또 있다. 바로 마약과 함께 스와핑에 심취하는 경우다.
얼마 전 국내 최대 규모의 스와핑 사이트로 알려져 유명세를 탔던 A 사이트에는 “올 여름 휴가 때 환상적인 여행을 떠날까 합니다. ‘성수’와 그 비슷한 것들도 준비 완료했습니다. 30대 중반에서 후반까지 가능합니다. 가능하면 나이를 맞추고 싶네요”라며 스와핑 파트너를 찾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여기서 ‘성수’란 환각제 엑스터시를 액체화한 것을 가리키는 은어다. 다시 말해 엑스터시 등 각종 마약류 약품을 투약한 뒤 스와핑을 하자는 말이었다. 과연 이런 부부들이 실제로 있을까 하는 의아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취재 과정에서 이 글의 내용처럼 실제로 마약에 취해 스와핑을 즐겼다는 여성의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의 실명 대신 ‘플로라’라고 밝힌 이 여성은 “남자친구와 함께 마약을 처음 접하게 됐다”며 “남자친구가 자신의 친구에게 얻었다면서 극소량의 마약을 가져와서 여관에서 둘이 하게 됐는데 한동안 그 충격적인 경험을 잊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또 “하지만 마약을 계속하면 할수록 내 자신이 끝장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면서 “2년여에 걸쳐 남자친구와 마약을 했는데 남자친구는 결국 감옥에 갔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그는 남자친구와 함께 마약을 경험한 뒤 다른 각종 환각제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남자친구가 스와핑을 제안해 강원도의 한 콘도에서 마약에 취해 세 커플이 한데 엉키는 스와핑을 즐기기도 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마약으로 인해 섹스에 미친 경우였다”며 “남자친구와 마약 스와핑을 하기 위해 가진 돈을 모두 털어 두 달간 지방의 여관과 콘도를 순회한 적도 있었다”고 말해 충격을 주었다.
그에 따르면 그가 만난 주부들의 마약 중독은 심각한 수준을 이미 넘어서고 있었다. 현재 지방에 위치한 한 요양원에 머물며 마약 금단현상을 이겨내고 있는 그는 “남자친구와 함께 스와핑을 할 때 본 부부들은 하나같이 마약 중독자들이었다”며 “나도 그랬지만 그때 본 부부들 역시 대부분의 경우 여자 쪽이 마약의 힘에 의지하려는 경향이 더 심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외국에 나갔다 오는 여자들 특히 젊은 여자들 중 대마초나 헤시시 등을 안 해본 사람은 드물 것”이라며 “동남아를 비롯해 동유럽 쪽으로 가면 정말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마약이다. 현지 가이드가 권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해외여행을 통해 이미 경험한 마약이기 때문에 결혼 후에도 별다른 거부감 없이 다시 손대기 쉽다는 것이다.
이렇게 마약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그는 남자친구가 경찰에 자수해 마약 상습복용 사실을 고백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자친구의 가족이 ‘네가 자수하지 않으면 플로라까지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남자친구가 혼자 십자가를 짊어졌던 것이다.
이날 이후 두 사람은 같이 마약을 끊자고 맹세하고 각자 서로 다른 장소에서 ‘마약단절’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중이다.
그는 끝으로 “그동안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마약에 빠져 살았지만 지금은 죽음의 늪에서 서서히 빠져 나오는 중”이라며 “마약의 피해는 개개인별로 다 다르지만 영혼과 육체가 썩어 들어가는 것은 똑같다. 마약은 사람을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악마의 저주다”라고 치를 떨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교육상담부 송천쉼터운영팀의 임상현 팀장(55)은 “과거에는 주변 사람들로 인해 마약을 하게 된 여성들이 상담을 해오는 사례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점점 줄고 있다”면서 “이는 여성 마약중독자가 줄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자발적으로 마약에 손을 대는 여성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윤지환 프리랜서 tangohun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