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을 열받게 하는 레이스

김시용 프리랜서 2015-11-04 조회수 2445
[일요신문] 경마는 추리게임이라고 한다. 선행, 선입, 추입, 무빙 등 경주전개를 추리하기도 하지만 직전경주와 비교해 얼마나 다르게 뛸지도 추리한다. 자신의 추리대로 경주가 전개되고 결과까지 적중한다면 그 쾌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추리대로 되고 안되고는 개인의 예상능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대부분 자신의 예상대로 되지 않았다고 기수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간혹 정말 배신감을 느끼게 하는, 그야말로 사기를 당했다는 느낌이 들 만큼 황당한 경우도 겪게 되는데, 이번 주에는 그런 경우에 대해서 한번 살펴볼까 한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황당한 추입

최근에도 이런 경우가 있었지만 단독선행이 유력한 마필이 후미에서 산책하고 있을 때는 정말이지 배신감에 치를 떨게 된다. 

10월 18일 서울 마지막 경주를 한 번 보자. 출전마들의 선두력을 살펴보면 6번 감동시대의 선두력이 가장 앞섰고, 그 다음이 외곽에 있는 10번 에이스더블이었다. 당연히 선두력도 조금 낫고 게이트도 안쪽인 6번의 단독선행이 예상됐고, 그동안 강한 편성에서도 선행시도를 하면서 나름 가능성을 보인 말이라 일부 팬들의 베팅이 집중됐다. 

그렇지만 경주 내용은 완전히 달랐다. 6번 감동시대는 출발이 좋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기수가 말을 독려하지 않고 제어하면서 의도적으로 뒤로 빠졌고, 외곽이었지만 적극적인 말몰이를 한 10번 에이스더블이 선행을 받아내고 2위로 골인했다. 기수가 단독으로 이런 작전을 펼 수는 없다고 보면 이는 조교사의 지시에 의한 작전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 물론 진실은 알 수 없지만.

필자는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늘 선행 가능한 마필이 두 마리일 경우는 능력마 놓고 선행마 두 마리를 같이 공략하는 베팅을 자주 구사한다. 복식은 적중률이 높지 않지만 간혹 삼복승은 꿀배당을 선사한다. 조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주행습성을 바꾸기 위해서 이런 작전을 펴곤 하는데, 작전의 일관성이 없고, 그것도 하필이면 ‘선행 버티기’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편성에서 완전히 후미 추입을 하는 것은 팬들의 입장에선 납득하기 힘든 행위로 보인다. 감동시대가 다음 경주에 나왔을 때 어떤 작전을 들고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 무리한 선행

후미에서 곱게 따라오다 서서히 거리를 좁힌 뒤 막판에 추격하는 추입마의 존재는 경마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요소 중 하나다. 추입마가 경마의 존립 자체를 결정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을 정도다. 매번 앞장서는 말이 쏙쏙 우승한다면 베팅은 성립이 될 수도 없거니와 재미 또한 반감된다는 것이다. 

추입마는 초반에 힘을 폭발시키지 않고 서서히 몸을 풀듯이 따라오며 탄력을 붙이는 질주를 한다. 이런 말이 초반에 힘을 내면서 빠른 선행마들과 비슷하게 앞선에 붙는다면 좋은 결과가 올까. ‘저 말은 뒷심이 좋은 말이야. 벌써 앞선에 붙었다면 막판에 볼 것도 없어. 창구 앞에 가서 줄만 서면 돼’라고 말하는 팬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는 정말 잘못된 판단이다. 경주마는 기계가 아니다. 초반부터 종반까지 가속페달을 밟는 대로 자동차는 달릴 수 있지만 경주마는 살아있는 생명체라 한계가 있는 것이다. 간혹 앞에서 뛰든 뒤에서 뛰든 비슷한 능력을 발휘하는 말(이런 말을 자유마라 한다. 예상지에 표시된 자유마는 주행습성을 잘 모르는 말일 경우가 많고 진정한 자유마는 별로 없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기 스타일에 적합한 작전을 펼쳐야 좋은 결과가 온다. 

오래된 얘기지만 2005년 전후에 해란강이란 전형적인 추입마가 있었는데 초반부터 강력한 선입작전으로 맞불을 펴면서 3~4위권에 따라가다 끝까지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4위로 끝난 적이 있었다. 이 경우는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고 작전실패로 보였지만 당시에 필자 주변에서 워낙 크게 베팅한 사람이 있어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최근에는 기모아런치(서울)의 레이스를 두고 말이 많았다. 일류기수가 그 정도로 내빼면 막판에 버틸 수 없다는 것을 몰랐을까 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팬들이 적지 않았었는데 필자의 결론은 ‘판단 유보’였다. 

기모아런치의 레이스를 보면 중반에 무리하면서 거리를 벌렸고, 이 과정에서 기수의 적극적인 제어가 없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두 가지 관점에서 보면 조금 다르게 볼 여지가 있다. 우선 초반에 1번 진명지존이 워낙 강하게 따라붙으며 압박을 했고 그 말을 따돌리느라 가속이 너무 붙어버렸다는 점에서 얼마간은 이해의 여지가 있다. 두 번째로 마필 상태가 워낙 좋았고 편성 자체가 워낙에 허접해 기수가 그 정도는 괜찮을 것으로 판단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도 현장에서 관전을 하면서 저 정도는 문제가 안될 것이라고 봤었다. 마지막으로 기모아런치는 그 경주가 두 번째로 출전한 아직 어린 말이라는 점이다. 어린 말은 그 능력을 정확히 가늠하기 힘들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기수에게 면죄부를 주지 못하고 최종판단을 ‘유보’한 것은 당시의 경주거리가 실전경험이 적은 말에게는 다소 벅찬 감이 있는 1300미터였기 때문이다. 다음 경주에선 기모아런치가 어떤 작전을 들고 나올지 한번 지켜보자. 

# 어부지리형 선행

선두력이 좋은 말이 워낙 많이 편성됐을 땐 당연하게도 선입형이나 추입형 마필 중에서 능력있는 말을 골라 베팅한다. 앞에서 싸우다 힘이 빠질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석이기 때문이다. 선입마나 추입마가 어부지리를 얻어 입상할 절호의 찬스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엉뚱하게도 그 많은 선행마 중에서 한 마리가 어부지리를 얻는 경우가 있다. 선행경합을 할 걸로 예상했지만 황당하게도 대부분의 선행마가 늦발을 하거나 지레 선행을 포기하고 딱 한 마리가 유유히 선행을 나선 뒤 결승선까지 꽂히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따라가는 말을 놓고 베팅을 한 사람 입장에서 참으로 허무한 전개인 것이다. 

10월 23일 부경 경마 11경주에선 6번 신흥고수도 빠르긴 했지만 선두력이 좋은 말이 무려 예닐곱 마리가 포진해 있었기 때문에 6번의 선행은 어렵지 않겠나 싶었다. 그렇지만 6번이 강력한 의지를 보이며 앞선을 장악했고 그 많은 선행마들은 모두 따라갔다. 객관적인 상황으로 보면 ‘무식한’ 작전이었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용감한’ 작전이었던 것이다. 이 경주는 엄청난 배당이 터졌다.

김시용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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