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의 드라마 아시아챌린지컵 리플레이

김시용 프리랜서 2014-09-12 조회수 4061
[일요신문] 초미의 관심을 모았던 아시아챌린지컵 경마대회는 예상대로 싱가포르의 경주마 엘파드리노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결과는 예상대로였지만 우리로서는 실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초 국제대회에서도 입상권에 오르내릴 전력의 마필들과 상당한 격차가 예상됐고, 한편에선 망신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는 우려마저 있었지만 예상을 깨고 국내 경주마가 2, 3위를 차지한 것이다. 경마계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선 지난 8월 31일은 역사적인 날이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그날 그 경주로 돌아가본다.
 
싱가포르 경주마 엘파드리노가 8월 31일 렛츠런파크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챌린지컵 경주에서 우승했다. 사진제공=한국마사회

“이런 경주는 돈을 내고도 봐야 해.” “적중에 구애받지 말고 부담없이 베팅할 수 있는 경주야.” 

경주가 시작되기 전 흡연장에 모인 경마팬들이 나눈 대화다. 말기암으로 투병 중인 필자의 지인도 이 경주를 직접 보지 못해 안타까워 했다. 그만큼 경마팬들의 관심이 높은 경주였다. 

경주마들이 예시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배당판이 열릴 때는 비교적 차분한 모습이었다. 예상대로 4번 엘파드리노가 인기마로 팔렸다. 몇 주 전에 소개했듯이 엘파드리노는 국제대회에서도 우승한 마필이고, 세계 최정상급 스프린터들과 겨뤄서도 6위를 차지할 정도로 경주력만큼은 의심할 수 없는 강자였다. 그 다음 인기마는 2번 트뤼도였다. 복승식 배당은 이 두 마리가 압도했다. 국내 마필 중에선 필자가 입상 가능마로 지목한 입상마 딱 한 마리 원더볼트가 근근이 체면 유지를 하면서 11배 내외로 복승식 배당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원정마들은 마체중에서 문제점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감소해서 나온 것이다. 본국에서 뛸 때와 비교할 때 적게는 7kg부터 많게는 20kg 이상까지 차이를 드러냈다.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데 아무래도 어려움이 있었던 듯했다. 그렇지만 경주로에 출장할 때는 크게 문제될 만한 부분은 없어보였다. 2번 트뤼도가 뭔가 막혀있는 듯한 느낌을 줬을 뿐이었고 대부분 활기가 좋아 보였다. 국내마들 중에선 6번 원더볼트와 11번 인디언블루가 상대적으로 눈에 띄게 컨디션이 좋아보였다. 

이 경주는 단거리였지만 선행마들의 선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국내에서 탁월한 선두력을 갖고 있는 내로라하는 선행마들이 여러 두 출전한 데다, 원정마들 중에서도 쇼콜라베린 같은 빠른 말들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번 경주는 선행 아니면 대안이 없는 플라이톱퀸이 선행을 나서긴 하겠지만 꼴찌를 할 것이다”라고 다른 전문가들 앞에서 큰소리까지 쳐놓은 상황이었다. 3선에서 뛸 선입마와 중간그룹에서 따라올 추입마 중에서 입상마들이 나올 것으로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예상했다. 관심의 초점은 엘파드리노가 어디쯤 위치했다가 언제쯤 치고나올 것이냐였다. 
 
아시아챌린지컵 경주에서 국내 경주마 원더볼트(점선 원)가 엘파드리노에 이어 2위로 들어오는 모습. 한국마사회 동영상 캡처.

