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9·1092호] "김학의 성접대 영상" 사건을 취재하며 - 김포그니 기자

일요신문 2013-08-14 조회수 8302
[일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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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장과 검찰 고위간부가 섹스파티를 했대. 일단 너한테만 알려주는 거야.”

2012년 10월경 한 경찰관계자의 말에 정신이 번쩍 뜨였다. 사실이라면 어마어마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약 2주 후 평소 알고 지내던 사업가 A 씨로부터 “무서운 사건 하나 줄까요”라는 연락을 받았다. 놀랍게도 일전의 경찰관계자가 했던 말과 같은 내용이었다. 원주에 있는 한 별장에서 섹스파티가 열렸고 여성 2명이 검찰, 경찰 고위급 간부들에게 윤간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 장면이 고스란히 영상으로 촬영돼 CD로 남아있다는 얘기가 단연 압권이었다.

‘마약·섹스·검경 고위급 인사·별장·섹스파티·CD.’ 그 누가 믿겠는가? 대한민국이 깜짝 놀랄 만한 일이었다. A 씨는 현재 자신이 피해 여성들을 돕고 있다며 ‘곧 있으면 서초서에서 수사가 들어갈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겠지만 피해여성들의 진술을 토대로 서초서로부터 확인만 받으면, 이니셜 기사라도 쓸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즉시 보고를 올렸으나 최고 윗선으로부터 ‘우선 영상을 확실히 확인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섹스파티에 엮인 고위급 인사명단은 물론 문제의 영상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영상에 나오는 고위급 간부가 누군지 알아내는 작업은 순탄치 않았다. 취재에 착수한 지 한 달 만인 2012년 11월경이 되어서야 그 영상에 나오는 인물이 김학의 전 차관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때마침 A 씨는 ‘김학의 영상’을 줄 테니 피해여성들이 미국으로 도망갈 수 있게 20억 원을 마련해달라고 제안해왔다(아마도 A 씨는 비슷한 시기에 김 전 차관에도 같은 가격을 제안한 것 같다. 후에 회자된 ‘20억 원 설’이 여기서 나왔다). 이에 ‘여기가 할리우드도 아니고 대선 직전 대선후보의 섹스 영상도 그 가격은 안 할 것’이라며 ‘8000만 원에 쇼부 치자’고 줄다리기를 해봤으나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했던 제안도 황당하긴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전세금을 털어서라도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이 굉장히 컸던 것 같다.

A 씨와 수시로 만나며 사건 전말을 들어봤으나 그의 주장은 수시로 달라졌다. 직감으로는 그도 사건의 본질은 잘 모르는 듯했다. 피해여성들의 진술에도 빈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답은 하나였다. 윤중천 회장이다. 그를 만나야 했다. 김학의 영상을 만든 그를 만나서 승부를 봐야겠단 생각에 또다시 기약 없는 취재에 들어갔다. 결국 거미줄처럼 엮인 인맥을 조사해 접근한지 두 달 만인 2013년 1월경, 수십 차례의 읍소(?) 끝에 삼정호텔의 한 커피숍에서 윤 회장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시 경찰청 특수수사팀이 이 영상과 관련해 내사를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윤 회장은 ‘김학의 영상’의 존재를 조심스레 인정하면서도 ‘성접대가 아니고 그저 7~8년 전 사나이들끼리 잠시 논 것일 뿐’이라며 모든 의혹을 일축했다. 또 그는 ‘김학의를 여러 번 도와줬는데 내 경제사정이 안 좋아지자 연락도 받지 않는다’며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에 기자가 ‘김학의를 한번 혼내줘야지 않겠느냐’고 떠보자 윤 회장은 ‘주변 사람 괴롭히는 건 정의롭지 못하다’며 기자를 훈계하기도 했다. 몇 달간 기자가 겪어본 윤 회장은 ‘의리파 마초’ 성향의 인물이었다. 평소 ‘정의’, ‘진실’이라는 말을 하기 좋아했고 호탕하게 주변 사람을 챙기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기자에게도 수시로 “지금 난 가진 건 없지만 원주에 별장 하나가 있다. 언제든지 친구들과 놀러와서 사용하라”며 권유하기도 했다. 윤 회장의 한 측근 역시 “김학의 영상을 갖고 싶으면 윤 회장과 더 신뢰관계를 터야지 않겠는가. 주말에 원주 별장에서 술이나 한잔 하자“며 별장으로 올 것을 수시로 권유했다.

