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27일 국무회의 직전 만나 반갑게 악수하는 정동영(왼쪽) 김근태 장관. 청와대사진기자단 | ||
차기 대선을 향한 질주는 비단 차기 대권주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정-김 두 장관의 대선레이스에 함께 하며 이른바 킹메이커를 자처할 여권 내 인사들의 움직임도 더불어 분주해지고 있다. 여권 내 ‘친 정동영계’인사들 조직으로 알려진 ‘바른정치모임’과 ‘친 김근태계’ 성향 인사들 모임인 ‘국민정치연구회’간의 세 대결이 불을 뿜고 있는 것이다.
정-김 두 장관이 차기 주자로서 주목을 받으면 받을수록 이들 두 조직 간의 보폭 넓히기와 세몰이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총선 직후 열린우리당 내에 난립했던 신규 모임들도 이제 이 두 모임으로 흡수·통합되면서 정리된 양상이다. 정 장관과 김 장관을 추종하는 세력이 여권 내 양대 산맥으로 자리를 잡은 셈이다.
두 모임은 모두 민주당 시절부터 존재했다. 바른정치모임은 ‘동교동계’가 여권 핵심층을 이루고 있던 DJ정권 당시 소위 ‘정풍운동’을 일으켜 권노갑 전 고문을 핵심층에서 끌어내리는데 주요 역할을 했다. 이 모임은 정풍운동 이후 정몽준 후보와의 후보단일화 논의에서 노 후보를 적극 지원해 대통령 당선까지 이끌었으며 열린우리당 창당과정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된다.
당시 바른정치모임의 주축 멤버였던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은 현 여권의 실세로 자리 잡았고 이 모임 주축이었던 정동채 의원과 김한길 의원은 각각 문화관광부장관과 여권 내 핵심기획통이 돼 있다.
국민정치연구회는 민주당 내 재야성향 인사들 모임으로 당내 개혁 작업에 앞장섰지만 정풍운동의 주도권을 바른정치모임에 빼앗기면서 다소 김이 샜다. 2002년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는 노무현 후보와 김근태 후보 중 한 사람을 지원하려다 의견 통일을 하지 못하기도 했다.
▲ 바른정치모임 핵심멤버인 천정배 대표(왼쪽)와 신기남 의장. | ||
노무현 대통령 탄생과정에서부터 다소 ‘엇갈린’행보를 보였던 두 모임은 이제 정-김 두 실세장관의 대권레이스를 두고 당내 물밑 대리전을 전개하고 있다. 대중적 인기가 아무리 높아도 당원 경선에서 후보로 뽑히지 못하면 허사이기 때문에 당내 세력 넓히기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바른정치모임은 자신들의 일정을 좀처럼 공개하지 않는다. 다음달 20여 명 회원들이 부부동반으로 중국유적 탐방을 계획중인 것 외에는 큰 공식일정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기모임을 갖는데 모임 내부에서 대외비로 이야기된 내용이 지금까지 한 번도 외부에 유출된 적이 없다고 자평할 정도로 결속력을 자랑한다.
반면 바른정치모임에 비해 늦게 자리를 잡아가는 국민정치연구회는 ‘밖으로 드러나는’ 활동에 주력하려 한다. 지난 7월 말 충북 제천에서 모임을 갖고 장영달 의원을 새 이사장으로 선출했는데 당초 이 모임에 김근태 장관도 참석하려 했다가 주변의 만류로 뜻을 접었다. 연구회 소속 회원들은 바른정치모임과 달리 자신들이 ‘친 김근태’ 성향임을 숨기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물밑싸움으로 전개되고 있는 이들 간의 세력경쟁이 조만간 수면 위로 부상할 전망이다. 내년 초로 예정된 전당대회 결과에 따라 향후 대선정국 주도권이 갈라지는 탓이다. 국민정치연구회 이사장 장영달 의원은 지난 7월31일 이사장 선출 직후 “당 지도부가 달라져야 한다”라며 바른정치모임이 주도하는 현 당권파에 대한 간접적 선전포고를 날렸다. 연구회 소속 의원들이 정식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되지 않은 신기남 의장-천정배 원내대표 체제에 대한 정통성에 ‘시비’를 거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 ‘천·신·정’ 중심의 바른정치모임이 조기 전당대회 실시를 주장했던 반면 재야출신 중심의 국민정치연구회는 김원기 정대철 등 중진들 중심의 지도부를 옹호했다. 결국 지난 1월 전당대회 실시를 통해 정동영 의장을 선출하면서 바른정치모임 출신들이 당권을 잡게 됐고 이 주도권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 지난 7월 말 국민정치연구회 이사장으로 선출된 장영달 의원. | ||
그러나 이해찬 총리 체제 등장 이후 고위 당·정 협의회를 이 총리가 좌지우지하면서 슬며시 고개를 들고 있는 당권 위력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이들 두 모임의 전당대회 ‘올인’여부에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원내대표 경선에서 패한 이 총리가 쥐락펴락하는 당·정 관계에서 당권을 쥐어본들 대권 레이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겠냐는 우려가 작용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당대회 같은 당내 사업 못지않게 ‘밖으로 눈을 돌리는’ 사업에 주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정치연구회 소속 한 의원은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30% 안팎에서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 2006년 지방선거나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특정 정파와 합종연횡을 도모하자는 의견이 반드시 나올 것이다. 민주당밖에 더 있겠는가. 정동영계 인사들보다는 김근태계 인사들이 한화갑 대표 중심의 현 민주당 세력과 더 가깝다는 점이 김근태계가 움직이는 데 전력 보탬이 될 것”이라 예측한다.
반면 바른정치모임측에서는 정 장관이 담당하게 된 통일·외교 분야에서의 대외적인 성과가 정 장관의 입지를 넓혀줄 것이란 판단을 하고 있다.
정 장관 측근인 당 관계자는 “정동영계이자 최근 바른정치모임 회원이 된 채수찬 정의용 등 미국 인맥이 많은 의원들이 정 장관과 신 의장 미국 방문을 주선했다. 어차피 대북 사업은 미국 등 주변 강국들과의 관계를 고려해야만 하는데 바른정치모임 소속 의원들이 각자 연줄을 통해 남북 관계와 관련된 인맥을 늘려나가는 중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