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재소자들은 대부분 쭉쭉빵빵, 청순가련형 등 자신의 이미지를 한껏 포장해서 서신을 보낸다. 사진은 <친절한 금자씨>의 한 장면. | ||
과거 구치소나 교도소엔 대소변을 보는 통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없지만 이 통을 재소자들은 ‘뺑끼통’이라 불렀고 그후로 ‘뺑끼통’은 화장실을 뜻하는 은어가 됐고 넓게는 감방을 떠올리는 말이 됐다.
최근 기자는 한 출소자로부터 ‘여자 뺑끼통’에서 일어나고 있는 흥미로운 얘기를 전해 들었다. 비슷한 상황에 있는 남녀 재소자들끼리 ‘펜팔’을 통해 실제나 다름없는 불꽃튀는 연애가 이뤄진다는 내용이었다. 재소자들 간의 펜팔은 서로를 의지하게 만들어줌으로써 힘들고 외로운 수감생활을 이겨내게 하는 순기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여성 재소자들만 있는 청주여자교도소의 경우 펜팔은 이미 수년 전부터 교도소의 한 문화로 자리잡았을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본래의 취지와 달리 부작용과 폐단도 만만찮게 발생하고 있다. 바깥사람들은 모르는 그들만의 요지경 펜팔의 실태에 대해 알아봤다.
얼마 전 출소한 K 씨(여·45)에 따르면 여성 재소자들과 남성 재소자들의 펜팔은 크게 두 가지 경로를 통해서 가능하다. 하나는 재소자가 전국 교도소에 들어가는 법무부 교정 교양잡지 <새길>에 수필이나 시, 소설 등을 게재할 경우 다른 재소자가 작품 아래 적힌 이름을 보고 편지를 보내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식으로 펜팔을 하는 재소자가 같은 방 동료들에게 펜팔을 주선해주는 경우다. 바깥세상의 용어로 말하면 일종의 ‘소개팅’이다.
펜팔을 하는 재소자들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공식통로인 펜팔은 재소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따라서 나이와 형기, 죄질, 결혼유무 등에 상관없이 많은 재소자들이 다른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이성 재소자들과 펜팔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재소자들은 자기만의 기준에 따라 적절한 펜팔 상대를 고르는데, 특히 여성 재소자의 경우 남성 재소자에 비해 인원이 훨씬 적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넓다.
재소자들 간의 펜팔은 수감자들끼리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됐다. 청주 여자교도소의 경우 전체 재소자 중 약 40%가 10년 이상의 형을 확정받은 장기수로, 이들 중에는 가족들과 연락이 끊긴 재소자도 적지 않다. 수감된 지 2~3년간은 가족들이 꼬박꼬박 접견을 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랜 옥수발에 지친 가족들이 연락을 끊어버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 따라서 가족들에게조차 외면당한 장기수들은 비슷한 처지의 재소자들과 펜팔을 통해 정을 쌓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며 출소 후 함께 꾸려갈 미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곤 한다는 이야기다.
K 씨에 따르면 재소자들 간의 펜팔은 바깥세상에서의 ‘채팅’과 유사한 면이 상당히 많다. 상대방의 얼굴이나 기본 신상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교류가 시작된다는 점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얼굴도 모르고 펜팔을 하지만 ‘외모’나 ‘이미지’가 상당히 중요한 조건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여성 재소자들은 대부분 자신을 ‘S라인에 쭉쭉빵빵’ ‘동안에 청초한 이미지’ ‘청순가련형’ 등으로 한껏 포장해서 서신을 보낸다. 그래야만 상대 남성 재소자들이 ‘껌뻑’ 넘어간다는 것. ‘미모의 여죄수’는 같은 남성 재소자들 사이에서도 일종의 로망인 셈이다.
이에 대해 K 씨는 “어이없어 보이지만 모든 것은 서로에 대한 ‘환상’에서 시작된다. 성별 외에는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없기 때문에 초기 서신 내용은 자기 자신에 대한 얘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일단 상대를 사로잡아야 하니까 거짓말도 밥 먹듯 한다. 나이를 열 살 정도 속이는 것은 양호한 축에 속하고, ‘미혼’이라고 속이는 기혼자도 많다. 심지어 동정을 받기 위해 거짓 사연을 꾸며내거나 타인의 과거를 자기 것인 양 갖다 붙이는 경우도 있다. 또 중죄를 저지른 장기 재소자의 경우 상대방이 기피할까봐 자신의 죄질은 물론 형량까지 바꾸기도 한다. 그러나 상대방은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속을 수밖에 없다. 그런 상태로 몇 달간 서신을 주고받다보면 서로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되고 정이 들어 어느새 ‘연인모드’로 발전하게 된다”고 말했다.
