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선인민군 공군 제814 군부대를 시찰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이 민감한 시기, ‘엘리트 탈북자’ 출신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NKSIS) 대표가 북한과 러시아의 외교관계와 관련한 극비 문서를 <일요신문>을 통해 공개한다. 북한 내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출신 과학자들의 존재를 입증하는 자료다. 이는 북한의 핵기술, 특히 발사체 개발에 있어서 러시아 과학자들이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를 맡고 있는 필자는 올 초 북한 내부 문서 한 건을 입수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 친필서한(발췌)’이라는 제목의 해당 문서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생전 북한 내부의 최고위급 핵심 간부들과의 면담에서 언급한 내용이 담긴 ‘극비 친서’다. 김정일은 이 친서를 통해 “이제 한시름 놓고 잠을 자게 됐다”며 “위대한 수령님(김일성)께서 생존에 계실 때 항상 마음 쓰시던 문제인데 정말 대단하다”고 북한 국방과학원(제2자연과학원) 과학자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문서가 작성된 시기는 2004년 3월이다. 이때는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대포동 2호’가 공개되기 약 2년 전으로 이미 기술적으로는 완성 단계에 있었던 시기다. 대포동 2호는 사거리 6000㎞ 이상 발사체로서 북한 기준으로 미국 하와이 인근까지 사거리로 둘 수 있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기술에 있어서 탄두 탑재 및 발사체로서의 위협적인 실체를 대내외에 알린 중요한 기준점이었다. 결국 해당 문서는 이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추정할 수 있는 신빙성 있는 자료다.
친서를 통해 김정일이 최고위급에 주문하는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국방과학원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제때 해결하고, (연구원이) 요구하는 자재와 설비들을 100% 해결해 보장할 것. 둘째, 미사일 성능을 계속 높이는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강력하고 새로운 탄두들을 더 개발할 것. 이어지는 세 번째 주문 사항이 현 시점에서 유심히 살펴볼 대목이다. 내용인즉 ‘연구소에서 사업하고 있는 쏘련(러시아) 과학자들을 잘 돌볼 것’. 북한 핵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발사체 기술 개발에 러시아 출신 ‘용병 과학자’들이 상당히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정일은 러시아 출신 과학자들에 대해 “생활에 불편한 점이 있으면 연구 성과에 지장이 있다”며 “사소한 문제까지 관심을 돌려 가족들까지도 철저히 책임적으로 잘 돌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일의 당시 언급에 비춰볼 때, 러시아 과학자들은 개인이 아니라 가족단위로 극진한 처우를 보장 받고, 북한 내에서 기술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필자는 북한 내부에 있을 때에도 러시아 출신 과학자들의 존재에 대해 오래 전부터 많은 소문을 들어왔다. 다만 워낙 극비 사안인 터라 소문만 있었지, 직접적인 증거를 찾기 어려웠다. 올 초 입수한 이 문서를 통해서야 비로소 그 존재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2011년 8월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 모습. 연합뉴스
그렇다면 북한 내 존재하는 러시아 출신 과학자들은 어떤 경위로 북한으로 들어가게 된 것일까? 필자가 파악한 북한 내부 정보에 따르면, 이러한 러시아 과학자들은 이미 구소련 해체 이후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 사이 북한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군을 우선시하는 북한의 ‘선군정치’가 본격화되면서 비대칭 무력(핵·생화학 무기) 중심의 국방력 강화를 꾀하기 시작한 때와 맞물린다. 물론 이들의 북한 입국은 러시아 본국의 승인을 공식적으로 얻는 정식 절차는 아니었다. 본국의 기술을 타국에 이전하는 과학자들을 러시아가 쉬이 내줄 리는 만무했다.
북한 당국은 개인당 연간 12만 달러 이상의 거액과 윤택한 연구 및 생활상 편의를 보장하는 파격적 조건을 내걸고 비공식 통로를 통해 러시아 내 과학자들을 섭외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러시아 출신 과학자들은 최근까지도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기술 개발에 직간접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북한 내 러시아 과학자들의 존재가 북한과 러시아 간 외교에 있어서 아주 예민한 문제다. 러시아 입장에서 그들은 결국 본국의 허가 없이 국제적으로 민감한 핵심 기술을 팔아먹은 ‘매국노’이며 더 이상의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되도록 송환해야 할 인재들이다. 더군다나 간접적으로 러시아가 북한의 핵개발에 관여한 꼴이 되기 때문에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 입장에서도 불편한 문제다.
필자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이미 지난 2011년 8월, 김정일이 양국 정상회담을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당시 이 문제가 거론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러시아 측은 북한에 본국 과학자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귀국조치를 요구했지만, 이에 김정일은 “데려가는 것은 좋지만, 그 문제는 본인들에게 직접 물어봐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는 것. 사실상 거절한 셈이다.
이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앞서 밝혔듯, 양국 사이에선 고도로 민감한 문제다. 지난 북-러 정상회담에서 한 차례 논의 사안으로 제의된 바 있기 때문에, 다음 정상회담에서도 논의되지 말라는 법 없다. 러시아의 정치·경제 지원을 바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린 북한으로서는 아주 적절한 ‘카드’로서도 사용될 수 있다.
더 나아가 향후 양국의 협력이 진척돼 국가 차원의 군사적 협력이 도래한다면, 현재 북한에 머물고 있는 러시아 과학자들이 하나의 연결고리로서 역할도 가능하다. 이러한 북한의 불법적 러시아인 유치는 국제사회 입장에서 분명 유심히 지켜보고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이윤걸 대표는 누구 이윤걸 대표는 현재 북한 내부 소식을 전하고 있는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NKSIS)를 이끌고 있으며 통일부 정책자문을 거쳐 국방정보본부 북한정보자문단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탈북자 출신인 이 대표는 입국 전, 북한의 명문인 리과대학 학부와 준박사(동물생리학) 과정 졸업 후 호위사령부 산하 청암산연구소(일명 김일성장수연구소) 연구사로 근무했다. 2005년 입국한 그는 본격적으로 북한 정보활동에 투신한 이후 김정은, 최룡해 등 북한의 3대 세습 시기 최고 실세들이 본격 등장한 2010년 9월 28일 당대표자회의를 최초로 예고하기도 했다.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