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인사동 스캔들>의 한 장면. | ||
내 인생 최악의 치욕적인 섹스. 유난히 오럴 섹스를 좋아했던 A는 내 머리를 그의 사타구니 밑으로 밀어 넣곤 했다. 당시만 해도 오럴 섹스의 재미를 잘 몰랐던 나는 A가 키스를 바라는 내 얼굴을 한 손으로 찍어 내릴 때마다 싫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A는 나의 떨떠름한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았고, 섹스 후 “오럴 섹스가 그렇게 싫어? 이거 변태 행위 아니야. 좀 해주면 안 돼?”라고 당당히 펠라치오를 요구했다. 그때 나는 너무나 싫었지만 ‘당신이 그렇게 원한다면 해주지, 뭐’라는 심정으로 그를 받아들이곤 했다. 그리고 얼마 후부터는 섹스를 할 때마다 A가 머리를 누르기도 전에 내가 먼저 나서서 자동적으로 그의 물건을 입에 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A가 오럴 섹스를 하던 중에 “잠깐 체위를 바꿔보자”라고 제안하더니 나를 아래로 눕히는 것이었다. ‘69 체위를 하려나’하고 잠시 생각하려는 찰나에 A는 내 머리를 깔고 앉듯이 기묘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고는 “잠깐만 가만히 있어봐”라고 말하면서 내 입에 대고 피스톤 운동을 시작했다. ‘입 벌린 섹스돌’이 된 나는 어찌나 깜짝 놀랐는지! 그런데도 차마 A에게 “이건 너무 싫어”라고 말하지 못했다. 남자친구를 변태 취급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다만, 그 후로 한동안 나는 오럴 섹스를 극도로 싫어하게 되었다. 더욱 슬픈 것은 그렇게 오럴 섹스를 싫어했는데도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기면 그가 원하기도 전에 자동적으로 내가 나서서 오럴 섹스를 해주었다는 사실이다. ‘남자는 오럴 섹스를 좋아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결과였다.
지금도 오럴 섹스를 싫어하느냐고? NO. 내게 오럴 섹스의 즐거움을 알게 해 준 것은 브라질 남자 B였다. B 역시 A 못지않게 오럴 섹스를 좋아했지만 그는 내 머리를 찍어 누르지 않았다. 그런데 B는 내가 그의 물건에 손을 댈 때마다 뜨거운 입김을 내뱉었고, 피스톤을 시작하면 ‘오, 마이 갓!’이라는 탄성을 질렀으며, 몸을 꼬거나 “I Love You”라고 말을 하는 등 페니스를 톡톡 건드리는 내가 그를 굉장히 자극하고 있다는 피드백을 확실히 주었다. 내가 그를 내 입속에 받아들일 때마다 온몸으로 느끼고 흥분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오럴 섹스의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좀 빨리 해봐” “잘 좀 해봐라”라고 요구만 했던 A와는 그 반응이 천지차이였던 것이다. B와 오럴 섹스를 하면서 내가 그에게 봉사한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그를 조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손가락 놀림 하나, 혀 놀림 한 번에 고꾸라지는 그를 보는 것이 무척 즐거웠다.
만족스러운 섹스를 위해서 솔직한 대화는 필수다. 그런데 파트너의 요구가 강요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남자의 제안을 파트너가 기꺼이 받아들이면 요구이지만, 여자가 질색한다면 그 요구는 강요로 둔갑하는 것이다.
여자가 싫어하는 섹스 행위라면 남자는 일방적으로 참아야 하는 것일까?
물론 내가 남자에게 ‘참아라’하고 권하는 것은 아니다. 여자가 어떤 행위를 거부하는 것은 행위 자체를 싫어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자가 어떤 섹스의 형태를 거부하는 이유는 남자가 원하는 스킨십이나 체위를 해본 적이 없어서 어색하다거나, 그 체위로 섹스를 하면서 수치심을 느꼈거나, 그 체위가 여자를 실험도구로 이용하여 남자의 욕구를 채우는 행위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여자가 그 새로운 행위를 통해 재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자에게 오럴 섹스를, 애널을, 섹스토이를 강요하기 전에 ‘여자가 펠라치오를, 애널 섹스를, 섹스토이를 왜 싫어할까?를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A와의 오럴 섹스를 싫어했던 이유는 그의 페니스를 입에 넣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A와의 오럴 섹스가 매우 남성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섹스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나와 섹스를 함께 즐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자신의 욕정을 채우려 했고, 나를 실험 도구 취급한다고 느꼈다. 그러나 B와의 섹스는 나에게 오럴 섹스의 즐거움을 깨닫게 했다.
여자가 싫어하는 것은 새로운 섹스 제안이 아니다. 익숙해진 커플이 섹스 패턴에 변화를 주어 더욱 즐거운 섹스를 즐기려는 남자의 노력을 이상한 눈으로 흘겨보지도 않는다. 다만, 새로운 섹스 실험일수록 혼자서가 아니라 여자와 함께 즐길 수 있어야만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뿐이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라. 여자가 당신을 남자 공기인형 혹은 딜도처럼 실험도구로 이용한다면 기분이 좋겠는가! 당신은 전혀 즐겁지 않은 체위를 계속 강요한다면 좋겠는가 말이다.
박훈희 칼럼니스트
박훈희 씨는 <유행통신> <세븐틴> <앙앙> 등 패션 매거진에서 10년 이상 피처 에디터로 활동하면서 섹스 칼럼을 썼고, 현재 <무비위크>에서 영화&섹스 칼럼을 연재 중인 30대 중반의 미혼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