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열린 대통령배 대상경주에서 경부대로(안쪽)가 머리 하나 차이로 베스트캡틴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제공=한국마사회
주로 출장시의 컨디션은 깜짝 준우승을 차지한 베스트캡틴이 가장 좋았다. 베스트캡틴은 예전과는 딴판으로 힘이 꽉 차 탱크처럼 출장했다(다음을 위해서 얼마 전부터 공개하기 시작한 주로 출장 동영상 꼭 한번 보기 바람). 출전마 중에서 혈통상 거리적성은 가장 긴 말이라 이변 가능성은 있다고 언급도 했지만 필자에겐 3위 정도는 꼭 할 것만 같은 강한 ‘필’이 왔다.
경주 출발 후 초반은 대여섯 마리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선행경합을 했고 7번 매직댄서가 어렵사리 선행을 잡아냈다. 그렇지만 2번 게이트의 강해(서울)가 강력하게 치고 나오면서 초반선두다툼은 거의 2코너까지 이어졌고, 레이스는 하위군 마필의 1000미터를 연상케 할 정도로 빨랐다. 2코너 돌고나서도 강해가 바짝 압박하고 4코너까지도 계속 밀면서 따라붙었기 때문에 한발 앞서가던 매직댄서나 강해와 나란히 뛰던 한강의기적은 한숨 돌릴 여유가 없었다. 특히 여기에 부경의 금포스카이까지 따라붙으면서 레이스는 더욱 치열해졌고, 인기 1위마인 한강의기적은 안팎에서 견제를 받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4코너를 지나 직선주로에 다시 오자 강해가 급속히 뒤로 처졌고, 금포스카이도 서서히 거리가 멀어져갔다. 매직댄서와 한강의기적도 걸음이 서서히 둔화되면서 근근이 버티고 있었다. 거의 그대로 굳어지는 경주인가 싶은 순간 외곽에서 경부대로와 베스트캡틴이 동시에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선두권 경합을 피하고 중후미에서 힘을 비축하며 기회를 엿보던 두 마필이 맹렬하게 올라오면서 순식간에 앞말들을 제치고 거의 동시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결과는 경부대로가 머리 하나 차이로 베스트캡틴을 눌렀다. 매직댄서는 3위, 한강의기적이 4위였다. 총알추입으로 비쳤지만 실상은 앞선의 걸음둔화와 맞물린 착시효과였다(LF:13.4).
경부대로의 최시대 기수나 베스트캡틴의 이쿠야스 기수 입장에서 보면 강해의 최범현 기수에게 정말 고마워해야 할 상황이었다. 강해는 농림축산식품부장관배(GⅡ)에서 이변을 연출했던 그 작전 그대로 뛰었다. 그렇지만 당시보다 상대가 강하고 빨랐기 때문에 오버페이스가 되고 말았다. 직선주로에 와서 다리가 풀렸기 때문에 꼴찌로 밀려났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우승후보들에게 고춧가루를 뿌리는 역할을 한 셈이 되고 말았다.
서울 경주마 중에서 가장 큰 기대를 모았던 광교비상은 초반 한때 선두권에 모습을 보이며 기대에 부응하는 듯했지만 그뿐이고 이후 계속해서 뒤로 처졌고 결승선에서도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일반경주에선 몰라도 큰 경주에선 따라가는 전개에 익숙하지 않은 마필은 입상하기 어렵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모래 맞는 것에 좀더 적응하고 선추입에 익숙해진다면 한 단계 더 성장할 여지는 있지만 자신보다 빠른 말이 많은 그랑프리에선 기대하기 힘든 말로 보였다. 마령 5세가 될 내년을 위해서 계속해서 안쪽에서 따라가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매직댄서나 한강의기적은 역시 센 말이었다. 출발부터 3코너까지 오버페이스에 가까울 만큼 빠른 페이스를 소화하고도 막판까지 선전했다.
그렇지만 매직댄서는 그랑프리에서도 초반에 강한 압박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선행마 중에서 최강으로 꼽히는 벌마의꿈(부경)이 게이트와 상관없이 강력하게 대시하며 선행을 노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한강의기적은 안팎으로 샌드위치가 되는 상황에서 경주를 치렀다는 점을 감안하면 좀더 나은 평가가 가능하다. 유현명 기수가 2번 강해한테 2선을 내주고 3선에 붙는 임기응변을 발휘했다면 훨씬 나은 결과가 가능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경주 중에 그 같은 상황판단을 하기란 쉽지 않다. 매직댄서를 자신이 견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심리적 압박감에다가 강해가 그 정도로 끝까지 달라붙을지는 몰랐을 것이다. 선입전개가 가능한 말이라는 점에서 그랑프리에서도 여전히 기대를 걸 수 있는 마필로 판단된다.
깜짝 준우승의 주인공 베스트캡틴은 그랑프리에서도 꼼꼼하게 살펴야 할 마필로 보인다. 베스트캡틴은 혈통상 전형적인 장거리형이다. 조부마 댄싱브레이브(2400미터)도 그랬지만 부마인 리비어(2300미터)도 장거리까지 잘 소화해냈다. 좀더 주목할 부분은 조모마 빈트파샤(Bint pasha)의 능력이다. 이 말은 영국과 프랑스에서 주로 활약을 했는데 [G1]대회에서 3승(총16전4/1/0)이나 했을 만큼 대단한 암말이었다. 뿐만 아니라 평균 우승거리도 2262미터로 주로 장거리에서 활약했다.
부계와 모계의 선조들이 대체로 3세부터 뛰어주기 시작해 4~5세에 전성기를 맞았다는 점에서 베스트캡틴도 이제사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1회성 반짝 활약으로 치부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을 이번 경주 가장 무리한 작전 전개를 한 금포스카이를 살펴보자. 초중반에 4번 광교비상 뒤로 파고들 기회가 딱 한번 있었는데 너무 찰라의 순간이라 놓쳤고 이후엔 불리한 게이트 때문에 3중 외곽전개를 하고 말았다. 그것도 코너를 도는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느라 과도하게 힘을 썼기 때문에 꼴찌를 안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최악의 전개를 하고도 완전히 서는 걸음은 아니었다. 이 말이 강해와 한강의기적 뒤에서 자리를 잘 잡고 따라왔다면 어땠을까. 경마 예상은 이런 추리에서 시작된다. 금포스카이는 그랑프리에선 마음을 비우고 4코너까지는 평소의 자기 페이스대로 타보길 권하고 싶다.
김시용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