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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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들 뭘 추구하는 거죠?
영국계 컨설턴트 회사의 한국지사 사장이라고 하면서 준수하게 생긴 사십대 초의 남자가 나의 법률사사무실로 찾아왔었다. “요즈음 발생한 옥시사건아시죠? 영국본사를 대리해서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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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을 먹고 사는 사람들
문예창작과를 나온 김민호씨는 을지로 뒷골목 낡은 건물의 이층을 빌려 혼자 출판사를 하고 있었다. 대머리에 작은 눈 그리고 움푹 들어 간 볼에서는 항상 가난과 외로움이 느껴졌다. 그에게 작은 소책자를 부탁하는 바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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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식 고층 감옥 풍경
오래된 구치소들이 이사를 하고 모양이 바뀌고 있었다. 문정동으로 옮긴 새로 지은 성동구치소를 찾아갔다. 몇 개동의 고층건물이 현대식 감옥이었다. 구치소 입구에서 전자출입증을 받아 목에 걸었다. 전에는 구역마다 교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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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 같이 되지 마세요
한 달에 한번정도 만나 점심을 먹는 대학동기모임에 나갔다. 밥만 먹고 헤어지기가 시간이 아까워서인지 우리보다 젊은 초대 손님을 불러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십분 정도 듣기도 했다. 그날 젊은 여성강사는 백발과 주름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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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한 상자
조용한 토요일 저녁이다. 방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문틈으로 고소한 냄새가 흘러들어온다. 프라이팬에서 올리브유와 녹은 버터에 채 썬 감자가 지글지글 튀겨지고 있었다. 낮에 사건의뢰인인 유목사가 밭에서 직접 수확한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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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숨겨둔 보물
아내가 일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둥그런 갈색 플라스틱 통에서 낡은 증서 몇 장을 꺼내 펼쳤다. “이게 뭐야? 당신 초등학교 4학년 때 글짓기 상장 받은걸 아직도 보관 하셨네&rd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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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친구
장관을 마친 친구가 찾아와 점심시간 사무실 근처의 보리굴비 집으로 갔다.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쳐 지금까지 평생을 친하게 지내왔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반장을 하면서 리더쉽이 있었다.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사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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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강가 뱃사공
대학교 일학년 무렵이었다. 친구와 명보극장에 가서 ‘빠삐용’이란 영화를 봤다. 모함을 당한 주인공이 망망한 바다 한가운데 있는 죽음의 섬으로 끌려가 처참한 감옥생활을 한다. 찢어진 줄무늬 죄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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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입은 검투사
이상한 계약서였다. 분명히 사고팔았는데 뭘 팔았다는 것인지 정확한 내용이 적혀있지 않았다. 중간에 끼어있던 사람이 대충 적당히 휘갈겨 만든 엉터리 문서였다. 팔아먹은 사람은 계약서의 애매한 조항을 악용해서 자기는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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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아이스크림
중학교 시절 동네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야 나 아이스크림도 만들어 팔기 시작했어. 정말 좋은 거야. 한번 와서 먹어봐.” 육십 대 중반의 그는 커피숍을 하면서 아이스크림 코너를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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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의 존재
변호사 생활 30여년에 살인범들을 참 많이 만났다. 특히 그중에서도 잔인성을 가진 살인범들을 작은 방에서 마주할 때면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나오는 장면 같은 기괴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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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사법시험
2017년6월21일 마지막 사법시험2차가 연세대학교에서 치러졌다. 한 신문엔 시험장 앞에 쪼그려 앉아 마흔 두 살의 아들을 바라보는 칠순의 어머니 사진이 실렸다. 아들은 어머니 식당일을 도우며 어렵게 공부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