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와 유흥가에 각 테이블마다 칸막이를 설치하고 문을 달아 룸살롱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룸식 술집’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요신문 DB
‘룸식 술집’의 인기 비결은 폐쇄성이다. 대부분의 술집은 큰 음악소리와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 탓에 바로 옆자리 일행과도 고성을 질러가며 말해야 하는 분위기다. 이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시비가 붙기도 하는 게 다반사다. 하지만 룸식 술집은 독립된 공간에서 일행들끼리만 조용히 음주를 즐길 수 있는데다 프라이버시도 보장받을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단둘이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점에서 연인들 사이에서도 필수 데이트 코스로 떠오른 지 오래다.
이런 ‘은밀함’에 힘입어 대학가나 유흥가마다 쉽게 룸식 술집을 찾아볼 수 있게 됐는데 점점 경쟁이 치열해져 저마다 특색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발 냄새 방지를 위해 각 방마다 샤워기를 설치한 룸식 술집이 등장하는가 하면 부킹을 해주는 곳도 생겨났다. 룸 형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각 방마다 카메라와 모니터, 심지어 아이패드까지 구비한 뒤 영상을 보고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부킹을 원하지 않거나 이미 짝을 이룬 방은 카메라를 끄면 또다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공간으로 변신한다.
그런데 특이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보다 폐쇄성을 더욱 강화시킨 곳이 더욱 인기를 끌었다. 처음 룸식 술집이 생겨날 무렵에는 테이블마다 칸막이는 있어도 입구는 커튼으로 살짝 가린 게 전부였고, 천장은 모두 이어지는 형태라 말소리도 쉽게 들렸다. 그러다 점점 칸막이가 높아져 천장을 막더니 커튼 대신 여닫는 문이 생겨났다. 문만 닫으면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완벽한 개인 공간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룸식 술집의 폐쇄성을 ‘적극’ 활용해 황당한 일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밖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노려 외부 음식을 사들고 와 파티를 벌이는 사람부터 마치 여관방이라도 되는 듯 소주 한 병만 시켜놓고 밤새도록 잠을 자는 이들도 있다. 심지어 대범한 커플들은 이곳에서 ‘찐한 사랑’을 나누기까지 한다.
키스나 유사성행위는 양반 축에 속할 정도인데 적당히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서로 눈이 맞으면 좁은 공간도, 청결하지 않은 테이블도, 완벽하지 않은 방음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대부분의 룸식 술집은 창문을 통해 바깥을 볼 수 있는 구조로 돼있어 자칫 민망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지만 이마저도 불타오르는 커플들의 열정을 제지하기엔 역부족이다.
룸식 술집에서 성관계를 경험했다는 한 20대 남성은 “야외 섹스 기분을 낼 수 있어 좋았다. 애인의 머리카락이 안주에 빠지지 않게만 조심하면 된다. 일을 치른 뒤에도 잠드는 건 절대 금물”이라며 친절하게 주의사항까지 알려줬다. 룸식 술집에서의 짜릿한 경험이 입소문을 타면서 그곳에서 이뤄진 성관계 사진이나 동영상도 이제는 인터넷에 흔하게 떠돌아다녀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취재진이 입수한 한 동영상은 벽면이 유리창으로 돼있어 바깥이 훤히 보이는데도 여성은 거의 누드상태로, 남성은 하반신을 탈의한 채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 사람들이 창문 밖 길거리를 지나가며 두리번거려도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그들을 카메라로 찍는 대범함도 보였다. “룸식 주점 맞은편에 위치한 술집이 진정한 핫 플레이스”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닌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장점이 불륜커플들의 은밀한 데이트 ‘명소’ 역할을 하기도 한다. 경기 수원의 룸식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강 아무개 씨(28)는 “불륜은 그냥 눈에 보인다. 주기적으로 오면서 매번 파트너가 바뀌니 아는 체하기도 민망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부인과 딸이랑 함께 와서 놀고 간 뒤 얼마지 나지 않아 젊은 여성과 방문한 중년의 남성이었다”며 “그 뒤로도 여자들을 바꿔 몇 번씩 왔는데 바로 옆에 있는 모텔로 들어가는 모습도 종종 봤다.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남자들을 유혹하기 좋은 환경이니 파트너를 바꿔 자주 찾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앞서의 사례들도 타인에게 불쾌함을 주는 행동이긴 하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룸식 술집이 범죄의 공간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지난 7월 휴가를 나온 채 아무개 일병(21)은 친구들과 함께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룸식 술집을 찾았다. 이들 일행은 스페인 여성 관광객 3명과 합석하게 됐고 술자리는 새벽 4시가 넘도록 계속됐다.
