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자금성은 중국 명청 제국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다. <자금성 이야기>는 자금성이라는 공간과 중국사라는 시간을 교차시켜 입체적으로 청 제국사를 펼쳐낸다.
청나라 제1대 황제인 소년 순치제를 앞세워 숙부 도르곤이 명조 신하들의 절을 받으며 첫 등장한 천안문에서 시작해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서태후의 시대를 거쳐 폐제 부의의 퇴장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을 둘러보며 자금성의 지도가 완성된다. 이렇게 이루어진 자금성 여행은 자연스럽게 청 제국의 역사를 하나로 꿰는 여정이 된다.
중국의 역사 가운데서도 명군으로 손꼽히는 강희제의 시대는 그의 명석하고도 근면한 통치를 상징하는 건청궁과 폐태자의 불행한 사연을 담은 함안궁에서 단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냉혹했으되 합리적인 정치를 펼친 옹정제의 성격은 그가 건청궁을 비우고 따로 거주한 양심전의 실용적이고도 산뜻한 구조에 잘 드러나 있다. 최전성기로 구가되는 건륭 시대는 자금성 안에 또 하나의 작은 자금성을 조성해 놓은 건륭제의 야심작 영수궁에 압축되어 있다.
특히 여제나 다름없던 서태후의 시대에는 흥미로운 일화들이 쏟아진다. 황제에게는 마치 동성친구와도 같은 후궁이었으나 끝내 서태후에게 미움을 받아 죽임을 당한 진비의 삶은 그의 거처였던 경인궁과 그가 내던져져 죽임을 당한 ‘진비 우물’을 통해 기억된다.
열강의 야심과 인민의 열기가 뒤섞여 있던 근대의 격동 속에서 자금성의 북쪽 절반에 유폐되어 있던 마지막 황제 부의가 자동차를 타고 떠난 자금성 최북단 신무문에 이르게 되면 자금성 여행이 끝나고, 자금성은 중화민국의 ‘고궁박물원’으로 변신한다.
자금성은 다양한 성격이 복합된 곳이다. 황제를 정점으로 한 당대의 정치 공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중화와 만주족의 문화가 응집된 미적 공간이자, 황실 가족과 태감(내시)·궁녀들이 생활하는 공간이었다.
이 책은 이처럼 자금성 안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다양한 공간을 조명하며 환희와 고통이 공존했던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그 곳곳에 숨겨진 미적·사상적 상징들도 풀어내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사연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있는 자금성의 곳곳을 이 책을 통해 거닐어 볼 수 있다.
이리에 요코 지음. 서은숙 옮김. 돌베개. 정가 1만 3000원.
연규범 기자 ygb@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