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5호]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 씨 - 한병관 기자

일요신문 2013-06-18 조회수 6068

[일요신문]

기사 바로가기 ⇨ [제1055호] 김영환 구금사태로 이슈화 “중국 공안에 나는 이렇게 당했다” 

제가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 씨를 처음 만난 건 벌써 3년 전 일입니다. 당시 저는 북한학을 공부하던 학생이었고 휴학으로 짬을 내 대북NGO 간사로 일하던 시기였습니다. 김영환 씨는 당시 간사 교육 프로그램에 초대돼 우리에게 강의를 해줬죠. 말이 강의지 워낙 작은 단체라 교육에 참가한 인원이 네댓 명 됐을 겁니다. 실상 교육이라기보다는 회사 테이블에 둘러앉아 차 한 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수준이었죠.

그때 제가 느꼈던 것은 “세상에 이 양반처럼, 힘들게 살아온 양반이 또 있을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서울대 법대에서 공부 좀 했다는 그는 소위 말하는 ‘주사파 골수분자’였습니다. 그는 은은한 미소를 띠며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하게 자신의 고난사를 얘기해줬는데요. 주사파들의 필독서인 <강철서신>을 집필한 얘기, 서치라이트를 피해 잠수정을 타고 서해바다를 건너 김일성 주석과 독대한 얘기, 갔다 와서 안기부에 끌려와 작살난 얘기, 그리고 힘겨웠던 수감생활…. 그의 고난사 하나하나가 한 편의 영화 같았습니다. 교육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 같아 퇴근길에도 그와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죠.

그와의 인연은 거기서 끝인 줄 알았습니다. 90년대 후반 사상을 전향한 그는 북한인권운동가로 새 삶을 살고 있었고 그의 고난사도 거기서 끝인 줄 알았죠. 그런데 올해 5월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됐죠. 김 씨가 중국 사회안전부에 붙잡혀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뒤로 인연이 없었지만 기자가 되고 접한 그의 소식에 맘속으로 덜컹했습니다.

지난 7월 25일,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114일간의 수감생활을 뒤로 하고 한국에 돌아왔지만 과연 114일간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 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죠. 이따금씩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간 당했던 비인간적 처우에 대해 간접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지만 이야기의 전말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처음 김 씨에게 114일간 수감 수기를 제안했을 때, 그가 승낙을 할지에 관해서 반신반의 했죠. 다행히 김 씨는 3년 전 저와의 스친 인연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와의 인터뷰는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그는 고된 수감생활로 체력적으로 힘들어 육필은 어려웠지만 인터뷰를 통한 육성수기를 허락해줬습니다. 2시간 넘게 진행된 114일간 그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한 편의 추격전을 방불케 했습니다. 도청과 미행, 납치, 그리고 감금 생활 당시 겪었던 전기고문, 잠 안 재우기 고문, 수감 생활에서 맺어진 인연들 그리고 추방….

어린 시절부터 파란만장한 인생을 겪은 그지만 인터뷰 내내 얼핏얼핏 어둠의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그도 어머니, 부인과 자식을 둔 평범한 가장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의 고난에 가족들이 겪을 아픔도 눈에 선했습니다.

사실 그의 사상과 활동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좋지 않은 시선도 존재합니다. 현재도 중국에서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는 제2, 제3의 김영환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의 사상과 활동에 대한 논란을 차치하고서라도 부디 그와 그들의 동지가 현재 타지에서 겪고 있는 안타까운 고난사는 멈췄으면 바랄 뿐입니다.

한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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