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6호] 1년 만에 찾아온 특종, 그리고 끝나지 않은 진실 - 홍성철 기자

일요신문 2013-06-18 조회수 6910

[일요신문]

기사 바로가기 ⇨ [제986호] [특종!] 베트남 성스캔들 SKT 전 간부 공판조서 완전공개


“참여정부 시절에 일부 386정치인들이 베트남에서 대기업들로부터 향응과 성접대를 받았다는 정보가 있다.”

1년 전쯤인 지난해 5월 초순경, 정보당국에 근무하는 절친 선배가 필자에게 귀뜀해준 소스였다. 정치인과 대기업, 검은 커넥션, 성 스캔들 등 3박자를 두루 갖춘 그야말로 주간지 특종감이었다. 필자는 선배를 집요하게 설득한 끝에 보다 구체적인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386정치인 중에는 놀랍게도 6·2 지방선거 때 제1 야당인 민주당 인천시장 후보로 출마한 송영길 시장도 포함돼 있었다.

필자는 선배의 도움으로 대기업 베트남 법인장을 지낸 A 씨를 비롯해 몇몇 핵심 인사들을 베트남 현지에서 만나기로 하고 5월 9일 저녁 하노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다음날(10일)부터 하노이와 호치민을 오가며 무척이나 바쁜 취재일정을 소화했다. 베트남 대사관 방문을 시작으로 베트남 한국교민신문사, 호치민 한인회, 호치민 유흥가 등을 방문해 관계자들을 만나 2004년 8월에 벌어졌던 ‘386정치인 성 스캔들’ 의혹과 관련한 다양한 소문과 진실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대기업 법인장을 지낸 A 씨는 2004년 8월 의원단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당시 SKT를 비롯해 삼성, LG, 포스코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 법인들이 의원들을 영접하고 스폰을 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호치민 한인사회와 유흥가 관계자들을 접촉한 결과 386정치인들의 ‘성 스캔들’은 단순한 소문이 아닌 팩트일 가능성에 힘이 실렸다. 다만 7년여의 세월이 흘렀고, ‘성 스캔들’의 경우 당사자가 부인하고 현장 목격자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사실관계를 규명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한계는 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필자는 비행기 안에서 어떤 식으로 기사를 작성할지를 놓고 적잖은 고민에 빠졌다. 여러 정황상 ‘386정치인들 성 스캔들’ 의혹이 팩트일 것이란 확신은 들었지만 이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단서는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검찰 스폰서’ ‘경찰 스폰서’ 논란으로 사회가 시끄러웠던 만큼 차라리 팩트가 확인된 ‘정치인 스폰서’를 주제로 기사를 작성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자의 이러한 고민은 귀국 후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여야 정치권이 사활을 걸고 다투고 있는 6·2 지방선거가 보름여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386정치인 성 스캔들’이든 ‘정치인 스폰서’든 베트남발 기사는 민주당 인천시장 후보인 송영길 시장이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어떤 식으로든 선거에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높았다. 김원양 국장과 함께 심사숙고한 결과 베트남발 기사는 선거 이후로 미루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선거판에서 일이 벌어졌다. 당시 평화민주당 인천시장 후보로 나선 백석두 씨가 경쟁자인 송 후보의 ‘베트남 성접대’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백 씨는 5월 18일부터 수차례에 걸쳐 기자회견 등을 통해 송 후보의 성접대 의혹과 관련한 증거를 제시하는 등 파문을 확산시켰다. 이후 인천시장 선거는 ‘성 스캔들’ 의혹으로 진흙탕 선거전으로 얼룩졌고, 급기야 고소고발로 비화됐다. 이러한 악재를 극복하고 송 시장은 선거에서 승리했고, 검찰은 선거후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해 6월 중순부터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5개월여 만에 결과물을 내놓았다. 인천지검 공안부는 지난해 11월 22일 송 시장의 ‘베트남 성접대’ 의혹을 제기한 백 씨를 허위사실 공표에 의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다만 검찰은 송 시장의 베트남 성매매 의혹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만료를 이유로 ‘공소권 없음’ 처분을 했다.

검찰 수사결과를 접한 필자는 잠시나마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기사를 미뤘던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한 검찰 수사 결과 및 백 씨에 대한 기소로 ‘성 스캔들’ 사건은 실체 없는 허위사실로 일단락되는 듯했다. 베트남행 비행기에서 특종을 구상했던 필자의 기대감도 일장춘몽으로 막을 내리는가 싶었다.

하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평범한 진리가 현실로 다가왔다. 이 사건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핵심 당사자들이 법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증언했기 때문이다. 2004년 8월 386정치인들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당시 의전을 담당했던 김 아무개 전 SKT 부장은 법정에서 의원들에 대한 향응 및 성접대 정황을 증언했다. 필자는 정보당국 선배로부터 김 씨가 법정에서 폭탄증언을 했다는 첩보를 전달받고 ‘외부에 유출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작성하고 어렵게 공판조서 사본을 입수했다. 공판조서에는 386의원들을 고급 술집에서 접대했고, 2차를 원한 일부 의원들을 베트남 현지 여성들과 함께 호텔에까지 직접 모셨다는 김 씨의 구체적인 증언이 담겨져 있었다.

이렇게 사장될 뻔했던 베트남발 기사는 우여곡절 끝에 1년여 만에 그 빛을 보게 됐다. 재판부 또한 김 씨가 ‘386정치인 성 접대’ 의혹 사건의 열쇠를 쥔 핵심 당사자였다는 점에서 그의 법정증언을 최대한 반영한 판결을 내렸다. 인천지방법원 형사13부 지난 5월 13일 열린 백 씨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검찰의 공소사실 가운데 일부만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와 증인들의 진술 등을 종합해 보면 성매매 부분 자체를 허위로 볼 증거가 부족하고, 피고인의 주장이 허위라는 점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386정치인들의 성접대 의혹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현재 이 사건은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항소심 재판부와 대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향후 재판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중요한 것은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사실이다. 도덕성과 청렴성을 정치적 가치로 내세우고 있는 해당 386정치인들이 사법적 판단을 떠나 지금이라도 그날의 진실을 고백하기를 기대해 본다.

홍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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