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는 연말 한국에서의 휴가도 반납한 채 재활훈련에 열심이었다. 벌써부터 새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오랜만이다. 이전보다 시즌을 한 달 가량 일찍 마무리하고 수술과 재활로 시간을 보냈다. 지금 몸 상태가 어떠한가.
“팔꿈치는 2007년에도 한 차례 수술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걱정이 덜 됐지만, 발목 수술은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몰라 꽤 마음이 쓰였다. 그런데 양쪽 부위 모두 100% 만족할 만큼 수술도 잘됐고, 재활도 계획대로 이뤄지고 있다. 현재 팀에서 지정해준 비치발리볼 훈련장에서 모래 위를 달리고 구르기를 반복하며 몸의 근력을 키우는 중인데, 통증이 전혀 없다. 캐치볼 할 때도 팔꿈치에 이상이 느껴지지 않는다. 솔직히 지금 몸 상태가 너무 좋아서 살짝 걱정이 될 정도다.”
―왼쪽 팔꿈치 부상은 스프링캠프 때 발견됐는데도 불구하고 시즌 마칠 때까지 오랫동안 부상에 대한 언급 없이 시즌을 치렀다. 이유가 무엇인가.
“텍사스 레인저스 입단을 위해 메디컬 테스트를 받을 때만 해도 팔꿈치 부위가 깨끗했다. 그런데 막상 캠프 들어가니까 조금씩 통증이 생기더라. 그래서 정밀검사를 받았더니 팔꿈치 부위에 뼛조각이 웃자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주치의 말로는 수술하면 8주가 걸린다고 했다. FA 신분으로 시즌을 준비하면서 수술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무엇보다 타격할 때는 크게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참고 뛰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팔꿈치가 안 좋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내가 수비시 공을 잡을 경우 상대 타자가 베이스를 돌 때 한 베이스 더 갈 수도 있다고 봤다. 그래서 팀과 상의 후 일부러 부상 사실을 감춘 것이다. 그리고 일단 라인업에 들어가면 부상 때문에 아파서 못했다고 해도 그걸 핑계대면 절대 안 된다는 나름대로의 철칙이 있었다.”
―그러다 시즌 초에 발목이 접질리는 부상까지 당했다. 당시 부상자 명단에 올라갔으면 몇 주 쉬면서 회복되는 시간을 가졌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
“사실 팔꿈치보다 발목 통증이 더 심각했다. 처음 부상을 당했을 때 팀에다 부상자명단에 올려줄 것을 요구했지만, 팀에선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 팀 상황이 좋지 않으니까 몇 경기 빠지면서 몸 상태가 회복되길 바랐던 것 같다. 결국 정상이 아닌 상태로 간단한 치료를 반복하면서 경기에 출전했다. 몸이 아픈 건 어떻게 해서라도 참을 수 있는데, 성적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자꾸 민감해지고, 상처받게 되고, 정말 고통스러웠다.”
AP/연합뉴스
“처음엔 부상자들이 돌아오면 그때 내가 부상자명단에 올라가는 걸로 약속됐었다. 하지만 부상당한 선수들이 잠깐 있다가 돌아올 선수들이 아니었다. 대부분 시즌 아웃이었다. 1, 2, 3선발까지 모두 아웃된 경우도 있었고, 야수 중에는 프린스 필더가 시즌 초에 목 디스크 수술을 받으며 시즌 아웃을 당했다. 그런 상황에서 난 팀에 남아 있어야 했다.”
―팀 상황을 배려하다가 개인 성적이 떨어지고 팬들에게 실망을 안기기도 했다.
“안타까움이 컸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감독님은 연습도 배제시켜 주셨고, 수비 연습도 하지 않고 경기에 투입됐다. 경기 전 몸 풀기 외엔 한 게 없을 정도이다. 사람들은 내 욕심이 지나쳤다고 하는데, 또 다시 그런 상황에 처한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항간에서는 굳이 발목 수술을 해야 했느냐 하는 의견도 있더라. 발목은 뛰지 않고 쉬면 낫는 상태였었나.