K 씨에 따르면 펜팔 수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일부 재소자들은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애정표현이나 성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서로 ‘여보’ ‘자기’ 등의 호칭을 쓰는 것은 기본이고 부부사이에서나 가능한 ‘질퍽한’ 대화들도 오간다. 특히 애정욕구에 목말라 있는 재소자의 특성상 펜팔은 성적유희 혹은 성욕해소 차원에서 이뤄지기도 하는데 그 내용이 상당히 음란하고 노골적이다.
“자유시간이 되면 모두 편지 쓰느라 정신이 없는데 예쁜 편지지를 구하느라 난리다. 글 솜씨가 없는 사람들은 다른 동료에게 대필을 부탁하기도 한다. 나도 글씨가 예쁘고 그림 좀 그릴 줄 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편지를 대신 써준 적이 많다. 편지엔 온갖 달콤한 말들과 성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단어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실제로 보고 만지고 할 수 없으니까 글로 성적 교감을 나누는 것이다. 예를 들면 ‘뜨겁게 사랑해줘요’ ‘당신을 느끼고 싶어요’ ‘당신 냄새 너무 좋은데?’ ‘나 흥분시켜줘’와 같은 식이다. 성행위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와 관계를 나눌 때의 느낌, 체위, 신음소리 등 차마 입에 담기 민망한 음란한 얘기들도 오간다. 일종의 가상섹스랄까. 상상 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인주로 키스마크까지 찍어 보내면 상대 남자는 사족을 못 쓴다. 심지어 ‘뺑끼통’에서 몰래 생리대나 팬티라이너의 문양을 찍어 편지지에 붙여 보내기도 한다. 그러면 남자는 그에 대한 답으로 자신의 성기 사이즈를 찍어 보내오곤 한다. 몇 번 그러다보면 ‘몸을 섞었다’는 인식을 갖게 되고 남자 입에서 ‘출소해서 같이 살자’는 말이 그냥 나온다. 그때부턴 직접 만나지 못할 뿐 펜팔 상으론 부부나 다름없게 된다. 편지로 어떻게 그런 감정교류가 가능할까 싶겠지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가능하고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
바깥세상과 단절돼있는 특수한 상황 때문일까. 재소자들은 불과 수 개월 만에도 ‘죽고 못 사는’ 관계로 급진전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편지를 쓰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방으로부터 편지가 안 오면 안절부절 못하거나 식음을 전폐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 심지어 일부는 서로에 대한 환상만으로 수감도중 덜컥 혼인신고를 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와 관련, K 씨는 한 가지 사례를 들려줬다.
“오랫동안 펜팔을 주고받으며 ‘연인’으로 지내던 남자가 먼저 출소하자마자 상대 여자를 만나러 교도소로 찾아왔다가 그냥 돌아간 경우가 있었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상상했던 여자와는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예쁘고 쭉쭉빵빵한 아가씨라고 믿고 있었는데 마흔도 넘는 펑퍼짐한 아줌마가 접견실로 나오니 그 남자는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그 남자는 ‘정말 OO씨 맞아요?’라고 몇 번이나 묻다가 돌아갔는데 그 후론 일절 연락이 없었다. 같은 방에 있다보니 이런 얘기는 허다하게 듣고 또 본다. 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경제사범으로 들어왔다며 조만간 출소할 거라던 남자가 살인죄로 복역 중인 무기수였던 경우도 있고 파렴치한 전문 강간범인 경우도 있었다. 서로의 실체를 확인한 그 순간 두 사람은 환상에서 깨어나고 처음처럼 남남으로 돌아간다. ‘먼저 출소하는 사람이 기반을 잡고 옥중에 있는 사람을 뒷바라지도 하자’던 장밋빛 약속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교도소 내에서의 펜팔은 ‘중독성’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마음의 상처를 입은 재소자들도 또 다른 상대를 찾곤 한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펜팔이 본래 취지를 잃고 의도적인 어떤 목적 하에 이뤄지는 경우다.
