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왕과 중전의 스토리가 섞였다. 캐릭터 이름 자체가 왕이라 부득이하게 배우의 이름을 사용해 내용을 설명하려 한다. 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세자가 되지 못한 유연석은 왕인 아버지와 왕이 될 형과 달리 궁에서 살지만 궁의 아무것도 자기 것이 아닌 존재였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은 형이 양보해주듯 주는 것들에 불과했으니 그것 역시 본래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결혼한 부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로에게 끌렸던 왕과 중전은 오히려 부부가 된 뒤 더욱 멀어지는 슬픈 사랑을 하고 있다.
그 와중에 왕이 된 형이 사망하면서 용상에 오른 유연석은 이제 궁의 주인이 됐지만 여전히 궁의 아무 것도 자신의 것은 없다는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중전과의 관계가 소원한 것 역시 그 때문이다. 왕의 마음을 돌리고 싶은 중전은 면복, 속곳 등의 옷을 통해 마음을 표현하려 하고 이 과정에서 이공진의 도움을 받게 된다.
줄거리에 나오는 ‘청나라 사신을 위한 대형 진연을 앞두고 모두들 자신의 운명을 바꿀 최고의 옷을 만들기 시작하는데…’라는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을 의미한다. 진연에서 입을 후궁 소의와 중전의 의상을 두고 벌어지는 대결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파벌 싸움을 하는 대신들의 이야기도 곁들여진다. 중전을 폐위하고 자신의 파벌인 병조판서의 딸 ‘소의’를 중전으로 들이려 하는 영의정이 거듭 왕을 압박하는 것. 이를 위해선 소의가 예쁘게 보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 조선에서 가장 예쁜 옷을 지어 입히려 한다. 반면 중전 역시 소의보다 더 예쁜 옷으로 왕의 마음을 붙잡으려 한다. 중전과 후궁 소의의 대립으로 그려지는 파벌 싸움에서도 옷이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이렇게 영화 <상의원>은 옷을 매개로 크게 세 가지 이야기를 한 축으로 묶어내려 한다. 성공했다면 정말 좋은 시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영화 <상의원>은 옷이 완성되기 전 바늘 몇 땀이 부족한 느낌이다. 세 가지 이야기가 하나로 얽히지 못한 채 서로 겉도는 데다 옷을 매개로 이 모든 이야기를 엮어내려는 시도는 다소 작위적이다. 그러다 보니 캐릭터까지 흔들리고 있다. 특히 왕의 캐릭터 자체가 옷에 휘둘려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옷에 집중하다 보니 스토리의 매무시도 흐트러졌다. 옷을 활용해 중전의 자리를 두고 당파 싸움까지 벌어진다는 설정은 좋았지만 당파 싸움을 전혀 그리지 않아 영의정 세력이 누구와 싸우는지조차 불분명해지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결국 영화 <상의원>은 겉보기만 화려할 뿐 입기 불편한 데다 몸에도 맞지 않는 옷을 만드는 데 그치고 말았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이 영화 볼까 말까? 볼까 1. 조선시대 전통 의상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실제로 예쁜 한복이 많이 등장하는 데다 진연에서 중전이 입은 옷은 이공진 필생의 역작인 만큼 매우 아름답다. 2. 배우들의 명연기를 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한석규 고수가 좋은 연기를 선보인 건 기본, 특히 이 영화에선 유연석과 박신혜가 더욱 돋보인다. 3. 살리에리 증후군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도 추천한다. 음악을 옷으로 바꿔 놓은 조선판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이야기다. 말까 1. 사극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오히려 비추다. 정통 사극과 판타지 사극의 중간 지점에서 두 장르의 단점만 흡수한 묘한 사극이 되고 말았다. 2. 흥미진진하고 빠른 호흡의 영화를 기대한다면 비추다. 줄거리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조금 늘어지는 스토리의 영화로 실제 영화는 줄거리보다 더 늘어진다. 3. 한석규 고수 유연석 박신혜 등 출연 배우의 팬이라면 더욱 비추다. 그들의 빼어난 연기력이 이 영화에선 의미 없이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