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들은 “의사들이 여전히 원하고 있고 시장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리베이트를 끊기가 어렵다”며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신약 개발이 쉽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나라 제약사들은 특허가 끝난 오리지널 의약품의 복제약(제네릭)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특히 내년에는 발기부전치료제 시알리스(릴리), B형간염 치료제 바라크루드(BMS) 등 대형 의약품들의 특허 만료가 예정돼 있어 제약사들 간 경쟁이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비슷한 가격에 같은 효능의 약이 쏟아지니 제약사들로서는 ‘우리 것을 사달라’며 의사들에게 뒷돈을 찔러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의사들도 업계의 오랜 관행이자 짭짤한 부수입 원천인 리베이트를 포기할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의 근절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법 리베이트는 수법을 교묘하게 바꿔가며 계속 이뤄지고 있다. 의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뒤 수고비라며 수백만원을 건네거나, 온라인 강의 강사로 출연시킨 뒤 대가를 지급하는 경우도 있었다. ‘카드깡’이나 판촉물 구입 등 비용처리 방식은 구식이 됐지만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 쌍벌제 도입 후 수법 바꿔
제약사의 리베이트는 새로운 약을 들여와 판매해주는 대가인 ‘랜딩비’와 기존에 판매하던 약을 계속 처방·판매해주는 대가인 ‘선·후지원금’이 중심이다. 새로운 병원과의 거래를 틀 때나 새로운 의약품을 판매할 때 랜딩비를 주고, 새로운 경쟁사를 견제하기 위해 선후지원금을 제공하는 식이다. 쌍벌제 도입으로 의사들이 직접적인 금품 제공을 기피하면서 제약사들은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처럼 꾸미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최근에는 브로커 업체를 거쳐 제약사가 연관되지 않은 것처럼 꾸미는 방식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에이전시 업체를 중간에 내세워 그 업체와 허위계약을 맺어 자금을 넘겨주고, 그 업체는 의사들과 또 다른 계약을 맺는 것처럼 꾸며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식이다. D 제약은 에이전시 업체로부터 물품을 구매하는 것처럼 꾸며 자금을 건네주고 병원 인테리어 공사 비용 1억 원을 대신 내주도록 했다. 병원 인터넷 홈페이지나 지하철·버스 광고비를 대납하는 방식도 사용했다.
교육업체로 가장한 브로커 업체와 결탁해 교육용 동영상을 찍는다며 의사들에게 강의료를 지급하는 방식도 사용됐다. 실제로 교육업체가 동영상 강의를 촬영·제작해놔서 이를 리베이트로 단정 짓기 어려움이 있었다. 합법으로 위장하기 위해 강의료도 의사 본인 통장으로 입금하고 세금계산서까지 발급했다. 지난해 D 제약은 이같은 방식으로 수천만 원대 리베이트를 제공했지만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검사는 “그냥 적어놓은 강의 내용을 성의 없이 읽거나 분량도 매우 짧은 등 정상적인 교육용 자료라고 볼 수 없었다”고 했다. 항소심까지 재판이 진행된 가운데 법원도 이를 리베이트로 인정하고 유죄를 선고했다.
반면 일부 제약사들은 카드깡으로 실탄을 마련한 후 의사들에게 제공하거나 고가의 선물을 주는 등 다소 고전적인 방식의 리베이트를 계속하기도 한다. 영업사원이나 회사 차원에서 자신들의 리베이트 방식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제 쌍벌제로 인해 처벌 가능성이 높아진 의사들 쪽에서 먼저 ‘이러이러한 방법이 있더라’고 간접적으로 방식을 알려주면서 요구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한다.
감시가 심해 리베이트를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던 대학병원들도 지난해 검찰 수사를 받았다. 제약사들로부터 받은 기부금의 성격을 리베이트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순수한 기부금까지 리베이트로 의심한다”며 대학병원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결국 수사를 철회했다.
검찰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지만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는 제약사들의 수법을 언제까지 적발해낼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제약사가 정당한 대가라고 주장할 경우 이를 배척할 만한 근거가 충분한지를 따져 리베이트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며 “갈수록 불법 리베이트와 합법적 거래의 경계가 불분명한 거래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료계에서도 “강의료 등 지적재산권까지 리베이트로 인정하는 것은 문제”라며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쌍벌제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송까지 제기한 상태다.
# 약값 부담은 서민 몫
리베이트는 공식 장부에도 기록할 수 없고 존재 자체를 부인해야 하는 ‘눈 먼 돈’이다 보니 연관된 중간에서 ‘배달사고’도 잦은 편이다. 업계에 따르면 제약사 영업직원들 상당수는 리베이트 자금 일부를 자기 쌈짓돈처럼 꺼내 쓰고 있다. 게다가 리베이트 규모가 커지고 단속까지 잦아지면서 이를 노린 ‘2차 산업’까지 등장하는 모양새다.
리베이트 업계의 ‘시장성’에 주목한 일부 영업사원들은 회사를 나와 병원과 제약사를 연결하는 브로커 회사를 차리면서 적극적으로 리베이트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브로커 업체들 중 일부가 영업사원이 나와서 차린 것이라고 한다. 창업을 고려 중이라는 한 대형 제약사 영업사원은 “나가서 내 영업망을 직접 연결하는 사업을 하면 지금보다 더 안정적일 수 있을 것 같아 고민 중”이라며 “리베이트 단속에 따른 리스크가 있다고는 하지만 고려 중인 방식으로는 단속 걱정을 크게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다만 여기서 버는 소득보다 확실히 더 많을지가 분명치 않은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제약사는 난감한 입장이다. 작은 규모의 리베이트비 유용은 눈감아 주는 모습이지만 규모가 커질 경우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약점’을 쥔 쪽이 들고 일어날 경우 대응책이 만만치가 않다. 자칫 더 큰 수사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검찰은 지난 9월 D 제약 대전지사를 불법 리베이트 제공 혐의로 압수수색했다. 영업직원으로 리베이트 전달 업무를 맡았던 직원이 회사로부터 징계성 해고를 당하자 앙심을 품고 검찰에 신고한 것이다. D 사에 따르면 이 직원은 리베이트로 전달해야 할 금품의 일부를 지속적으로 착복하다가 걸려 징계를 받았다.
