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감독의 연출력, 시나리오, 그리고 조명과 음향, 음악 등의 요소를 더해보자. 특히 영화 <상의원>은 조선시대 의복을 다룬 영화인 만큼 미술 부분이 중요한데 이 부문 역시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그런데 각 영역별 점수는 평균 90점 이상을 줄 만큼 뛰어난데 이를 모두 더한 영화 <상의원>에 대한 총점은 50점 이상을 주기 힘들다. 훌륭한 요소들이 모였으나 완성품은 기대 이하라는 얘기다. 이런 영화들이 실제 꽤 있는데 아쉽게도 <상의원>도 여기에 속한다.
영화의 전체적인 느낌은 도대체 이 영화가 관객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전혀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느낌은 영화를 관람하기 전, 홍보사가 공개한 줄거리를 읽어보는 순간부터 시작됐다.
‘30년 동안 왕실의 옷을 지어온 상의원의 어침장 조돌석(한석규 분)은 이제 6개월만 채우면 곧 양반이 된다. 어느 날 왕의 면복을 손보던 왕비(박신혜 분)와 그녀의 시종들은 실수로 면복을 불태우게 된다. 궐 밖에서 옷 잘 짓기로 소문난 이공진(고수 분)은 급하게 옷 짓는 사람이 필요했던 왕비의 청으로 입궐하여 하루만에 완벽하게 왕의 옷을 지어 올린다.
돌석은 처음에는 기생들의 옷이나 만드는 천한 사내라고 생각하며 공진을 무시하나 자신을 곧잘 따르는 공진에게 점차 마음을 열게 되고, 그의 천재성에 묘한 질투심도 느낀다.
왕(유연석 분)과 왕비를 사로잡은 공진의 옷들은 조선 전체의 유행을 일으키는 한편, 청나라 사신을 위한 대형 진연을 앞두고 모두들 자신의 운명을 바꿀 최고의 옷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기본적으로 영화 <상의원>은 조돌석과 이공진의 이야기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관계와 매우 닮아 있다. 조돌석은 어린 나이에 상의원에 들어와 30년 동안 왕실의 옷을 지으며 최고의 자리에 오른 반면 이공진은 궐이 아닌 장안에서 유명한 인물로 젊은 나이에 천재성을 지니고 있다. 유교적인 가치에 부합되는 의상을 만들며 한 인생을 투자한 조돌석은 실용적이며 예쁜 옷을 창의적으로 만드는 이공진에게 질투심을 느낀다. 이들의 관계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관계와 동일선상에 놓아도 크게 문제될 게 없어 보인다.
여기에 왕과 중전의 스토리가 섞였다. 캐릭터 이름 자체가 왕이라 부득이하게 배우의 이름을 사용해 내용을 설명하려 한다. 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세자가 되지 못한 유연석은 왕인 아버지와 왕이 될 형과 달리 궁에서 살지만 궁의 아무것도 자기 것이 아닌 존재였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은 형이 양보해주듯 주는 것들에 불과했으니 그것 역시 본래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결혼한 부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로에게 끌렸던 왕과 중전은 오히려 부부가 된 뒤 더욱 멀어지는 슬픈 사랑을 하고 있다.
그 와중에 왕이 된 형이 사망하면서 용상에 오른 유연석은 이제 궁의 주인이 됐지만 여전히 궁의 아무 것도 자신의 것은 없다는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중전과의 관계가 소원한 것 역시 그 때문이다. 왕의 마음을 돌리고 싶은 중전은 면복, 속곳 등의 옷을 통해 마음을 표현하려 하고 이 과정에서 이공진의 도움을 받게 된다.
줄거리에 나오는 ‘청나라 사신을 위한 대형 진연을 앞두고 모두들 자신의 운명을 바꿀 최고의 옷을 만들기 시작하는데…’라는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을 의미한다. 진연에서 입을 후궁 소의와 중전의 의상을 두고 벌어지는 대결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파벌 싸움을 하는 대신들의 이야기도 곁들여진다. 중전을 폐위하고 자신의 파벌인 병조판서의 딸 ‘소의’를 중전으로 들이려 하는 영의정이 거듭 왕을 압박하는 것. 이를 위해선 소의가 예쁘게 보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 조선에서 가장 예쁜 옷을 지어 입히려 한다. 반면 중전 역시 소의보다 더 예쁜 옷으로 왕의 마음을 붙잡으려 한다. 중전과 후궁 소의의 대립으로 그려지는 파벌 싸움에서도 옷이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이렇게 영화 <상의원>은 옷을 매개로 크게 세 가지 이야기를 한 축으로 묶어내려 한다. 성공했다면 정말 좋은 시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영화 <상의원>은 옷이 완성되기 전 바늘 몇 땀이 부족한 느낌이다. 세 가지 이야기가 하나로 얽히지 못한 채 서로 겉도는 데다 옷을 매개로 이 모든 이야기를 엮어내려는 시도는 다소 작위적이다.
