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버린 동거녀에 대한 증오와 피해의식을 승용차 타이어를 펑크 냄으로써 풀어오던 한 사내가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창원 서부경찰서에서는 지난해 8월부터 창원시 봉곡동 주택가 일대에 하루가 멀다 하고 누군가 타이어에 펑크를 내고 도망간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경찰관계자는 “경미한 범죄로 여기기에는 반복 횟수가 너무 잦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피해자들에게 악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지 등에 대해 탐문조사를 해보았지만 허사였다. 광범위하게 피해자들이 퍼져 있었으며 연결되는 고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지난달 24일 자신의 차량 타이어가 펑크가 났다는 A 씨(48)의 신고가 들어왔다. 신고를 받은 창원 서부경찰서 형사5팀은 인근 주택에 설치된 방범용 폐쇄회로(CCTV) 자료를 넘겨받아 분석했다.
화면에는 한 남자가 손에 15cm가량 크기의 송곳을 들고 빨간색 스포티지 차의 왼쪽 앞 타이어를 찌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경찰은 화면에 나타난 사람을 탐문하고 봉곡동 일원의 쓰레기 불법투기감시용 CCTV 등을 분석한 끝에 범인이 김 아무개 씨(52)라는 사실을 밝혀내 다음날 오전 그를 긴급 체포했다.
창원의 한 공장에서 현장 근로자로 일하던 김 씨는 결국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지난 1일 구속됐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 2월 3일 B 씨(40·여)의 빨간색 마티즈 타이어를 펑크 내는 등 9개월 동안 승용차 27대의 타이어를 87차례나 펑크 낸 것으로 경찰조사에서 드러났다. 피해액은 594만 원이나 됐으며 무려 11차례나 똑같은 피해를 본 사람도 있었다. 피해 차량 가운데 4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빨간색이었다.
경찰관계자는 “김 씨가 10년 전 마산에서 오토바이를 몰고 가다 여성이 운전하는 빨간색 승용차에 치여 부상을 입고 후유증으로 고생하면서 빨간색 차량에 대한 불만이 쌓인 것 같다”며 “수년 전 동거하던 여성으로부터 무시당한 피해의식도 범행을 저지른 동기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 씨는 경찰조사 과정에서 “빨간색을 보면 무조건 싫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한 정신의학 전문의는 “동거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충격과 빨간색 승용차에 교통사고를 당한 기억이 만나 빨간색을 혐오하는 증상으로 나타난 것 같다”며 “김 씨는 타이어에 펑크를 내고 여성의 속옷과 신발을 훔침으로써 여성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복수를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