K 씨에 따르면 가장 대표적인 것이 ‘꽃뱀’ 문제다. 일부 여성 재소자들 사이에서는 펜팔이 ‘스폰서’를 잡기 위한 수단으로 자리잡은 지 이미 오래라고 K 씨는 전했다. 프로필이나 외모 등을 속여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뒤 용돈을 뜯어 먹는다는 것. 특히 여성 재소자들 사이에서는 ‘범털’이라 불리는 사회에서 돈 좀 만졌거나 학식이 있는 경제사범이 단연 인기인데, 그 이유는 그들의 눈에 들 경우 확실한 경제적 지원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교도소 내에서 펜팔을 둘러싸고 재소자들 간에 질투와 배신이 난무한다는 점이다. 펜팔을 통해 알게 된 남자로부터 풍족한 용돈을 받는 동료를 질투하는 것은 흔한 일이고, 심지어 동료의 그 남자에게 몰래 서신을 보내 동료의 실체를 폭로하거나 이간질해 자신이 가로채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꽃뱀 재소자는 펜팔을 어떤 식으로 이용하는 것일까. K 씨는 일례로 얼마 전 있었던 ‘할머니 꽃뱀’에 대한 충격적인 얘기를 들려줬다.
사기 등으로 젊은 시절부터 수없이 교도소를 들락거린 A 여인(60)은 45세의 재소자 B 씨와 펜팔을 시작하게 됐다. A 여인은 자신의 나이를 45세로 속이는 등 모든 프로필을 허위로 꾸며 B 씨와 3년 동안이나 펜팔을 해왔다. 그리고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던 B 씨한테서 수시로 용돈을 받으며 풍족한 수감생활을 했다. ‘치아를 치료하려는 데 300만 원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B 씨에게 돈을 요구해 그동안 수천만 원을 받아썼다고 한다. ‘남은 인생을 함께하자’는 약속이 전제된 지원이었음은 물론이다.
감방 동료들이 보기에도 A 여인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여러 남자 재소자들을 상대로 거액의 돈을 뜯어냈다고 한다. 출소 무렵 A 여인은 B 씨에게 ‘가게를 차려야겠다’고 했고 A 여인에게 완전히 빠져있던 B 씨는 지인을 통해 선뜻 6400만 원을 건네줬다. 하지만 그날 이후 A 여인은 연락을 끊었고 출소 후에도 깜깜무소식이었다.
그러나 A 여인은 출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사기행각을 하다가 또다시 구속됐고 이 과정에서 B 씨를 상대로 한 꽃뱀행각도 드러났다. 검찰에서 A 여인과 처음으로 대면한 B 씨는 A 여인의 실체를 알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렸다고 한다.
“남자 재소자들은 자신의 암울한 처지를 알기 때문에 자신을 이해하고 알아주거나 알아주는 척하는 여성에게 쉽게 빠진다. 사회에 두고 온 재산이나 가족들로부터 받은 돈을 얼굴도 모르는 여자에게 쏟아 붓는 것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펜팔 상대에게 매달 50만~수백만 원의 용돈을 받는 여성 재소자들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예전과 달리 요즘은 여자 재소자들이 펜팔을 하는 이유는 대부분 돈 때문이다. 다른 남자 재소자들과 이중삼중으로 펜팔을 하며 같은 수법으로 돈을 빼먹는 경우도 흔하다.”
이럴 경우 ‘남편노릇’ 한 번 해보겠다며 출소 전부터 아낌없는 지원을 해온 남자가 받는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홧김에 교도소에서 사고를 치고 징벌을 받는 경우는 허다하고, 앙심을 품고 출소 후 펜팔녀의 가정으로 쳐들어가 칼부림을 한 경우도 있다.
서로 속이지 않고 정상적인 펜팔을 하는 커플은 어떨까. 잘 살아가는 커플도 없진 않지만 범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다시 구속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들의 범행은 주로 ‘합작’으로 저질러지는데 보통 남자가 주도하고 여자는 남자를 돕거나 은닉처를 제공한다. 하지만 간혹 ‘전공 분야’가 다른 남녀가 짝이 될 경우엔 상호 보완작용을 해 범행수법이 한층 업그레이드되기도 한다.
두 시간 가까이 인터뷰에 응했던 K 씨는 마지막으로 “다 그렇지는 않지만 최근의 펜팔은 대부분 또 하나의 죄를 짓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서로 이용하려 하기보다는 본래의 취지를 살려 서로 외로움을 달래고 상처를 치유하는 쪽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