이를 두고 ‘김학의 CD’를 윤 회장의 벤츠차에서 발견한 이른바 해결사들은 기자에게 “김 기자도 당할 뻔했네. 원주별장에 초대받고 약 먹이고 다 그렇게 시작됐다. 권OO(피해여성)도 그랬어”라는 말로 기자를 크게 염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취재 내내 계속됐다.

그저 밝혀진 유일한 진실은 ‘김학의 영상’이 있다는 것. 2013년 2월경 드디어 윤 회장은 자신의 벤츠차에서 문제의 영상을 틀어 기자에게 보여줬다. 이 영상을 보기 위해 장장 4개월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달려왔다. 그리고 이번 사건 말미까지 모두가 보고 싶어 했던 그 영상이 눈앞에 생생히 펼쳐졌다. 1분 58초 분량의 CD엔 김학의 전 차관의 모습을 각각 다른 각도에서 촬영한 영상이 세 커트로 나눠져 보관돼 있었다. 곁눈으로 봐도 영락없는 김학의 전 차관이었다. 그러나 영상의 존재보다 더 중요한 건 이것이 접대인가 아닌가의 여부였다. 몇 달간 기자가 접해본 윤 회장은 성접대를 주도한 거물급 건설업자치곤 억대의 부를 쌓은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그는 사건이 언론에 회자되기 한참 이전부터 접대성 목적의 섹스파티를 주선한 적이 없다고 일관성 있게 주장해왔다. 수사전문가가 아니고서야 그 누구라도 윤 회장의 죄질 경중을 따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윤 회장이 도와줬다던 거물급 인사들이다. 사업가 특유의 허풍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윤 회장에 의해 거론된 인사의 명단은 화려했다. 사실 확인이 어려워 기사엔 적지 않았지만 현재 외교부 최고위급 관계자가 김학의 전 차관의 차장검사 승진을 도왔단 얘기도 있었다.

윤 회장과 그 주변을 취재한 지 또다시 30여 일이 흘렀다. 좀 더 확실한 정황을 잡을 때까지 보도를 미루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차에 한 종편방송에서 ‘김학의 영상’ 건이 보도됐다. 그날 새벽 윤 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 정말 억울해. 지금 당장 나와. 나 너무 억울하다.” 다음 날 윤 회장의 원주 별장 근처엔 전 언론매체의 기자들이 개미떼처럼 깔려 있었다. 분당 근교에서 단독으로 만난 윤 회장은 반나절 만에 마음을 바꾼 상태였다. 그는 ‘조용히 있으면 잠잠해질 것’이라며 ‘애먼 사람들에게 피해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곧 사건이 더 커질 것이 분명함에도 윤 회장은 일말의 예측조차 못하고 있었다.

윤 회장의 바람과는 반대로 의혹은 커져만 갔다. 일부 매체에선 피해여성 진술에만 의존해 사건을 키우는 모습을 보였다. ‘가면파티’라는 확인도 안 된 정황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자극적인 재연영상으로까지 만들어져 버젓이 방영되기도 했다. 경찰 역시 김학의 차관의 원본 영상을 확보하지도 못한 채 우왕좌왕인 건 마찬가지였다. 때마침 A 씨가 기자에게 ‘모 기자를 만났다가 이용당했다. 도와달라’며 만남을 청해왔다. 당시 경찰청 내사를 받고 있었던 A 씨는 신변보호를 위해 기자의 휴대폰으로 타 매체와 통화를 하기도 했다. 곁에서 인터뷰 내용을 들어보니 그 기자들은 사건의 줄거리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른바 가장 먼저 보도를 한 주인공이었음에도.

