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호]YS와 김현철 그리고 김현철과 나 - 김임수 기자

일요신문 2013-09-30 조회수 3306
[일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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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바로가기 ⇨ [제1100호] 여의도 대신 강단으로, 김현철 고려대 연구교수 인터뷰

김현철을 만났다.

문민정부의 소통령이자 황태자였던 그는 1년 새 정치권에서 멀어져 연구교수가 돼 있었다. 김 교수를 처음 본 건 지난해 3월, 국회 정론관에서였다. 새누리당 공천에서 떨어진 그가 기자회견을 열어 울분을 토했는데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때는 지천에 깔린 게 낙천자들이었다. 김 교수는 20대부터 정치권 한가운데 있었지만 한 번도 금배지를 달지는 못했다. ‘꺼리’가 있을까, 의구심이 먼저였다.

그런 김 교수는 총선 이후에도 대선 이후에도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럴 때마다 인터뷰는 지옥문을 열어젖히는 기분을 안긴다. 지리한 섭외 과정은 차치하고라도 인터뷰란 문자 그대로 ‘서로(inter-)를 보는(view) 일’일 텐데 그런 느낌을 준 인터뷰를 한 기억은 별로 없다. 특히 정치인 인터뷰는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너와 듣고 싶은 말을 들어야 하는 내가 벌이는 투쟁의 영역이었다.

그래도 가끔 안부를 묻는 전화를 했었다. 그게 통했던 걸까. 그가 점심을 제안했다.

프레지던트 호텔 음식점에서였다. ‘프레지던트’ 호텔이라니, 누가 전직 대통령 아들 아니랄까봐. 나는 금요일 마감 날이라 피케셔츠 차림이었는데 그는 말쑥한 차림으로 먼저 도착해 있었고 나를 보자마자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인사를 건넸다. 한참 연배 어린 기자임에도 예의를 차리는 모습은 꽤 산뜻했다.

대화의 주제는 대개 아버지(YS) 아니면 문민정부 시절의 이야기였다. 그에게 아버지는 신성(神聖)이었다. 본인의 삶과 아버지의 삶을 뚜렷하게 나누지 못하는 호접지몽. 반면 나는 YS를 참 별로인 대통령으로 기억한다. 분별력 없는 시절이었음에도 성수대교가 주저앉고 상품백화점이 무너지던 기억이 너무 생생하기 때문이다. 대구 상인동 가스폭발 때는 학급 친구의 친척, 또 누군가의 누군가가 황망히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OECD 가입으로 눈 가리고 몰래 IMF를 초대했던 건 또 어떻고.

하지만 문민정부 초반 김영삼 전 대통령 지지도는 90%에 육박했었다. 전 국민적 지지를 기반으로 단숨에 하나회를 해체하고 금융실명제를 도입했다.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제도를 도입한 것도 그다. 처음 청와대에 입성해 집무실의 거대한 금고를 보고는 ‘이기 뭐꼬?’라며 헐어버리기도 했단다. 하지만 임기 말 YS 지지율은 고작 6%. 내란음모죄로 사형 선고를 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보다 낮은 수치다. 그 시절을 꼭 그렇게만 평가할 일은 아닐 거란 생각은 분명했다.

이날 만남에서 김 교수에게 문민정부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전했는데, 한사코 인터뷰를 고사하던 그가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성사된 첫 번째 인터뷰 이후 김 교수는 <일요신문>과 대여섯 번 정도 더 문민정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는 문민정부를 재조명하는 것은 좋지만, 당시 정치인들이 지금도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것이 좀 걱정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무성․김문수․손학규․이재오․․홍준표 등 지금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이들이 대부분 문민정부 때 발탁됐다. 허나 장안에 제일 재미난 이야기가 ‘잘나가는 사람 뒷담화’, 아니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식의 폭로가 아닌가. 이제부터 감춰야 하는 현철 씨와 밝혀야 하는 나와의 투쟁이 시작된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아버지의 대선자금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김 교수는 92년 대선이 끝나고 남은 대선잔금을 오랫동안 관리했다. 그 일로 97년과 2004년 두 차례 구속되기도 했었다. “제일 화가 나는 것은 아직도 ‘김현철이 한보비리의 몸통’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 다 밝혀졌는데도 말입니다.” 그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다.

식사를 마칠 무렵, 그는 “문민정부 때는 정치권에도 낭만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허긴, 그의 아버지 YS는 야당 시절부터 자신을 찾은 정치부 말진에게 술 사 먹으라며 지갑을 통째로 던져 줬다던데…, 나는 왜 그런 낭만의 시대에 살지 못했나. 그와의 첫 인터뷰 이후 나는 그 시절이 조금 더 궁금해졌다. 동시에 독자들에게 추억하게끔 하는 것도 내 몫으로 남게 됐다.

김임수 기자(취재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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