그러다 보니 스토리는 물론이고 캐릭터까지 흔들리고 있다. 특히 왕의 캐릭터는 옷에 크게 휘둘린다. 어린 시절부터 형과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해 왕이 된 뒤에도 그 상처를 안고 사는 왕, 그래서 중전을 사랑하지만 다가가지 못하는 설정은 좋았다. 그럼에도 이공진이 지은 예쁜 옷을 입은 궁녀들은 매일 밤 침소로 들인다. 게다가 중전에 다가가지 못하는 것으로 표현되던 왕의 콤플렉스와 상처 역시 중전이 입은 이공진이 지은 조선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으로 순식간에 극복된다. 그만큼 이공진이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최고의 옷을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옷의 의미를 너무 확대하려다 보니 왕의 캐릭터 자체가 옷에 휘둘려 정체성을 잃어버렸다고 보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옷에만 너무 집중하다 보니 스토리의 매무시도 흐트러졌다. 기본적으로 중전의 곁에 아무도 없다. 중전을 폐위시키고 병조판서의 딸 소의를 중전으로 만들어 더욱 탄탄한 권력 기반을 다지려는 영의정과 맞서는 파벌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 결국 파벌 싸움이란 현재의 중전을 중심으로 한 파벌과 새로운 중전을 만들려는 파벌 사이에서 벌어져야 정상인데 이 영화에선 중전 주변에 아무런 파벌도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영의정이 어느 당파의 누구와 권력을 두고 싸우는지가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 결국 옷을 활용해 중전의 자리를 두고 당파 싸움까지 벌어진다는 설정은 좋았지만 당파 싸움을 전혀 그리지 않아 영의정 세력이 누구와 싸우는지조차 불분명해지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중전의 곁에는 고작 이공진 한 명뿐이다.
그러다 보니 영화는 갈 길을 잃고 말았다. 세자며 왕이었던 형에 대한 콤플렉스로 인해 슬픈 사랑이 된 왕과 중전의 이야기는 왕이 예쁜 옷에 휘둘리기 시작하면서 엉뚱한 곳으로 가 버렸으며 옷을 통해 그려진 파벌싸움은 누구와의 싸움인지조차 불분명해지고 말았다. 그나마 조돌석과 이공진의 이야기만 겨우 겨우 갈 길을 가고 있지만 그들의 관계 역시 너무 익숙한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구도를 답습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옷을 매개로 조돌석과 이공진의 이야기, 왕과 중전의 슬픈 사랑, 그리고 파벌 싸움 등 조선 시대의 정치 상황 등을 모두 그려내려 했던 영화 <상의원>은 겉보기만 화려할 뿐 입기 불편한 데다 몸에도 맞지 않는 옷을 만드는 데 그치고 말았다.
@ 이 영화 볼까 말까?
볼까?
1. 조선시대 전통 의상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실제로 예쁜 한복이 많이 등장하는 데다 진연에서 중전이 입은 옷은 이공진 필생의 역작인 만큼 매우 아름답다.
2. 명불허전 배우들의 명연기를 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한석규 고수가 좋은 연기를 선보인 건 기본, 특히 이 영화에선 유연석과 박신혜가 더욱 돋보인다.
3. 살리에르 증후군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도 추천한다. 음악을 옷으로 바꿔 놓은 조선판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이야기다.
말까?
1. 사극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오히려 비추다. 정통 사극과 판타지 사극의 중간 지점에서 두 장르의 단점만 흡수한 묘한 사극이 되고 말았다.
2. 흥미진진하고 빠른 호흡의 영화를 기대한다면 비추다. 줄거리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조금 늘어지는 스토리의 영화로 실제 영화는 줄거리보다 더 늘어진다.
3. 한석규 고수 유연석 박신혜 등 출연 배우의 팬이라면 더욱 비추다. 그들의 빼어난 연기력이 이 영화에선 그냥 의미 없이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