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새누리당에 복당한 정태근 전 의원은 “국민이 바라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3년 전, 떠날 때는 한나라당이었지만 돌아오니 새누리당이 됐다.
“당명은 달라졌지만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다. 그동안 성찰하고 내공을 쌓는 과정이 있었다. 다행인 것은 김무성 대표가 취임하면서 ‘보수대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고, 당내 혁신위원회가 가동되고 있다. 제가 정치를 하면서 상대 당보다 우리 당이 먼저 변해야 한다고 말해왔는데, 그런 부분에 역할이 있을 것 같다.”
― 18대 임기 말 몸싸움 방지법(국회 선진화법) 입법을 촉구하며 단식하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올해는 그런 광경은 없었다.
“저 역시 국회 선진화법을 열심히 추진했던 사람인데, 법안을 추진한 핵심적 이유가 몸싸움하는 정치를 하지 말자, 그리고 예산안만이라도 법정 기한 내에 처리하자는 것이었다. 지금 예산안만 일종의 캘린더식 운영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결산안도 캘린더식으로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또 개별 의원들이 당론과는 다르지만 교차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장기적으로 연정의 정치가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는 게 중요하다.”
―당내 ‘보수혁신’이 화두다. 지금까지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겠나.
“의원들 개개인이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바라는 정치를 하는 것이다. 지금 국민이 바라는 것은 여야 간 생산적으로 일을 풀어나가라는 것, 다시 말해 대립 정치를 끝내달라는 것이다. 제가 과거 탈당을 하게 된 것도 대립의 정치에 한계를 느껴서인데, 혁신의 주요 내용이 그런 방향으로 맞춰졌으면 한다.”
―구체적으로 선거구제 개편을 의미하는 것인가.
“연정과 타협의 정치에 걸림돌이 되는 게 현재의 지역독점주의를 가능케 하는 소선거구제다.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다. 대구·경북에서 새누리당이 의석 100%를 갖고 있지만 실제 득표는 60%밖에 되지 않는다. 30석이 있다면 우리가 20석 정도를 갖고 나머지 10석은 야당이나 소수정당이 갖는 것이 사실 맞는 일이다. 이는 호남도 마찬가지다.”
―독일의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많이 거론된다.
“독일은 철저하게 득표율에 기초해 의석을 배분한다. 겐셔 외무부 장관은 지역구에서 한 번도 당선된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가 속한 자민당이 기민당과 연정을 통해 타협의 정치를 이끌어 냈기에 유럽 최장수 장관이 가능했다.”
―소수 정당이 난립하는 등 한국 상황과 맞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우리 정치 체제 모델이 미국이다. 미국의 양당제가 잘 운영되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공화당이 상·하원 다수당이 된 이후 엄청나게 대립하고 있다. 반면 독일 기민당이 연속적으로 성공하는 것은 다른 정당의 정책을 폭넓게 수용하기 때문이다. 기민당은 사민당화라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다른 정당 정책을 가져와 책임감 있게 수행한다. 정치를 책임 있게 하는 것은 보수정당이 잘 하는 일이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현역 의원들이 반대하는데 선거구 개편이 가능하겠나.
“새누리당뿐만 아니라 호남 지역 새정치연합 의원들도 반대한다.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 혁신이라면 그 정도 각오를 갖고 해야 하지 않겠나. 물론 당에서 제 생각에 공감하는 분들도 있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정두언 의원과 함께 여당 쇄신 그룹을 활성화시킬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정두언 의원과는 워낙 오랫동안 비슷한 고민을 공유했던 사이다. 어쨌든 이명박 정부를 출범시키는데 역할을 한 사람들 아닌가. 그렇다면 MB(이명박) 정부가 잘 가도록 할 책무가 있었다. 잘못을 지적하는 역할이 쉽지는 않다. 사실 전화도 하고 보고서도 내고 보좌진에게 통사정도 해보고. 그래도 안 먹히면 언론을 통하는 것인데, 과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저 사람들은 매일 언론에 대고 떠든다’고 이야기 하더라. 그런 과정이 어려웠다.”
