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인이 된 누나 최진실 씨의 영정을 동생 최진영 씨가 들고 나오고 있다. | ||
사건은 2004년 3월 최 씨가 아파트건설업체인 신한건설과 아파트 분양광고 모델 계약을 체결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최 씨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신한건설로부터 2억 5000만 원의 모델료를 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약 5개월 후인 2004년 8월 최 씨가 당시 남편이었던 조성민 씨와의 불화가 세간에 드러나면서 발생했다. 당시 최 씨는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했다며 조 씨로부터 폭행당해 붓고 멍든 얼굴과 파손된 집안 내부 등을 공개해 충격을 안겨줬다.
이에 신한건설은 최 씨에게 광고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손해배상금 5억 원과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4억 원, 실제 지출한 광고비용 21억 원 등 총 30억 5000만여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신한건설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은 “계약기간 동안 최 씨가 본인의 책임으로 기업의 사회적·도덕적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되며 이를 위반할 경우 모델료의 200%인 5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계약내용을 근거로 한 것이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제26민사부(재판장 조해섭 부장판사)는 2005년 9월 최 씨에게 약정위반 책임을 물어 “최 씨는 신한건설로부터 받은 모델료 2억 5000만 원을 돌려주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가족 간 분쟁은 법적인 절차에 따라 진지하고도 조용하게 처리될 필요가 있으며 이는 유명인사 부부라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는 전제를 깔았다. 이에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최 씨의 행위는 자신이 광고모델로 출연한 원고의 주택분양사업과 강한 연상작용을 일으키면서 기업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을 것임은 경험칙상 인정된다. 최 씨의 행위는 광고계약상의 의무인 사회적·도덕적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당시 재판부는 최 씨가 남편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피해자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집안까지 적극적으로 언론에 공개하고 그 후 지속적으로 부부간 불화에 관해 언론 인터뷰에 응해 가정파탄을 공개한 행위는 혼인생활 중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기보다 오히려 장애를 확대시키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당시 최 씨는 “나는 폭행사건의 일방적 피해자로 사회적·도덕적 명예를 훼손했다고 할 수 없고, 또 언론에 보도된 것도 기자들이 경찰서에서 취재한 후 입원한 병원에 찾아와 취재한 것으로 나에게 귀책사유가 없다”며 항소했다. 그리고 2006년 5월 열린 항소심에서 서울고법 제25민사부(재판장 길기봉 부장판사)는 1심 판결을 깨고 최 씨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 재판부는 “최 씨가 조 씨의 폭행을 적극적으로 유발했다는 증거가 없는 이상 최 씨는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한 것이라 스스로 사회적·도덕적 명예를 훼손한 행위를 했다고 볼 수 없고 언론과의 인터뷰도 조 씨의 주장을 반박 또는 해명하려는 취지에서 한 것으로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부부는 혼인생활 중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쌍방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다른 일방의 폭력행위까지 숨기고 감내해야 한다고는 볼 수 없고 부부 개개인은 인간으로서 존엄을 유지하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 점 등에 비춰 보면 최 씨의 행위가 광고모델 계약상의 사회적·도덕적 명예를 훼손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재판부의 의견이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판결의 핵심은 최 씨의 불미스런 가정사 공개 및 광고주에게 끼친 악영향의 책임 소재가 최 씨에게 있는가였다.
하지만 대법원 제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지난 5월 28일 최 씨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원고패소한 항소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광고주가 연예인, 운동선수와 광고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이들의 신뢰성과 명성 등 긍정적인 이미지를 이용해 제품에 대한 구매욕구를 불러일으키려는 것이어서 계약 때 품위유지 의무를 약정했음에도 이를 지키지 못했다면 손해배상 채무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최 씨는 계약기간 동안 광고모델로서 건강한 상태와 용모를 유지해야할 뿐 아니라 광고내용에 맞춰 일반인들로 하여금 원고 회사 및 회사가 분양하는 아파트에 대해 호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구매를 유인하는데 적합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했다”고 밝혔다.
이날 재판부는 최 씨의 가정불화가 상세하게 공개된 뒤 아파트 광고에 적합했던 최 씨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됐고, 그 이미지를 통해 구매유인 효과라는 경제적 가치 역시 상당히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소송을 제기한 신한건설 측은 “아파트 광고가 가족의 사랑과 행복을 부각시키고 품질과 품격이 높은 아파트임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췄으나 최 씨의 불미스런 사생활이 공개됨에 따라 회사가 타격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재판부는 “망인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인해 이미지가 손상될 수 있는 사정이 발생한 경우라도 적절한 대응을 통해 이미지 손상을 최대한 줄여야 하는 계약상의 의무를 진다”며 “최 씨의 대응이 적절한 대응의 정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판단했다.
최 씨의 사망으로 인해 이번 재판에서는 고인의 두 자녀가 피고가 됐는데 이들은 미성년자라 최 씨의 어머니가 법정 대리인을 맡고 있다. 최 씨 측 변호를 맡은 강지원 변호사는 “대법원의 판결은 지나치게 남성주의적인 결정이다. 여성 연예인의 인권을 도외시한 채 광고주만 두둔한 편향적인 판결”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이 사건은 진행되는 동안에도 연예인의 사생활과 여성인권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최 씨가 마약복용이나 음주운전, 병역기피 등과 같은 최 씨 본인의 잘못으로 기업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것과 남편에게 폭행을 당해 본의 아니게 불미스러운 사생활이 노출된 것은 엄연히 다르며 최 씨를 가정폭력의 피해자로 봐야 한다는 것이 최 씨 변호인 측의 설명이었다.
대법원의 판결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상에서도 논쟁이 뜨겁다. 망자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한 신한건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당시 최 씨가 부득이하게 겪어야 했을 개인적인 아픔을 알면서도 기업의 이미지 실추만을 거론하며 이익만 추구한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특히 최 씨가 고인이 된 후에도 시시비비를 가리며 굳이 법적 다툼을 계속 진행해온 것은 보기에도 좋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신한건설로서는 당연히 ‘권리 찾기’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광고를 통해서 돈을 버는 배우는 일이 잘못됐을 땐 당연히 그 책임도 져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건은 최 씨가 자살한 이후에 대법원 판결이 나오긴 했지만 생전에 진행돼온 소송이라는 점에서 무조건 동정만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