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루치노호' 불법개조를 파헤치다-박정환 기자

일요신문 2016-02-26 조회수 4488
기사 바로가기 - [단독] 제주행 초대형 여객선 승선 정원 '2배' 개조, '제2의 세월호 우려'


취재원과 주거니 받거니 밤새 또 술을 마셨습니다. 시간을 보니 집에 가기는 틀렸고 어김없이 사우나에 들렸습니다. 노곤한 몸을 지지고 잠에 빠졌습니다. 한참을 자다 눈을 떠 시간을 보니 이번엔 정시에 회사 가기엔 틀렸습니다. 어찌 이렇게 시간은 빨리 가는지 주섬주섬 준비를 하고 밖을 나섰습니다. 

휴대폰을 보니 팀장님의 부재중 전화가 떠 있었습니다. 순간 아찔한 기분. 그렇지 않아도 팀내 지각률 선두를 달리고 있는 저였기에 팀장님의 불호령이 조심스럽게 예상됐습니다. 평소 ‘기자정신’, ‘열정’, ‘희생정신’을 강조하는 저희 팀장님에게 구차한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사실상 1인 헌법 기관인 기자들이 태도를 더욱 바르게 해야 한다고 팀장님은 늘 강조하셨습니다. 남은 숙취를 떨치고 마음을 비운 후 전화를 걸었습니다. 뚜루루 울리는 수화음. 어김없는 팀장님의 목소리 “니 어디서 또 놀고 있냐”, “어제 늦게까지 일했는데요”, “엥간히 놀고 어쨌든 이것 좀 알아봐라” 그때부터 이어진 팀장님의 말에 오히려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내용인 즉 “세월호 크기만큼의 대형 여객선이 불법 개조한 의혹이 있는데 한번 확인을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느새 1년 반이 훌쩍 지난 세월호 사건. 아직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은 가운데 여객선을 또 불법 제조한 사실이 밝혀진다면 파장이 클 것임이 분명했습니다. 게다가 해당 여객선은 6815톤급의 세월호보다 훨씬 큰 1만 5180톤급 여객선인데다가 세월호와 유사하게 선령이 높은 중고선박이었고, 제주도로 향하는 선박이었습니다. 해당 선박의 이름은 ‘산타루치노호’입니다. 

핵심 의혹은 산타루치노호를 일본에서 들여와 개조하는 과정에서 승선 정원 및 차량 대수를 급격하게 늘렸다는 것입니다. 이 한 가지 단서만을 가지고 취재에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산타루치노호의 현재 재원을 확보하는 게 중요했습니다. 여차저차해서 확보를 하기는 했는데 문제는 일본에서 운항할 당시, 그러니까 ‘과거 재원’이 파악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산타루치노호가 개조 작업을 거쳤다면 분명 선박 이름을 바꿨을 가능성도 높았습니다. 바로 한국선급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한국선급 측에 처음부터 무턱대고 개조 얘기를 꺼내진 않았습니다. 그저 산타루치노호에 관심이 좀 있는데 혹시 일본에서 수입해온 것이 아니냐고 물어봤습니다. 대답은 “맞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운항할 당시 선박 이름은 혹시 무엇이었냐고 물어보니 한참 서류를 뒤적거리던 담당자가 한 마디를 했습니다. “‘SOU’라고 적혀 있는데요?” 

선박 이름은 알아냈지만 또 다른 난관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바로 SOU의 재원을 확보하는 것. 맨땅에 헤딩한다는 심정으로 일본에 있는 주요 선사들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반나절이 흘렀을까. 선박 소개란에 ‘SOU’가 떠 있는 선사를 포착했습니다. 모양, 크기 등 여러 단서를 조합하면 산타루치노호와 딱 들어맞는 동일 선박이었습니다. 비록 선박을 팔긴 했지만 일본 선사는 친절하게도 사진, 재원 등을 홈페이지에 그대로 남겨 둔 것입니다. 

이제 게임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개의 재원을 비교를 했는데 의혹은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일본에서 운항할 당시 SOU의 최대 승선 정원은 ‘810명’, 차량은 ‘296대’였지만 산타루치노호로 개조 후 최대 승선 정원 ‘1425명’, 차량 ‘500대’로 무려 2배 가까이 뻥튀기 됐습니다. '세월호 사건'의 원인 중 하나가 '과적'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안전에 대한 우려가 충분히 제기될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한국선급과 산타루치노 선사 측에 이제 ‘쎄게’ 붙기 시작했습니다. 개조 사실과 혹시 불법은 아닌지 등을 캐물었습니다. 한국선급은 뒤집어졌습니다. 수십 차례의 사실 확인 과정과 공방이 이어졌습니다. 그 내용들을 그대로 기사에 옮겼습니다. 

기사 마감까지 시간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온라인팀에서 일하다 보니 누구보다 빨리 써야 한다는 다급함과 취재를 깊게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교차했습니다. 그러나 취재3팀 홍성철 팀장님의 배려와 인도, 선배, 후배들의 응원으로 힘을 냈습니다. 2016년 새해 오랜만에 받은 특종상에 감사드리며,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박정환 기자(일요신문 취재3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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