결국 매체 중에서 거의 맨 마지막으로 기사를 올리게 됐다. 기사가 나가자 윤 회장 측에서 크게 분노하며 만나길 청해왔다. 기사가 나간 당일 밤 12시 서초역 근처에 세워진 윤 회장의 벤츠에 올라타자 곧바로 차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차는 후미진 골목에 잠깐 멈췄다가 5~10분마다 장소를 바꾸었다. 윤 회장은 움직이는 차 안에서 자신은 죄가 없다며 울분을 토해냈고 죄 없는 사람들이 다칠 것을 걱정했다. 사실 윤 회장도 억울한 면은 분명히 있다. 그의 내연녀였던 권 씨가 피해여성으로 둔갑해 벌인 진술로 시작된 사건인 만큼 여러 모로 윤 회장에게 불리하게 상황이 돌아갔다. 그러나 기자를 협박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후 협박성 경고가 몇 차례 있었지만 보도를 멈출 순 없었다.

그러던 차에 벤츠에서 김학의 영상을 발견한 해결사들로부터도 연락이 왔다. 우연히 영상을 손에 넣은 이 해결사들은 영상을 경찰청에 넘겨야 할까 고민하면서도 “김학의 전 차관에게 보복당할 게 두렵다, 최근에 김 차관이 사람을 시켜 우리에게 당분간 조용히 있으라는 지령을 내렸다”며 심적으로 크게 지쳐있는 모습을 보였다. 나 역시도 모종의 협박에 시달리고 있었던 터라 어쩐지 동병상련의 기분이 들었다. 이들은 내게 ‘영상을 봤다고요? 당분간 조심히 지내는 게 좋겠어요. 대낮에도 살해당하는 건 쉬운 일이니까’라는 말을 덧붙였다. 비슷한 시기에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한 강력계 팀장으로부터 “해외에 나가 있는 게 좋겠다”는 권유까지 받은 상태였던지라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가장 먼저 이 사건을 알았고 가장 오래 취재했으나 정작 기사는 제일 늦게 쓴 기묘한 상황에서 신변의 위협마저 느껴야 한다니 어쩐지 억울하기도 했다.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었던 것이다.

한편 경찰은 해결사들을 통해 뒤늦게 원본 영상을 확보했다. 내사에 착수한 지 150여 일이 지난 후에야 제대로 된 수사가 진행된 것이다. 이에 언론도 다소 잠잠해진 모습이었다. 이처럼 분위기는 사뭇 진정되는 듯했으나 김학의 영상과 관련된 문제의 취재원들로부터 불편한 기운은 여과 없이 감지됐다. 덕분에 ‘기자를 그만둬야 하나’는 고민을 꽤 오랫동안 했던 것 같다.

지난 7월 11일 윤중천 회장은 결국엔 구속 수감됐다.

이번 취재에서 얻은 것도 많다. 기사를 보고 자문을 구해온 타 언론사 선후배님들을 알게 돼 친목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일요신문을 알릴 수 있었기에 나름의 보람을 느꼈다. 이어 가장 늦은 보도를 했음에도 특종상을 허락해준 일요신문사에게 깊은 감사함을 전한다. 아울러 지지부진한 장기간 취재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이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무엇보다 일요신문의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이번 취재에 큰 힘이 됐다. 조폭이든 검찰 고위급 관계자든 누구를 만나더라도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일요신문, 아... 이영미 기자 있는 곳이죠?”하며 이른바 스타 기자를 언급하며 친근감을 표한다든지 지금은 그만두신 옛 선배의 이름까지 거론되는 등 일요신문이 가진 저력은 취재 과정마다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빛을 발했다. 이러한 ‘아우라’를 등에 업었기에 장기간 취재를 해낼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내가 가진 능력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었다고 본다. 이번 취재의 모든 공을 우리의 존경하는 선후배님들께 바친다.

김 포그니 기자(일요신문 취재2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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