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러브리티의 섹스 동영상은 킴 카다시안 이후 하나의 비즈니스가 되었고 미국사회에서 더 이상 큰 이슈가 되진 못했다.(로이터/뉴시스) 작은 사진은 킴 카다시안과 옛 애인 레이 제이의 섹스 장면이 담긴 동영상. 레이 제이는 가수이자 프로듀서이며 브랜디의 동생이다.
만약 카다시안이라는 성이 왠지 익숙하다면, 당신은 할리우드 스캔들에 대해 꽤나 조예가 싶은 독자일 것이다. 약 3년 전에 이 코너가 생기면서 처음으로 소개한 내용이 바로 O.J. 심슨 사건이었다. 아내와 아내의 새 애인을 무참하게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무죄로 풀려난 심슨의 법정 스토리는 당시 미국 전역에 생중계되다시피 하며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당시 그의 변호인단 중 한 명이 바로 로버트 카다시안이었다. 그의 딸이 바로 킴 카다시안이었고 O.J. 심슨은 그녀의 대부이기도 했다. 심슨 사건 이후 로버트 카다시안은 셀러브리티 전문 변호사가 되어 제시카 심슨, 브리트니 스피어스, 휘트니 휴스턴 등의 변론에 참여했다. 10대 시절부터 유명인들의 사생활과 밀접한 관계에서 성장한 킴 카다시안이 이후 연예계로 진출한 건 어쩌면 숙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패리스 힐튼이나 킴 카다시안은 2000년 이후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한 현상이었다. 명문가나 연예계와 밀접한 환경에서 태어난 그들은 사교계 활동을 통해 이름을 쌓았고, 이렇다 할 재능 없이 리얼리티 쇼 같은 곳에서 자신들의 사적인 영역을 드러내며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렇기에 그들에겐 로맨스나 결혼은 사생활이지만 일종의 연예계 활동이라 할 수 있는데, 킴 카다시안은 스무 살 때부터 수많은 남자들과 사랑했고 결혼했으며 헤어졌다. 스무 살이 된 2000년, 그녀는 음반 프로듀서인 데이먼 토머스와 결혼했고 2004년에 이혼한다. 이 시기 그는 가수이자 프로듀서이며 브랜디의 동생인 레이 제이와 사귀었고, 2006년에 헤어진 후엔 가수 겸 방송인인 닉 라세이와 연인이 되었다. 당시 라세이는 제시카 심슨과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후 카다시안은 2006년부터 2007년 초까지, 래퍼이자 배우인 닉 캐논과 사귀는데, 카다시안과 헤어진 후 캐논은 머라이어 캐리와 결혼했다.
카다시안은 프로 스포츠 선수 쪽으로 눈을 돌리는데, 2007년부터 2009년 7월까지 NFL 스타 레지 부시와 사귀었다. 헤어진 후 9월에 화해했으나 다음 해 초에 헤어졌고 다시 NFL 선수인 마일즈 오스틴과 연인이 되었으며, 2010년 말엔 모델 가브리엘 오브리와 사귀었다. 당시 오브리는 할 베리와 막 헤어진 상황이었다. 2010년엔 NBA 스타인 제프리 험프리스와 사귀었고 2011년 5월에 약혼했으며 8월에 결혼한 후 10월에 이혼한다. 이후 뮤지션 카니예 웨스트와 관계가 시작되었고 2013년에 딸 노스 웨스트를 낳았으며 2014년 5월에 이탈리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5년 가까이 그녀의 러브 레이스는 숨 가쁘게 펼쳐졌으며, 그녀는 할리우드 연애 관계의 교차로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결정적인 명성(?)을 안겨준 건 로맨스가 아니라 섹스였다. 패리스 힐튼의 친구 정도로 알려져 있던 2007년, 카다시안과 옛 애인이었던 레이 제이의 섹스 장면이 담긴 비디오가 ‘비비드엔터테인먼트’에서 정식 발매된 것. 출시사는 100만 달러에 익명의 누군가로부터 소스를 넘겨받았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선 레이 제이가 직접 넘겼을 거라는 추측이 파다했다. 촬영 시점은 2003년. 데이먼 토머스와 별거 중이지만 법적으론 아직 부부였던 시기였다. 40분 분량의 비디오로 포르노 전문가들은 ‘아마추어 포르노’로 장르 구분을 했을 정도로, 화질이나 카메라 앵글 등이 조악했다. 호텔 방의 음침한 조명 때문에 몇몇 장면은 그 형체를 잘 알아보기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평자들은 2003년 패리스 힐튼을 능가하는, 패멀라 앤더슨 이후 최고의 셀러브리티 섹스 비디오라고 평가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킴 카다시안 때문이었다. 어설픈 카메라워크 때문에 제대로 잡히진 않았지만, 그녀의 테크닉과 매력은 진정 압도적이었다. 힐튼에 비해 훨씬 더 섹스를 즐기고 있다는 평도 있었다.
이런 호평(!)에도 불구하고 킴 카다시안은 소송을 걸었지만 곧 취하했고, 비비드엔터테인먼트로부터 500만 달러를 받는 걸로 합의했다. 하지만 금전적 소득은 오히려 부차적이었다. 이후 그녀는 패리스 힐튼을 능가하는 유명세를 누리게 되었다. 더욱 중요한 건 그녀가 남긴 사례였다. 섹스 비디오를 통해 셀러브리티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것은 동시에, 셀러브리티의 섹스 비디오가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시대의 도래를 의미하기도 했다. 림프 비즈킷의 보컬인 프레드 더스트, 영화배우 콜린 패럴, 전직 프로레슬러 헐크 호건 등도 모두 섹스 비디오에 관련되었지만 그다지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것은 21세기 미국 사회의 변화 중 하나이기도 했다. 1980년대 로브 로우나 1990년대 패멀라 앤더슨의 섹스 비디오가 세상에 나왔을 땐 커다란 이슈가 되었지만, 2000년 이후 힐튼과 카다시안을 거치면서 하나의 비즈니스가 되었고, 이슈 메이킹의 한 방편이 되었으며, 잠시 화제가 될 뿐 궁극적으로는 ‘아무 것도 아닌’ 그 무엇이 되어 포르노그래피 산업 속으로 흡수되어 버린 것이다. 사진이든 동영상이든 유출과 함께 해당 연예인이 매장 당하는 아시아 지역의 분위기를 떠올리면, 섹스 비디오에 대한 미국 사회의 관용성과 대중들의 입장은 꽤나 독특한 문화인 셈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