경주초반은 최봉주 조교사가 장담한 것처럼 초반 근성이 대단한 플라이톱퀸이 어렵사리 선행을 잡아내면서 시작됐다. 그 뒤를 5번 쇼콜라베린, 7번 피에르타이거, 9번 와츠빌리지, 10번 뉴욕블루, 13번 카우보이선이 바짝 따라붙었다. 최고 인기마인 4번 엘파드리노와 한국 경주마 중에서 가장 기대를 모았던 6번 원더볼트는 3선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경주가 중반전에 돌입하자 13번 카우보이선이 좀더 나오면서 14번 플라이톱퀸을 압박했고, 거리가 벌어지면서 3선에서 따라오던 말들은 중간그룹으로 밀려났다. 인기마인 4번과 6번도 마찬가지였다. 3코너를 돌고나자 따라가던 4번 엘파드리노가 피치를 올리며 따라붙었고 4코너를 돌 때쯤에는 선두권을 사정권에 두었다. 6번 원더볼트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엘파드리노 뒤를 바짝 따라갔다. 

결승선에 접어들자 모든 경주마들이 일제히 스퍼트를 했다. 엘파드리노가 쉽게 선행마들을 넘어섰고 원더볼트가 뒤를 이었다. 한때 원더볼트가 엘파드리노와 나란히 서면서 따라붙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는 카메라 각도가 빚은 착시현상이었을 뿐 결승점이 다가올수록 미세하게 밀렸고, 차이는 좀더 벌어졌다. 

3위는 외곽에서 무리하다가 중간에 한 템포 늦췄다가 재추격에 나선 부경의 뉴욕블루가, 4위는 처음부터 줄곧 중위권에서 뛰었던 일본경주마 토시갱스타가 차지했다. 일본경주마 피에르타이거는 선두권에서 무리하게 뛰었지만 끈기를 발휘하며 5위를 지켜냈다. 지난해 이 대회 준우승과 우승을 각각 차지했던 와츠빌리지와 단독선행을 나섰던 플라이톱퀸은 각각 13위와 14위로 결승점을 통과, 최하위의 수모를 당했다. 인기 2위마 싱가포르의 트뤼도는 하위권에서 따라오는 데 급급하며 10위를 차지했다.

이번 대회에서 우리가 얻은 최대 수확은 ‘우리도 세계적 수준의 경주마를 육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그동안 국내 경주로는 외국경주로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거웠기 때문에 경주마들이 스피드를 배양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 주로가 가벼워지면서 평균기록이 단축돼왔다. 앞으로 경주마 육성을 좀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한다면 ‘파트2’는 물론이고 ‘파트1’ 경마국으로 발돋움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원더볼트를 육성한 지용훈 조교사와 정평수 기수, 그리고 원더볼트를 타고 좋은 성적은 내준 이찬호 기수에게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낸다.

김시용 프리랜서
 
아시아챌린지컵 뒷얘기

1·2위마 모두 최고기록 경신

이번 아시아챌린지컵 대회는 1400미터 경주로 치러졌다. 우승한 엘파드리노의 주파기록은 1:23.8초였고, 준우승한 원더볼트의 주파기록은 1:24.1초였다. 두 마리 모두 1400미터 최고기록을 경신한 것이었다. 그동안 이 거리 최고기록은 2005년 4월 10일 일요경마 11경주에서 고려방이 주파한 1:24.7(김효섭 58.5kg)이었다. 내용면에서 보면 훨씬 더 높은 평가가 가능하다. 고려방이 경주로 함수율 15% 이상 되는 포화주로에서 거둔 기록인 데 비해 이번 기록은 함수율 6%의 양호한 주로에서 거둔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원더볼트의 몸값은 3400만여 원에 불과해 이번 대회 출전한 국내 경주마 8두 중에선 꼴찌에서 두 번째였다. 도입가 3억여 원을 자랑하는 플라이톱퀸은 꼴찌를 했다. 경마가 몸값순이 아님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경주였다. 하지만 플라이톱퀸도 실망하기엔 이르다. 다른 어떤 말보다 뛰어난 순간스피드를 갖고 있고 이제 갓 4세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힘이 더 차고 지구력만 보강한다면 현재보다 뛰어난 성적을 올려줄 것으로 보인다.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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