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7호] 경주 토함산 '집단 매장지' 미스터리-박정환 기자

일요신문 2014-12-10 조회수 2541
기사 바로가기 => [총력추적] 경주 토함산 ‘집단 매장지’ 미스터리

 “경주 불국사 뒤편에 집단 매장지가 있는데 엄청납니다. 아마 취재해보면 대한민국이 뒤집힐 거에요.” 

지난 10월, 기자는 귀를 의심할 만한 제보를 하나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 사찰인 불국사 인근에 대형 공동묘지가 있다니. 불국사라곤 초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가며 겪었던 풋풋하고 아름다운 기억밖에 없는데, 그렇게 끔찍한 묘지가 주변에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집단 매장지를 만든 곳은 ‘천부교’라는 종교단체였습니다. 1955년에 창설된 천부교는 60년대와 70년대 교세를 확장해가며 한때 전국 600여 개의 성전, 신도 1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위엄을 떨친 종교단체입니다. 특히 1대 교주인 박태선 장로는 잘생긴 외모(사진으로만 보면 그렇게 잘 생기진 않았습니다)와 뛰어난 언변, 특유의 카리스마로 대중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박태선 장로의 3남인 박윤명 씨가 2대 교주를 맡고 있습니다. 

한때 천부교는 경기 부천에 신앙촌이라는 마을을 만들어 종교로 치자면, 최초 ‘종교 공동체’를 구성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한창 교세가 확장됐을 때는 신앙촌이 부천뿐만 아니라 경기 남양주, 부산 기장까지 확장됐습니다. 올해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구원파의 ‘금수원’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취재원의 제보 이후 천부교의 내부 실태와 공동묘지에 대해 취재를 이어갔습니다. 특히 불국사 뒤편에 조성된 공동묘지는 의문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우선 첫째로 해당 공동묘지는 경주시에 단 한 번도 묘지 허가를 신청한 적이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묘지 같지 않다는 점, 마지막 세 번째로는 과연 누가 이곳에 묻혔는지, 얼마나 묻혔는지 전혀 파악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이곳은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사설 묘지’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취재를 이어가다 불법 묘지를 조성한 전 천부교 관계자를 접촉할 수 있었습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묘지에는 약 ‘3000여구’의 시신이 묻혀 있다고 했습니다. 시신 3000여구라. 순간 온 몸이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정도 시신이 묻혀 있을 정도면, 그리고 이것이 만약에 ‘암매장’이라면 이것은 정말 전무후무한 끔찍한 사건이 될 것 같았습니다. 사태가 심각한 사안인 만큼, 무엇보다 사실 관계를 좀 더 파악하는 게 순서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덧 두 달이 지났습니다. 상쾌하고 여유로운 주말, 저는 머리를 식힐 겸 충남 당진으로 가는 차에 올라타고 여행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스마트폰을 보다가 충격적인 보도를 접하게 됩니다. “[TV조선 특종] 경주 토함산 인근 대규모 불법 공동묘지 발견.” 그렇습니다. 제가 여러 가지로 시간을 끌고 있는 사이, 한 종편 방송사에서 보도를 치고 나온 것입니다. 억울하고 원통해서 눈물이 나올 뻔 했습니다. 

다행히도 종편 보도에는 ‘불법 묘지’라는 사실만 언급될 뿐, 묘지 조성경위나 그 배경은 언급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심층보도에 포커스를 두자 생각하고 조성경위와 묘지 발견자, 천부교가 묘지를 조성한 배경들을 좀 더 취재해 나갔습니다. 그 결과 “경주 토함산 ‘집단 매장지’ 미스터리”라는 기사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취재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천부교 관계자와 불법묘지를 고발한 반 천부교 관계자들의 주장은 첨예하게 대립됐습니다. 천부교 측은 “그저 신고만 안한 공식적인 천부교 공동 묘지이다”라고 주장하는 반면, 반 천부교 측은 “천부교가 공장과 사업을 할 때 가혹노동을 시켜 신도가 병들면 치료도 하지 않고 수없이 암매장을 했다”라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확인 결과 천부교에는 다수의 실종자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서로의 주장과 관련해 검증 및 좀 더 자세한 부분은 후속 취재로써 다룰 예정입니다. 

취재를 하며 천부교는 끊임없이 “소송을 걸겠다. 보도를 하지 말라”라고 요청해왔습니다. 하지만 꿋꿋이 사실 확인을 하며 보도를 했습니다. 땅에 묻혀 있는 이들의 혹시 모를 ‘원통한 죽음’이 세상에 드러났으면 하는 바람에서입니다. 

박정환 기자(일요신문 취재2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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