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호] 축구계 더이상의 승부조작이 없기를 바라며 - 한병관 기자

일요신문 2013-06-18 조회수 5067

[일요신문]

기사 바로가기 ⇨ [제1000호] 서울 신흥 명문 K고 축구부 운영 비리 뜯어보니

축구계는 올해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소문만 무성하던 ‘승부조작’ 사태가 현실로 드러나면서 프로축구를 사랑하는 팬들은 물론 국민들에게까지 큰 충격을 안겼다.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상당수 A급 선수들도 이번 여파로 다시는 축구장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단순히 프로에만 한정된 한심한 어른들의 돈장난인 줄만 알았다.

처음 K 고등학교 축구부 운영 비리에 관한 제보를 받았을 때, 대단히 마음이 안타까웠다. 검은 도박과 승부조작으로 얼룩진 현실이 프로뿐 아니라 아이들의 학원스포츠 현장에도 그릇된 어른들의 횡포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기자가 취재한 K 고등학교는 창단한 지 불과 6년밖에 안됐지만 지난해 전국대회 4강에 진출하는 등 가능성과 소기의 성과를 이룩한 신흥강호였다. 이러한 전도유망한 축구부에는 아이들의 꿈과 무관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K 고 축구부의 감독을 겸하고 있는 체육교사 C씨는 자신이 앞장서 만든 축구부와 아이들을 자신의 돈벌이로만 이용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꿈과 희망은 온데간데 없었다.

뻔히 알지만 자식들이 눈에 밟혀 학부모들은 주머니를 털 수밖에 없었다. 속만 타들어갔다. 학부모들이 밝힌 C 씨의 비리목록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C 씨가 6년간 털어간 금액만 자그마치 4억 원이 넘었다. 명절 떡값에 각종 후원비 및 보너스는 물론 개인적인 차수리비에 숙박업소 사이와의 리베이트까지 포착됐다. 심지어는 정부가 지원하는 운영기금까지 소리 소문 없이 그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학교가 창단 6년 만에 축구부의 해단을 결정한 것이다. 학교 측은 운영자금상 이유로 축구부 해단을 결정했지만 대학 입학과 프로 진출을 목전에 둔 어린 부원들과 학부모들에게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더군다나 학부모들에게 감독 겸 교사 C 씨는 강탈에 가까운 강도짓을 하고난 이후였다.

더 자세하게 들어가 보니 문제는 매우 심각했다. C 씨는 학부모들에게 걷어들인 돈 중 일부를 심판매수에 사용했다고 밝혔다. 아마추어 스포츠의 승부조작 의문이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에게는 당연히 씻을 수 없는 상처였다. 정정당당한 스포츠맨십을 배우기 이전에 어른들의 그릇된 술수를 배운 것이다. 아이들이 성장해 어엿한 프로선수가 되더라도 이러한 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기자와 통화한 한 학부모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꼭 밝혀져야 한다”라고 말하며 수화기를 놓았다. 이번 일로 충격을 받은 이 학부모는 병원에 몸져누워 입원을 한 상태였다. 당사자인 아이들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축구부 운영비리의 당사자인 C 씨는 이미 학교를 떠나 다른 학교로 전근 간 상황이었다. 6년간 털어간 학교 축구부를 접고 아이들의 미래는 나몰라라 하는 그의 태도가 비열하고 원망스러웠다. 자신의 죄는 부끄러웠는지, C 씨는 휴대폰을 꺼둔 채 잠적한 상태였다.

다행히 교육청의 감사를 통해 C 씨의 비리 내역과 축구부의 파행적인 운행은 만천하에 밝혀졌다. 더더욱 다행인 것은 학교가 여론과 학부모의 강한 반발을 받아들여 축구부 해단을 전격 취소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마음에 남겨진 생채기는 깨끗이 가시지는 않을 것이다.

학원스포츠의 본디 목적은 아이들의 전인적 교육을 통해 올바르게 성장을 유도하는 데 있다. 결코 상급학교를 진학하기 위한 그릇된 수단이 아니며 어른들의 잇속을 위해 이용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살갑게 부딪히는 운동경기를 통해 사회를 배우고 땀을 흘리며 노력의 대가를 배우며 상대와의 맞섬을 통해 스포츠맨십과 정정당당함을 배우는 것이다. 앞으로는 K 고와 같은 불상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반드시.

한병관 기자

sns 연동하기

댓글 0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또는 비하하는 댓글 작성시, 삭제 될 수 있습니다.

지면 보기

제1663호

발행일 : 2024년 4월 3일

제1662호

발행일 : 2024년 3월 27일

제1661호

발행일 : 2024년 3월 20일

제1660호

발행일 : 2024년 3월 13일

제1659호

발행일 : 2024년 3월 6일

제1658호

발행일 : 2024년 2월 28일

제1657호

발행일 : 2024년 2월 21일

제1656호

발행일 : 2024년 2월 14일

제1655호

발행일 : 2024년 2월 7일

제1654호

발행일 : 2024년 1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