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영어 학원 원장에서 이제 어엿한 사업가로의 변신을 시도 중인 대구 손샘학원 손연수 원장의 일성이다.
치열한 교육열의 상징 지구 가운데 한 곳인 대구 수성구에 자리 잡은 유명 영어 학원 손샘학원의 손연수 원장은 요즘 여러 개의 명함을 동시에 들고 다닌다. 손샘학원 원장 명함은 기본,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 건축회사 등의 대표 명함이 바로 그것이다. 게다가 곧 요식업과 커피사업까지 시작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제는 유명 영어 학원 원장이 아닌 성공한 사업가로 보는 게 더 정확해 보인다.
사실 손 원장의 사회생활은 그리 화려하게 시작되진 못했다. 단국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터라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건설회사에 취업해 샐러리맨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단국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했는데 하필 졸업을 즈음해 IMF가 왔어요. 건설회사 취업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대학을 졸업한 뒤 작은 보습학원에서 월급 80만 원에 만족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대학시절, 아니 중고교 시절에도 늘 힘겹게 지내왔어요. 각종 서빙부터 막노동, 택시기사까지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었거든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중풍 걸린 아비지를 병수발하며 학교를 다녀야 했으니까요.”
손 원장의 무기는 영어였다. 대학 시절 그는 토익과 토플에서 모두 만점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대학생이 토익이나 토플 만점을 받는 것은 매우 흔치 않은 일이었다.
“대학 시절 힘들면 영어 강사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영어 공부에 열중했어요. 그런데 정말 영어 강사가 됐네요. 미래가 안 보이는 상황이었지만 준비만 돼 있다면 언젠가 기호가 올 것이라 생각했어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으니 꿈도 없는 것 같아요.”
이런 특이한 경력은 정말로 그에게 기회가 됐다. 경북대학교 학생회와 연계해 토익을 강의하는 외래교수로 활동하며 인기 강사에 등극한 것. 이를 바탕으로 큰돈을 번 손 원장은 학원을 열고 유통회사 등을 창업하며 젊은 나이에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렇지만 반짝 성공 뒤에는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경북대학교에서 학교 정책상 어학당을 만들면서 학생회와 연계돼 있던 제 토익 강의가 폐지됐어요. 유통회사 등 사업도 비슷한 시기에 큰 어려움을 겪었고요. 내 실수 아닌 흐름의 변화에 따른 실패였는데 그때 겸손을 배우게 됐어요. 매사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누구에게나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태도를 갖게 됐는데 이것이 성공의 씨앗이 된 것 같아요.”
신용불량자가 될 만큼 나락에 떨어져 있던 2007년, 그는 영어 강사로 다시 첫 걸음을 내딛었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다른 학원의 교실 하나를 빌려서 시작한 영어 보습학원이었다. 그렇지만 실패를 거름 삼아 새롭게 시작한 학원 사업은 곧 탄탄하게 자리를 잡았다. 비로소 2009년 오늘날의 손샘학원을 오픈한 그는 이제 손샘학원을 연매출 70억 원대의 거대한 학원으로 키워냈다. 치열한 교육열의 상징 지구 가운데 한 곳인 대구 수성구에서도 가장 잘 나가는 영어 학원이 된 것. 이후 건설회사,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 출판사 등을 만들어 다양한 분야에 손을 대며 사업가로서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는 왜 영어학원에 만족하지 못한 채 다양한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힌 것일까.
“학원을 운영하는 제 기본 철학은 학생들에게 받은 수강료를 세 배의 가치로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에요. 이를 위해 중학생들은 일대 일 맞춤 교육을 시행하고 고등학생에겐 개인별 교제를 만들어 줬어요. 그런데 학생 수가 급증하면서 어려움이 생기더군요. 지금은 고등학생 원생만 800~1000명에 이르러 개인별 교제를 만들어 주는 게 불가능해졌어요. 오프라인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여겨져 일대 일 맞춤 교육을 위한 온라인 교육을 병행하려 시도 중이에요. 온라인으로는 학생들 개인 별로 어떤 부분에 취약점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 이를 바탕으로 개인별 교제도 만들 수가 있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이 필요한데 외주를 주면 비용이 많이 들어 직접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를 설립했어요. 내년 8월에는 고등학생 원생들에게 개인 별로 각자의 교제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를 위해 출판사도 설립했죠. 또 학원을 운영하는 데 월세가 너무 비싸서 직접 건물을 짓기로 결정했어요. 선생님들 숙소도 필요했고요. 이 부분 역시 외부에 맡기면 되지만 돈이 많이 들어 건축회사를 직접 설립했어요. 제가 건축학과 출신이잖아요. 그렇게 학원생들을 위한 식당을 위해 요식업도 계획 중이고 커피사업까지 진출을 준비하고 있어요.”
손 원장이 평범한 샐러리맨의 삶을 포기하고 어렵지만 자기만의 길을 걸어온 까닭은 반드시 IMF 때문은 아니다. 자신만의 꿈을 향해 걸어가기로 스스로 결심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똑같이 가면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또 IMF로 평생직장이 없음을 알게 된 것도 컸죠. 그래서 제 삶을 스스로 개척하기로 결심했어요. 요즘 학생들에게도 꿈을 가지라는 얘길 자주 해요. 너무 안이한 생각만 하고 있어 꿈도 없는 거죠. 예를 들어 의사가 되고 싶다는 건 꿈이 아니에요. 자기만 잘 살기 위해 의사가 되는 게 아니라 신약 개발 등으로 인류에 이바지하는 등 큰 이상이 있어야 그게 진정한 꿈인 거죠. 지금 저의 꿈은 성공한 사업가가 되는 거예요.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 돈을 버는 기업가가 아닌 기업의 이익과 가치를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기업가가 되는 게 제 꿈입니다.”
손 원장의 손샘학원은 물론 사교육이다. 사회적인 인식이 사교육에는 그리 긍적적이진 않다. 그렇지만 손 원장은 사교육이 충분히 국가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사교육은 사회악이 아니에요. 공교육과 잘 협력한다면 충분히 국가의 경쟁력이 될 수 있죠. 게다가 사교육은 해외 수출도 가능해요. 사교육을 어떻게 창의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냐가 관건이죠. 저는 한국의 영어 사교육을 영미권에 수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미 한국의 사교육은 전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으니까요. 그만큼 경쟁력이 있죠. 지금 개발 중인 소프트웨어가 완성되면 우리가 해외에서 한국어 교육을 하고 영어 교육도 할 수 있도록 우리의 사교육을 해외에 수출할 계획이에요.”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