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프리 대상 경주 뒷얘기

김시용 프리랜서 2013-12-26 조회수 3832
[일요신문] 지난 15일 열린 그랑프리 대상경주는 역대 어떤 그랑프리보다도 박진감 있는 경주였다는 평가다. 터프윈과 당대불패가 노쇠 기미를 보이는 가운데 절대강자가 없는 편성이었지만 당대불패마저 질병으로 출전을 포기해 신진세력들의 기세가 높았던 이날 경주는 예상대로 인기마들이 몰락하고 ‘이변 아닌 이변’이 연출됐다. 이번 대회는 두고두고 곱씹어볼 구석이 많아 다음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되새김질을 해본다.

지난 15일 열린 그랑프리 대상 경주에선 인코스로 뛴 말들이 고전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우선 이날의 경주로 흐름을 살펴보자. 서울경마장은 추위가 계속돼 그 전날 경주로 결빙을 막기 위해 염화칼슘을 많이 뿌렸다. 그로 인해 토요일은 포화주로였는데도 선행마들이 거의 입상하지 못했고, 추입마나 외곽선입마가 득세를 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외곽선입’ 또는 ‘외곽추입’으로 입상한 마필이 유난히 많았다는 점이다. 평소처럼 인코스로 뛴 말들은 거의 대부분 다 무너졌다. 좋은 기록이 나왔음에도 인코스로 뛴 마필들이 졸전을 벌였다는 점은 서울경마장도 최근의 부경경마장처럼 외곽이 유리해졌다는 반증이었다. 아마도 염화칼슘 때문에 안쪽이 무거워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런 흐름은 일요일에도 계속됐다. 안쪽으로 달리면 어지간히 강한 말들도 무너졌다. 앞으로 추위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이러한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반드시 기억해둬야겠다.

8경주로 치러진 그랑프리 경마대회도 ‘인코스 절대 불리’라는 상황속에서 벌어졌다. 따라서 선행을 나서는 말이나 인코스에서 선입으로 따라갈 말은 경주력이 비슷하다면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가능했다. 당일 선행은 벌마의꿈이 유력했고, 그 뒤를 2번 감동의바다와 1번 터프윈이 뛸 것으로 예측됐다. 이 세 마리의 마필이 모두 인기마였지만 주로 상황을 감안하면 고전이 예상됐고, 입상은 아무래도 외곽 중간이나 후미에서 올라올 마필이 차지할 가능성이 높았다.

경주 결과도 그대로였다. 터프윈은 인코스로 그림같은 전개를 했지만 15위라는 참패를 당했고, 감동의바다도 중간에 외곽으로 나갔지만 어수선한 경주에 휩쓸리면서 12위를 했다. 선행에 나섰던 최고 인기마 벌마의꿈은 13위에 그쳤다. 우승의 영광은 중간그룹에서 외곽으로 차분하게 따라왔던 인디밴드가 차지했다. 최외곽 게이트라 외면을 받았던 서울의 강자인 지금이순간은 오히려 그점이 약이 돼 상당한 거리를 손해보고도 2위를 차지했다.

여기서 주목해볼 마필은 3위를 차지한 천지불패다. 이 마필도 주로의 덕을 톡톡히 봤다고 할 수 있다. 객관적인 전력은 열세로 분석됐지만 1군에 올라와서 연승을 기록 중인 가장 ‘뜨거운’ 경주마라는 점에서 지난주에 이 경주 복병마로 추천했던 말이다. 이날 천지불패는 외곽에서 안쪽에 두 마리를 달고 뛰었다. 평소라면 이 정도의 ‘외곽 뺑뺑이’라면 종반엔 걸음이 무뎌져야 마땅했지만 우승과 준우승마 외의 다른 마필의 추격은 더 이상 허락하지 않고 3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터트렸다. 우승과 준우승이 ‘외곽추입’의 결과였다면 천지불패의 선전은 ‘외곽선입’의 결과였다. 출발부터 1코너까지 오르막길 구간에서 앞선을 따라잡느라 초반에 힘을 많이 소진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생각보다 훨씬 많이 뛰어줬다고 평가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이미 언급한 대로 초반 레이스가 너무 빨랐다는 점이다. 2300미터 최장거리 경주에서 초반 200미터를 13.4초대로 끊었다. 이 정도면 1000미터 경주를 하듯 초반을 달렸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더군다나 선행을 나선 벌마의꿈을 곧바로 마리대물이 강력하게 압박하면서 이후는 치명적이라 할 만큼 가속이 붙어버렸다. 이런 페이스를 따라왔던 말들도 천지불패를 제외하고는 모두 참패를 했다. 마리대물의 참패는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만했다. 전 구간을 자기 페이스로 끈끈하게 뛰는 스타일인데, 초반에 무리하게 선행마를 압박하며 페이스를 오버한 것은 누가 봐도 작전실패가 분명했다. 스태미나형의 마필을 타고 스피드로 맞불을 던졌다고 표현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세 번째는 장거리 경주는 역시 거리적성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결과론일 수 있지만 2300미터 경주에 혈통적인 거리 적성이 어울리는 마필이 입상에 성공했다. 우승을 차지한 인디밴드는 여러 차례 언급했듯 부마인 엑톤파크와 조부마인 포티나이너가 모두 2000미터에서도 우승을 기록했던 마필이다.

