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한번 늘리면 다음에 줄이기 어려운 현금배당을 택하기보다는 재무 정책의 유연성을 확보하면서도 현금배당의 보완재로 활용할 수 있는 게 자사주 매입의 매력이다. 그런데 자사주 매입의 뒤에는 또 다른 포석이 숨어있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들이 매입한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는다면 엄밀히 말해 주주환원 효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실제 자사주 매입이 최대주주의 지배구조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6월 삼성전자는 합병을 앞둔 삼성SDI와 제일모직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자연스럽게 합병법인에 대한 지분율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합병 전 삼성SDI는 삼성전자가 최대주주였지만, 제일모직은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였다. 제일모직이 자사주를 거래하면서 최대주주를 바꿔버린 셈이다. 같은 달 삼성생명도 자회사인 삼성화재가 가진 자사주를 5000억여 원어치를 매입해 지배력을 높였다.
지난 11월 제일기획도 보유 중인 자사주 대부분을 삼성전자에 넘겼다. 제일기획이 보유했던 자사주는 발행주식의 15.96%에 달한다. 1대주주인 삼성물산의 지분율(12.64%)보다도 많다. 자사주 거래로 삼성전자는 단숨에 1대주주와 대등한 지분율을 갖게 됐다.
제일기획 관계자는 “자사주는 유통주식수 감소로 주주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물론 경영권 방어를 통해 주주이익을 지켜내는 역할도 한다”면서 “특히 사업적 협력관계가 밀접한 삼성전자로의 자사주 매각은 회사와 주주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도 최근 2조 2000억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발표했다. 자사주 매입 발표 당시 삼성전자 주가가 크게 올랐는데, 이유가 좀 특이하다. 자산운용사의 한 펀드매니저는 “애플은 자사주를 매입한 뒤 소각해 발행주식수가 감소하는 효과가 확실한 반면 삼성전자는 자사주 매입 후 보유하기 때문에 유통주식수만 줄어든다”며 “최대주주가 지분을 추가 매집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로 주주환원이라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다만 삼성전자의 경우 최대주주 지분율이 높아지면 그만큼 배당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 때문에 주가가 오른 것으로 보면 된다”고 풀이했다.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으로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가 강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요신문DB
삼성전자는 이미 11.09%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이 역시 1대주주인 삼성생명 지분율 7.21%보다 많다. 이번 자사주 매입이 끝나면 발행주식수 대비 자사주 비율은 12.1%로 높아진다. 기존 삼성 특수관계인 지분 17.63%와 합하면 30%에 육박하게 된다.
삼성전자가 가진 현금을 배당했을 때 삼성 외부로 나가는 돈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삼성 측 지분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 자사주 매입은 그 신호탄이라는 해석이다. 현금배당은 대기업 총수일가의 주요한 수입원인데, 삼성전자의 경우 총수 일가 지분율이 낮았다. 1조 원을 배당해도 이건희 회장이 가져가는 돈은 채 350억 원이 안 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삼성 지배구조의 최대 약점은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에 대한 총수일가의 직접 지배력이 낮다는 것인데, 자사주는 이 문제를 풀어줄 중요한 해결책”이라며 “일단 지배력을 높이면 현금배당을 통해 상당부분 다시 가져올 수 있고, 이 돈으로 다시 지배구조를 강화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최근 증시에서는 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체제로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 다시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가 가진 자사주 의결권을 총수일가에게 넘기려면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을 한 후 자사주와 계열사 지분을 지주사에 넘기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지주사를 오너 일가 지분율이 높은 회사와 합병하면 지주사를 통해 삼성전자를 직접 지배할 수 있다.
삼성전자를 지주사와 사업사로 인적분할하면 약 20조 원에 달하는 자사주와 계열사 지분이 지주사로 넘어간다. 이 삼성전자지주(가칭)의 자산이 약 20조 원이 되는데, 이 회장의 현재 삼성전자 보유지분 3.38%를 이 회사에 현물로 출자하면 15% 이상의 지주사 지분을 가질 수 있다.
최열희 언론인
둘째사위 김재열 사장 제일기획 배치 속뜻 ‘한몫 떼주기’ 아닌 ‘전문경영인’ 활용 인사철이면 늘 관심을 모으는 게 대기업 총수일가의 승진 여부다. 올해는 4대그룹 후계자 가운데 구광모 ㈜LG 부장이 상무로 승진한 점이 가장 눈에 띈다. 후계자는 아니지만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이 제일기획의 스포츠단 담당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도 상당한 관심을 모았다. 삼성가의 둘째 사위인 김 사장의 이동은 향후 후계구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일기획이 최근 자사주를 삼성전자에 넘긴 점을 고려하면 후자 쪽이 설득력이 높다. 이서현 사장이 제일기획을 소유하려면 자신이 가진 제일모직 지분을 삼성 특수관계인 지분과 바꿔야 한다. 삼성물산이 최대주주라면 제일모직 지분과 바꿔도 큰 문제가 없다. 삼성물산은 이미 제일모직 주주이고, 삼성전자의 대주주다.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라는 현재의 지배구조에 큰 변화를 일으키지 않고 이 사장이 제일기획을 넘겨받을 수 있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제일기획 지분을 대거 갖게 되면 이 사장이 가진 제일모직과의 맞교환이 어려워진다. 맞교환이 이뤄진다면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제일모직’의 새로운 순환출자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위법이다. 재계 관계자는 “제일기획은 삼성그룹의 글로벌 마케팅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 이 부회장이 이를 동생 부부에게 떼어주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대신 그룹 스포츠단을 제일기획에 집중시키고 김 사장을 전문경영인처럼 쓰려는 복안일 수 있다”고 풀이했다. 현대차그룹이 둘째사위인 정태영 사장에게 자동차 판매와 밀접한 카드와 할부금융 등 금융부문 경영을 맡기고는 있지만 소유권은 정의선 부회장이 물려받을 현대차에 계속 두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정 사장에게 대신 상용차 및 산업기계 할부금융을 담당하는 현대커머셜이란 회사를 만들어 줬다. 현재 지분율은 현대차 50%, 정 사장 부부 50%다. 현대커머셜은 녹십자생명을 인수한 현대라이프 지분 39.44%를 갖고 있지만, 현대라이프 최대주주는 58.61%의 지분을 가진 현대모비스다. 현대차그룹도 아직 확실하게 딸과 사위에게 떼 준 게 없는 셈이다. 이건희 회장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직은 이재용 부회장이 승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IOC 위원의 위상과 특권은 삼성그룹 최고경영자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 대한민국에 1석이 배정된 IOC 위원 자리가 한 자리 더 늘어날 경우 김재열 사장도 도전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IOC 위원을 노리는 것으로 알려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경쟁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김 사장은 삼성가의 두 사람이 대한민국에 배정된 IOC 위원을 독점하려 한다는 비판 여론도 넘어야 한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