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만 다가오면 불안과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명절 증후군’으로 불리는 이러한 증상은 명절에 겪는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적 또는 육체적 고통을 호소하는 것을 말한다. 정신과 전문의 김진세 해피언스 소장은 “명절 증후군이라는 것은 정확한 의학적 진단명은 아니다. 명절 증후군은 명절에 받는 스트레스가 화병 등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질병이라고 볼 수 있다”며 “명절 스트레스 증후군이 심해지면 분노, 우울, 불안 증세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명절 스트레스 증후군은 ‘주부’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남편들도 엄연히 명절 스트레스를 겪는다. 과거에는 남편 명절 스트레스 증후군을 ‘고스톱 친다고 책상다리해서 아픈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로 대수롭지 않게 취급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추석 명절을 전후로 상담실의 문을 두드리는 남편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상담학 박사 김미애 대구복지상담교육원 원장은 “최근 3~4년 사이 명절을 전후로 상담을 신청하는 남편들이 많이 늘어났다. 남편의 경우 스트레스에 침묵하고 속앓이를 하는 경우가 많아 아내가 모르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남편이 겪는 명절 스트레스 대부분은 아내의 스트레스가 전이되는 경우가 많다. 김진세 해피언스 소장은 “아내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시댁과의 관계로부터 오는 직접적인 스트레스다. 하지만 남편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아내에게서 전달되는 스트레스”라며 “뻥튀기에 들어가면 과자의 양이 더 늘어나는 것처럼 남편이 받는 스트레스도 비슷한 경우”라고 말했다.
예민해진 아내의 눈치를 보면서 어설프게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 기계적인 균형을 맞추려다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다. 조창현 나우미 가족문화연구원 소장은 “아내 편을 들자니 본가 형제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고, 어머니 편을 들자니 아내의 원망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중간자 입장에서 오는 압박감이 상당한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명절이면 부쩍 얇아지는 지갑도 남편에게는 남모를 고충이다. 장거리 운전에 들어가는 기름 값부터 부모님 선물과 조카들 용돈까지 만만치 않은 금액이지만 처갓집과도 균형을 맞추려니 부담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자신이 다른 형제와 비교당하는 것이 곧 아내와 아이들이 비교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주머니 사정을 고민할 겨를이 없다.
장거리 운전에서 오는 피로감도 남편 명절 스트레스 증후군 요인 중 하나다. 하지만 자동차 안에서 쏟아지는 아내의 잔소리에는 비할 바 아니다. 김미애 대구복지상담교육원 원장은 “남편의 경우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명절 휴일이 시작될 때부터 이미 피로도가 높은 상태다. 상담을 하다보면 이 부분을 간과하는 아내가 대부분이다”라며 “남편이 운전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등의 짜증을 낸다면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아내의 잔소리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아이들에게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다”고 덧붙였다.
존중받지 못하는 가장으로 비쳐지는 것도 남편들의 명절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다. 조창현 나우미 가족문화연구원 소장은 “상담을 한 남편들이 가장 비참함을 느낄 때가 명절에 집에 갈 때 혼자 간다거나 아이들하고만 갈 때이다. 가장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모습이 노출되고 이것이 지속되면 자존감이 약해진다”며 “결국 명절 때 느낀 열등감이 부부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내들의 명절 스트레스 화풀이 대상은 남편이지만, 남편은 싸움이 커질까 아내의 잔소리에 침묵하게 된다. 상담을 받으러온 부부 중에는 의외로 남편의 스트레스 지수가 더욱 높게 나와 놀라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분명 남편들도 명절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남편의 명절 스트레스,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가장 기본적인 것은 남편에게 돌아올 아내의 명절 스트레스를 함께 줄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명절을 기대하는 시선과 기대를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명절은 특정 한사람이 대접받는 자리도 아니고 제사를 유지하기 위해 아내가 희생하는 자리도 아니다. 김진세 해피언스 소장은 “세상에서 가장 심한 거짓말이 ‘딸 같은 며느리’다. 피를 나누고 30년 가까이 싸움도 하면서 생활해온 가족과 똑같을 수 없다”며 “시부모는 며느리를 내 아들로 인해 이어진 ‘인연’으로, 며느리는 시부모를 남편을 통해 알게 된 어른으로 생각하고 공경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이어 김진세 소장은 “문제를 노출하는 것은 좋지만 돌아오는 차에서 얘기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조용하고 기분 좋은 타이밍을 찾아 대화를 하는 것이 좋다”며 “연휴 중 하루는 무조건 쉬는 것을 추천한다. 몸과 마음이 쉬어야 명절 스트레스도 극복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조창현 나우미 가족문화연구원 소장은 남편들도 자기를 표현하는데 좀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단, 이때는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자기가 느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좋다. 조창현 소장은 “아내에게 ‘다른 여자들은 다 참는데 너는 왜 그러는 거야’가 아니라 ‘나는 너의 그런 행동 때문에 속상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내 마음은’ ‘내 생각은’처럼 1인칭 화법으로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너는 왜’라고 대화를 시작하면 이미 지시, 명령, 판단, 평가를 한 것이라고 생각해 대화를 이어나가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미애 대구복지상담교육원 원장은 “아내에게 ‘수고했다’ ‘너무 고생이 많다’고 얘기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자칫 아내에게 생색내기용 칭찬으로 비춰질 수 있다”며 “이번 명절에는 아내에게 ‘수고했으니 나와 영화를 보러가자’ ‘이번 명절에는 내가 설거지를 도와주겠다’ 등의 말을 해보자. 이런 실질적인 대화는 아내에게 남편은 언제나 내편이라는 기분을 느끼게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