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마 ‘숨은 보석’ 고르기

김시용 프리랜서 2012-10-01 조회수 3837
▲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경마에서 이기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무얼까? 많은 사람들이 ‘확실한 정보’를 가장 먼저 들먹인다. 인기마도 터무니없이 빠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저 말이 적어도 최선을 다해준다는 것만 알아도 조금 더 승리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뜻에서 하는 말일 것이다. 그만큼 경마장에선 불신이 판을 친다. 기수에 대한 불신, 조교사에 대한 불신, 마주에 대한 불신 등등.

그리고 실제로 이런 불신이 현실에서도 종종 다가온다. 3착만 해도 승군해야 하는 마필이 3착밖에 못하는 상황이 되면 적당하게 빠지면서 4~5착을 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경우는 능력 있는 인기기수가 탔을 때 더 자주 나타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경마장에 가면 의심병에 걸린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부담중량이 늘어서 안갈 것이다’ ‘한번 댕길 타이밍이 됐다’ ‘직전에 너무 힘을 소진했다’ ‘기수가 바뀌었다’ 등등 그 이유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그래도 신뢰하는 쪽이 불신하는 쪽보다 훨씬 승률이 높다.

경마를 부정적으로 보면 한도 없다. 긍정적으로 보고 그 안에서 자신만이 믿고 베팅할 수 있는 ‘패턴’이나 ‘경우’를 찾아내는 것이 올바른 접근법이 아닐까. 이번 주엔 필자가 가장 좋아하고 신뢰하는 한 가지 유형을 소개한다. 바로 ‘걸음이 터진 말’을 노리자는 얘기다.

그렇다면 걸음이 터진 말은 어떤 말일까. 될 듯 될 듯하면서 계속 입상에 실패해오던 경주마가 어느 순간 잠재력이 폭발하면서 뛰어난 경주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마필에 대해 경마팬들은 ‘걸음이 터졌다’고 하는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 경주력은 한동안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꾸준히 입상을 해오던 말이 경주능력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돼 동급에선 경쟁자를 찾기 힘든 경우도 걸음이 터진 경우에 해당한다.

걸음이 터진 말은 보통 성장기에 있는 말 중에서 많이 나타난다. 혈통이나 마필의 생김새, 타고난 순발력 등을 감안하면 ‘이 정도로 뛸 말이 아닌데, 왜 이렇게 못뛰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그런 말은 조교(마필훈련)와 실전을 거듭하면서 걸음이 느는데, 조금씩 성장해가는 유형이 많지만 일정한 시점이 되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기도 한다.

지구력이 부족한 선행마일 경우는 나이가 들고 힘이 차면서 지구력이 보강되는 경우가 많고, 순발력이 부족한 말은 체중이 불면서 폭발력이 신장돼 출발부터 힘을 내는 경우가 많다.

성장기에서 이렇게 일순간에 걸음이 좋아진 말들은 다음 경주에서도 대부분 그 이상의 능력을 발휘한다. 실전의 예를 들어보자.

지난 9월 19일 부산경남 경마장 2경주로 치러진 1300미터 경주에서 12번 배다리대부는 인기순위가 4위였지만 1착으로 들어왔다. 당일 인기 순위 1위였던 2번 우레같이가 3착을 차지했고, 인기순위 3위였던 14번 미스터카이저가 2착을 차지해 복승식20.0배, 쌍승식 53.3배의 꽃배당이 나왔다.

12번 배다리대부는 바로 그전 경주에서 걸음이 터진 말이었다. 배다리대부는 그전까지 모두 여섯 차례 경주를 치러 2착 1회, 3착 1회만 기록하고 있었다. 데뷔전에선 1200미터에 출전해 1분18.1초(기록지수36)의 기록으로 8착을 했고, 두 번째 경주에선 1000미터에서 1분02.0초(44)로 5착을 차지했다. 세 번째는 다시 1200미터에서 1분16.6초(46)로 8위를 차지했다. 순위는 더 떨어졌지만 경주력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네 번째 경주에서는 다시 1000미터에 출전해 처음으로 3착을 차지했다(1:01.7기록지수49). 그러나 이 때까지만 해도 이 말의 경주력은 꾸역꾸역 향상되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다 다섯 번째 경주에선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지난 8월 1200미터 경주에서 배다리대부는 1분15.4초(63)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2착을 차지했다. 기록지수에서 한꺼번에 14점이 급상승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른 경주 때와는 달리 전 구간을 꾸준하게 잘 뛰는 이상적인 주행을 보였다. 바로 걸음이 터졌던 것이다.

문제의 9월 16일 경주에선 우승후보들의 기록지수가 50점대 중·후반이었고 거리만 1300미터로 늘어난 상태. 인기마 1위마였던 2번 우레같이는 1000미터밖에 거리경험이 없었던 데다 기록지수마저 배다리대부가 앞서고 있어서 절호의 베팅 찬스가 아닐 수 없었다.

걸음이 터진 말과 관련해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기복마와 혼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쩌다 한 번씩 컨디션이 좋을 때만 잘 뛰다가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는 말이나 경주능력이 경주 조건에 따라 심하게 편차를 보이는 말은 능력 발휘를 했던 바로 그 다음 경주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나 더. 걸음이 터지는 말은 보통 성장기의 말 가운데 많지만 중·장년마 가운데서도 간혹 나타난다는 것이다. 혈통상 나이가 차야 자기 능력이 발휘되는 대기만성형 경주마에서 흔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경주마 스타일에 맞지 않는 조교방식을 해오다 뒤늦게 알아차려 새로운 방식으로 훈련해 성과를 보인 경우, 또 오랫동안 고질적인 질병을 앓아오던 말들이 질병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말이 지난 9월 15일 과천경마장 11경주(국1)에서 이변을 터트린 탐라선택을 들 수 있다.

탐라선택은 국산 1군에 올라와선 그리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그동안의 고질이던 후두염이 나으면서 7월부터 훈련에 집중해왔다. 그 결과가 9월 15일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 경주에서 탐라선택은 인기6위에 불과했지만 ‘싱그러운아침’ ‘홀리몰리’ ‘루비퀸’ 같은 대상경주 우승, 준우승마들을 제치고 2착을 차지했다.

걸음이 터진 말이 연투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그 말에 대한 조교사들이나 마주들의 기대치가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경주보다 경주조건이 더 나빠졌음에도 판이한 경주능력을 보인 말에 대해선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가져보자.

김시용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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