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최근 “청와대 문건 의혹이 국정 걸림돌이 돼선 안된다”고 말한 이후 새누리당은 이 사안과 관련해 ‘함구령 모드’에 돌입했다.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는 김 대표.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새누리당의 주요 회의석상에 참석하는 한 고위 당직자는 “지난 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무성 대표가 ‘청와대 문건 의혹이 국정 걸림돌이 되어선 안 된다’고 한 뒤 공식석상에선 누구로부터도 한마디 말이 안 나온 게 사실”이라며 “보이지 않는 이런 함구령 모드는 이번 사건이 잘못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늪 이슈라는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박 대통령이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있을 수 없는 국기 문란 행위다. 악의적인 중상이 있었다면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하고, 문서 유출을 누가 어떤 의도로 해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지 조속히 밝혀야 한다”고 말한 것에서 그 의중이 다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루머 중 하나”라는 박 대통령의 말에 비선에 대한 무한 신뢰가 묻어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곳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수군거림이 있다. 당 지도부 전략 쪽 관계자는 “이번 정부는 그 어느 정부에서보다 비선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지만 드러난 실체는 없었다”며 “야당이 이를 불쏘시개 삼아 인사 난맥의 이유로 몰아간다면 단단해 보이는 박근혜 지지자들 사이에 균열이 생길 수도 있다고 본다”고 했다. 워낙 잦은 인사 잡음 탓에 그 이유로 이번 비선 실세가 설득력 있게 다가간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던 사람 중에서도 ‘인사하는 꼬라지가 왜 그러나 했더니’라며 혀를 차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유승민 의원
당시에는 그 심각성을 몰랐지만 유 의원의 예언이 맞아떨어졌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신분일 때 법적분쟁 책사와 다름없었던 김재원 의원, 오랜 기간 대변인 역할을 한 이정현 의원, 친박 핵심들인 유정복(인천), 서병수(부산) 시장을 이야기하는 이도 적잖다. 진실의 한 토막을 알고 있을 듯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입을 꾹 닫고 있다.
언론이 오랜 친박을 향해 각개전투식으로 인터뷰를 요청하고 있지만 모두 모르쇠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여권 한 인사는 “정윤회 관련 이야기라면 인터뷰에 응할 수 없다는 친박의 선긋기가 아주 노골적”이라며 “과거부터 박 대통령의 이미지가 원칙, 신뢰 쪽이었기 때문에 이런 비사(秘事)나 이중적 이미지의 사건은 폭발성이 아주 크다”고 귀띔했다.
계파별로 이해득실을 셈하는 이들은 골머리가 아픈 눈치다. 친이계 한 인사는 “북핵으로도 덮을 수 없는 이번 이슈로 숨을 좀 돌리게 됐다”며 숨 고르기에 들어간 자파 사정을 알려줬다. 야권이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산 비리)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가운데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 논란이 일어난 기막힌 타이밍이란 것이다. 이 인사는 “우리도 겪었지만 권력암투는 일종의 엿보기 쾌감이 있기 때문에 초미의 국민적 관심 사가 되더라”며 “최근 친이계 회동에서 보듯 전열을 재정비할 시간을 번 셈”이라고 했다.
하지만 수도권의 비박계는 국민 눈높이 수준에서 바른말을 해댄다. 직언이지만 차기 총선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도 읽힌다. 4선의 정병국 의원은 “각 부처 위에 청와대 비서실이 군림하면서 비서실 기능이 옥상옥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비서실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같은 선수의 원유철 의원은 “수사와는 별개로 청와대는 내부 보안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인사와 검증 시스템에 문제가 없는지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둘 다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한 작심 발언이다.
한 정가 소식통은 “태양이 떠 있기 때문에 (친박은) 제 목소리를 못 내지만 밤만 기다리는 친이나 비박은 ‘이러다 선거(총선) 못 치르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고 있다. 공식 인사라인이 살아나고 시스템이 정상화하면 모두 다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일부는 ‘문고리 3인방’에 대한 경질, 제재, 제거가 있다면 문제가 되는 부분을 도려낼 수 있다는 처방도 내놓더라”고 전했다.
이재만 총무비서관·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에 메스를 가하지 않으면 의혹이 상당히 오래갈 수 있다는 이야기도 오간다는 의미였다. ‘국회 운영위→국정조사→특별검사’로 이어진다면 세월호 수습보다 오래갈 수 있다는 우려도 들린다.
앞서의 전략 쪽 관계자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보수 언론에서 이 사건을 초대형 이슈로 끌어가고 있고 일부 언론은 정윤회 씨와 관계된 사람들 집 앞에서 뻗치기를 하며 뉴스를 생산하려 한다”며 “언론과의 허니문 기간이 끝난 마당이어서 이번 사건이 어느 방향으로 폭발할지 짐작할 수 없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정권창출의 일등 공신이었던 친이계 내 암투를 연상시킨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만사형통’ 이상득 전 의원을 겨눈 ‘정두언의 난’이다. 형제와 실세의 권력다툼을 결국 형님의 2선 후퇴를 이끌어냈지만 친이의 분열을 가져다 온 것도 사실이다. 이번 정윤회 문건 파문도 이면에는 박지만 회장과 정윤회 씨의 싸움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전 부의장과 정 의원은 정권 교체 후 감방 신세를 졌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