정태근 전 의원은 쉬는 동안 몇 번이나 곱씹어 본 책이라며 <권력의 조건>을 추천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내년에 나올 정두언 의원 회고록에도 관심이 쏠린다. 집필에 참여했다고 들었다.
“회고록 아직 안 썼다. 저나 정 의원이나 서울시 부시장을 했던 사람들이니 그간의 과정을 한번 돌아보자는 취지다. 전체 내용이 정리된 것은 맞지만 어떤 방향에서 주제를 잡을지는 한참 남았다. 다음 대권을 잡으려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다.”
―정 전 의원 하면 ‘CNK 다이아몬드 주가조작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박영준 전 차관과의 악연 때문에 나서게 됐던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니다. 18대 국회에서 제 상임위가 지경위(현 산자위)였는데, 해외자원사업 관련해 조사도 하고 연구도 많이 했다. 자원사업의 핵심은 경제성에 있다. 철저하게 경제성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노무현 정부 때부터 자주개발율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마구잡이식 개발이 이뤄졌다. 이명박 정부 때는 총리실에서 해외자원사업을 총괄했는데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이다. CNK와 관련해서는 외무부가 특정 기업을 홍보하는 보도자료를 내고, 회사 이사는 주식을 최고점에서 파는 등 상식 밖의 일이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박영준 전 차관이 관련 이야기가 들려온 것이다.”
―CNK 일부 투자자들은 여전히 정 전 의원을 비판하기도 한다.
“CNK 사건은 주가조작에 정부가 개입한 사건이다.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보상과 관련된 국가 소송을 했다면 이겼을 거라고 본다. 여전히 저에게 ‘왜 문제제기를 했느냐’고 하소연하는 투자자들이 있다. 당시에 소송을 도와드릴 용의가 있다고도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제는 투자자들의 개인적 책임이 돼버린 상황이다.”
―최근 청와대 정윤회 문건 파문은 어떻게 보고 있나.
“청와대 고소로 검찰에서 수사하는 상황인데,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기관인 청와대 스스로 사실 확인을 하고 자정을 하지 못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본다. 문건 내용처럼 정윤회 씨가 실세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과거 노무현 정부 때 노건평 씨, 이명박 정부 때 이상득 전 의원 등 진짜 실세들은 정 씨처럼 맞대응을 하지 않는다. 조용히 자기 할 일 하거나 따로 만나자고 한다. 그런 점에서 실세인지 의심스럽고, 실세라고 한다면 대응 수준이 좀 낮은 건 아닌지….”
―사실 대통령중심제의 폐해인 듯하다. 대통령제 자체에 대한 생각은.
“권력 운영과 관련해 가장 모범적인 사례가 당태종 이세민이 지은 <정관정요>일 것이다. 이 책을 보면 ‘직언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리더의 자신감’이자 ‘남의 의견을 정책화시키는 것이 유능함’이라고 언급한다. 권력을 나눌수록 힘이 커진다는 것은 예부터 내려온 이야기다. 지금 대한민국이 경제 규모나 사회 변화 양태는 대통령 한 사람의 리더십에 의존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현재의 대통령제와 양당제 중심으로 계속 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본다.”
―궁극적으로 개헌을 통한 내각제까지도 바라보는 것인가.
“개헌은 필요하다. 그 전에 정치권 스스로가 바뀌지 않는다면 국민이 신뢰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더 많은 권한을 행사하려는 것이라고밖에 생각하지 않으실 거다. 지금 개헌을 주장하시는 분들은 개헌 이후 나는 더 높은 지위에 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개헌을 통해 세력을 넓히고 권력을 키우지 않겠다는 약속 없이 개헌만 주장하니 국민들이 어찌 믿을 수 있겠나.”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