지난해 3월에는 중견 제약사인 I 사의 간부 A 씨가 회사에서 리베이트 업무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을 책임지라는 압박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I 사는 A 씨가 도박에 심취해 회사 자금 수억원을 횡령, 도박 자금으로 날렸다며 변제 책임을 지운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유족들은 A 씨가 담당하던 업무가 리베이트 업무였고, 해당 자금은 불법 리베이트 자금이었다고 검찰에 고발했다. 리베이트를 제공했다는 병·의원 리스트까지 함께 검찰에 제출했다.
제약사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보통 퇴사한 영업사원들이 검찰에 신고했다는 소문이 돌 때가 있다. 그럴 땐 가끔씩 회사에서 ‘압수수색에 대비하라’는 지시가 내려올 때가 있다”고 말했다. 언제나 강제수사에 대비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보니 민감한 업무를 하는 직원들은 작업 파일을 언제나 곧바로 USB에 저장한 뒤 유사시 이를 곧바로 감출 수 있도록 하는 등 대비책도 마련해두고 있다고 한다.
당국은 적극적인 단속에도 불구, 불법 의약품 리베이트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판단하고 관련 입법 정비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의약품 리베이트 수사를 전담하던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4월 관련 수사기능을 서울서부지검으로 이동하고 이름도 ‘리베이트 전담 수사단’으로 바꿨다. 부정식품사범 수사 전담청으로 지정된 서부지검에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7월부터는 리베이트 제공 사실이 2회 이상 적발될 경우 해당 의약품을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서 아예 퇴출토록 하는 ‘리베이트 투아웃제’까지 시행하고 있다. 여기에 국세청은 제약업계를 겨냥한 대대적인 세무조사까지 착수했다. 올 들어 녹십자와 삼진제약, 대웅제약 등을 상대로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특히 제약사들이 대규모로 구입한 상품권 사용처를 소명토록 하고, 이를 제대로 소명하지 못할 경우 고강도 세무조사에 들어간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정수 언론인
의약품 리베이트 합수단 칼 간다 대형 제약사 ‘정조준’ 정부는 국민의 의료비 부담 증가 및 국가경쟁력 저하 한편에 의료계의 불법 리베이트가 있다고 보고 범정부적인 대응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 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전담 수사반’이 올해부터 ‘수사단’으로 한층 격상됐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정부는 지난 2011년 4월 검찰을 중심으로 보건복지부와 경찰청, 식품의약품안전청, 국세청,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이 참여하는 ‘정부 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전담 수사반’을 출범시켰다. 합수반 사무실은 서울중앙지검에 꾸렸다. 합수반장은 서울중앙지검에서 의료 관련 사건을 전담하는 형사2부 부장검사가 맡도록 했다. 당초 정한 수사반의 활동 기간은 1년. 하지만 이 기간 동안 합수반은 유관기관 공조 하에 제약사들의 리베이트를 집중적으로 수사, 대형 제약사 다수와 병·의원을 적발해 재판에 넘기는 등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이를 바탕으로 활동 시한이 두 차례 연장됐고, 올해부터는 명칭이 ‘수사단’으로 한층 격상됐다. 또 서울서부지검으로 사무실을 옮겨 한층 고도화된 활동을 추진키로 했다. 서울서부지검은 식품안전중점청으로 지정돼 있는데, 유관기관이 상당수 겹치는 등 의약품 리베이트 수사와 공조가 원활하게 이뤄질 것이란 판단이 기저에 깔렸다. 제약업계와 의료계는 반발하고 있지만 정부의 의지가 워낙 강하고 여론도 우호적이지 않은 탓에 가시적인 대응은 못하고 있다. 그사이 검찰은 대형 제약사들을 표적으로 활발한 수사를 펼치면서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1월 동아제약의 역대 최대 규모인 48억 원 규모 리베이트를 적발, 이 회사 전무 등 12명을 기소했다. 삼일제약 역시 32억 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제공하다가 적발돼 전무 등 4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이 수사를 통해 위법 여부를 확인하면 국세청이 나서 그 과정에서 포탈한 세금을 추징한다. 국세청은 검찰 수사 이후 관련 자료를 넘겨받아 리베이트 과정에서 발생했을 탈세를 적발하기 위한 대규모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국세청은 리베이트에 사용된 상품권 등의 용처를 정확히 소명하지 못할 경우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수사단으로 한층 위상이 강화된 합수단은 수사대상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고삐를 더욱 바짝 죈다는 방침이다. 합수단은 지난 5일 동아제약의 48억 원 리베이트를 뛰어넘는 동화약품의 50억 원대 불법 리베이트 사건을 적발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이번 사건으로 동화약품 영업본부장 이 아무개 씨(49)와 회사가 재판에 넘겨졌다. 중간에 리베이트 업무를 대신한 에이전시 대표 서 아무개 씨(50)와 리베이트를 받아 챙긴 의사 155명도 불구속기소됐다. 보건복지부와 식약처는 기소된 155명을 포함해 적발된 의사 923명에 대해 면허정지 또는 판매업무정지와 같은 행정처분을 내릴 방침이다. [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