급기야 스페인 여성 A 씨(20)는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해버렸다. 이를 본 채 일병은 A 씨를 옆방으로 데려가 강제로 옷을 벗긴 뒤 성폭행을 저질렀다. 종업원이 수시로 오가고 바로 옆에 일행까지 있었지만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진 일이라 아무도 도움을 주지 못했다.
마포구의 한 경찰 지구대 관계자는 “대학가라 주변에 룸식 술집이 상당히 많다. 종종 성추행, 성폭행과 같은 사건이 발생하는데 사전에 단속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불미스러운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낯선 사람들과 과한 술자리는 피하고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룸식 술집 알바생의 비애 “못볼꼴 보는 것도 이골이 났어요” 보통의 아르바이트생 모집에서는 보기 드문 문구지만 ‘룸식 술집’에서는 필수 요건이 된 지 오래다. 여기서 말하는 ‘무던함’은 손님들과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정도의 너그러움이나 순함을 뜻하는 게 아니다. 예고 없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포르노 못지않은 광경에 동요하지 않고 방에서 나오는 의외의 물건들에 충격 받지 않는 그런 ‘무던함’을 말한다. 룸식 술집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광고다.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경험한 박 아무개 씨(26)에게도 룸식 술집은 만만치 않은 장소였다. 박 씨는 “주문, 계산, 서빙, 청소 등 전체적으로 일하는 것은 일반 술집과 다를 게 없었다. 문제는 손님들의 행동이었다. 한 달에 2~3번은 손님들의 성관계 모습을 목격했고 옆방에서의 항의에 어쩔 줄 몰라 했던 적도 여러 번”이라며 “조명을 낮추면 안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 그런 방은 백발백중이다. 소주 한 병에 기본 안주만 시켜놓고 몇 시간째 기척도 없는 방도 마찬가지다. 폐장시간까지 나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었는데 나체의 남녀가 테이블 위에서 버젓이 자고 있더라”며 혀를 찼다. 아르바이트생이나 다른 손님에게 낯부끄러운 짓을 들켜 조용히 나가면 다행이지만 오히려 소동으로 이어질 때도 많다고 한다. 수십 번의 노크에도 ‘일’에 열중하느라 소리를 듣지 못한 손님들은 방문이 열리면 도리어 아르바이트생에게 화를 낸다고. 때론 분위기를 망쳤다며 술값을 지불하지 않고 나가버리는 ‘진상’도 있단다. 운이 좋아 조용히 하루를 보내는 날도 청소시간만 되면 인상을 찌푸리기 일쑤다. 박 씨는 “주말에는 무조건 성인용품을 본다. 버리고 가는 형태도 가지각색이다. 자랑스럽게 테이블이나 술잔에 버리고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창틀이나 소파에 끼워두는 등 상상도 못할 곳에서 더러운 풍경을 목격한다”며 “여자 아르바이트생은 청소를 하다 소리를 지르거나 토하기도 한다. 처음엔 진한 스킨십을 나누는 커플들을 목격하면 당황스럽고 화도 났는데 나중엔 마음속으로 뭔 짓을 해도 좋으니 제발 뒷정리만 잘 하고 가라고 빌게 됐다”고 말했다. 낯 뜨거운 일을 겨우 피해가면 ‘부처’가 되어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룸식 술집은 문을 열고 나오면 안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다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특히 술에 취한 사람들은 길을 잃기 십상이다. 화장실을 다녀온 뒤 일행을 찾지 못하고 “내 방 어딨어”라며 뱅글뱅글 돌고 있는 손님을 보면 아르바이트생들은 절로 한숨이 나온다. 박 씨는 “손님이 한두 명도 아니고 모두 기억할 수가 없다. 게다가 휴대폰까지 놔두고 오는 경우가 많다. 술 취한 손님이 제방을 찾겠다고 여기저기 문을 열고 다니면 다른 사람들의 항의가 빗발친다. 더욱이 19금 장면이 연출되는 방문을 벌컥 열었다고 생각을 해봐라. 죄송하다는 인사는 항상 우리들 몫이다. 짓궂은 사람들은 술 취한 친구만 방에 내버려두고 도망가는 경우도 있다. 취객을 깨워 계산에다 배웅까지 하고 나면 몸이 부서질 지경”이라고 말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