2위를 한 지금이순간은 전형적인 장거리 혈통이다. 부마인 인그란디어는 3200미터까지 우승했던 마필이고 조부마인 화이트머즐(White muzzle) 또한 2500미터 경주까지 우승했던 말이다. 거리적성을 들먹이는 이유는 당일 출전마들이 대부분 2300미터 경주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뛰는 거리에 대한 적응 가능성은 과거의 경주자료로도 짐작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 선조들의 거리적성을 살펴보는 것이 더 객관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점은 체중변동이다. 겨울철은 경주마의 체중변동이 크지 않다. 간혹 체중이 많이 불어서 나오는 말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휴양을 했거나 훈련이 부실한 경우다. 장거리에선 평소와 다른 급격한 체중변동은 경주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이번 그랑프리 경주에서 10kg 이상의 체중변동을 보인 말은 모두 참패를 했다. 벌마의꿈(+18kg:13위) 시크릿위스퍼(-15kg:9위) 마리대물(+13kg:14위) 터프윈(-12kg:15위) 감동의바다(-11kg:12위) 등 그러한 마필이다.

김시용 프리랜서

다음 경주 위한 세 가지 팁

터프윈 시대 막 내렸다

터프윈. 연합뉴스2세 시절인 2011년 그랑프리에서 3위를 차지했던 스마티문학은 이번 그랑프리에선 11위를 했다. 천지굴건염으로 인해 오랜 공백기를 거쳐 복귀한 이후 단거리인 1200미터 경주에서만 두 차례 뛰었다. 장거리 적응을 하지 못한 채 2300미터 그랑프리 출전을 감행한 셈이다.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이 무리한 출전이라며 혹시나 질병이 재발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현재까지는 아무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마사회 질병란을 보면 15일 이후 질병은 찰과상이 전부다. 다음 번 출전 때는 더 나은 경주력을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다른 관심은 터프윈의 노쇠다. 지난번 대상경주에서 마리대물에게 질 때 이미 그러한 측면을 드러냈지만 당시엔 컨디션 난조라 다르게 볼 여지가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마방에서 심혈을 기울여 컨디션을 끌어올렸고, 실제로 현장 컨디션도 지난번보다 훨씬 좋았다. 아무리 무거운 인코스 주로로 뛰었다고 하지만 15위라는 결과와 우승마에 4.6초나 뒤처진 참담한 기록은 그 어떤 분석으로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터프윈의 시대는 확실히 막을 내렸다는 평가다.

우승한 인디밴드는 현장컨디션이라는 측면에서 되새겨볼 만하다. 인디밴드는 훈련 때는 두각을 나타내지 않은 말이다. 이번 대회를 앞둔 새벽훈련 때에도 부산 현지에선 마이키(국1)라는 마필에 쩔쩔 매는 모습을 보였고, 서울로 이동한 후에는 감동의바다에 많이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경주로에 출장을 할 때도 맥없는 걸음으로 나가 현장컨디션을 중시하는 예상가들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다만 예시장에서 기수가 기승하기 전에는 나름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인디밴드의 컨디션은 경주로 출장시보다는 예시장에서 관찰해야 한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김시용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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