“만약 그랬다면 내가 수술을 강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즌 마치고 일상 생활하는데도 계속 통증이 있었다. 팔꿈치 수술을 먼저 하고 그 다음 의사를 찾아가 발목 상태에 대해 상담을 했는데, 의사가 두 가지 옵션이 있다고 하더라. 한 가지는 3, 4주 정도 더 지켜보다, 그런 후에도 계속 통증이 있으면 수술을 하고, 아니면 지금 바로 수술해서 재활하는 방법이 있다고 제안했다. 난 후자를 선택했다. 만약 발꿈치 상태를 지켜보기 위해 3, 4주를 더 기다렸다가 그때 수술하게 되면 팔꿈치 재활하는 스케줄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수술을 결정한 것이다. 수술 후 의사가 이런 말을 했다. 수술하길 정말 잘했다고. 마이크로 카메라를 부상 부위에 넣어서 수술을 했는데, 직접 보니까 수술하지 않고선 도저히 나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빠른 결정 덕분에 수술을 잘 마쳤고 지금 열심히 재활 훈련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올 시즌 성적이 메이저리그 데뷔 후 가장 저조했다. 타율 0.242 출루율 0.340 장타율 0.374 등으로 FA 선수치곤 형편없었다. 물론 부상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사람들은 그 부상까지 배려해서 추신수를 이해하지 못한다.
“누가 뭐라고 비난을 해도 난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으니까. 2014 시즌을 치르면서 내 마음은 이미 2015 시즌을 바라보고 있었다. 통증 없이 건강한 몸으로 야구하는 시즌을.”
―개인 성적뿐만 아니라 우승을 바라본 팀이 최악의 성적을 냈다. 선수들도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일이 속출했다.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운동선수는 성적으로 답을 줘야 하는 직업이다. 내가 부상을 당했지만, 성적을 내지 못한 것은 내 탓이다. 부상을 핑계 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팬들에게 미안했고, 그 미안함이 안타까움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정말 가슴이 아팠던 것은 선수의 부진을 구단 관계자를 향한 비난으로 돌릴 때이다. 감독, 단장, 사장에게 ‘왜 이렇게 못하는 선수를 데려왔느냐’며 손가락질하는 게 진짜 힘들었다. 차라리 그냥 나에게, 아니면 필더에게 욕을 하거나 비난하는 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그들은 잘못이 없다. 모든 건 선수의 몫이다.”
―추신수란 이름 앞에 ‘먹튀’란 단어가 등장할지 상상도 못했다. 비시즌 동안 미국 언론에선 지속적으로 불명예스런 타이틀을 안기며 기사화했는데, 어떤 마음으로 그걸 지켜보았나.
“뭐 어쩌겠나. 내가 해놓은 결과물이고, 그로 인해 쓴소리를 듣는다면 감당할 수밖에. 어쩌면 FA 첫 해에 이런 상황에 처한 게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악몽 같았던 시련을 통해 나도, 또 내 야구도 한 단계 성숙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했다. 더 이상 나빠질 게 없으니까.”
―하지만 비난의 중심에 있을 때는 말로 표현 못할 고통을 느꼈다고 들었다.
“올 시즌 성적 갖고 혼나는 건 괜찮은데, 이번 성적이 내가 그동안 메이저리그에서 해온 모든 기록들을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폄하시키는 건 마음이 아팠다. 그런 점들이 나도 인간이다 보니 서운했고, 씁쓸했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존 다니엘스 단장은 추신수를 영입하면서 기대가 아주 컸던 사람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레인저스의 성적에 ‘멘붕’이 왔을 테이고.
“하루는 시합 끝나고 클럽하우스에 혼자 앉아 있는데, 다니엘스 단장이 지나가다가 날 봤던 모양이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내게 다가와선 이런 얘길 전했다. ‘추, 너 혼자 모든 짐을 지고 가려 하지 마라. 나도 단장하면서 이런 성적은 처음이다. 올 시즌에는 모든 흐름이 정상이 아니다. 나도 기분 좋지는 않지만, 우리한테는 내년이 있다. 다음에 더 잘하면 되는 것이니 너무 힘들어하지 마라’면서 어깨를 두들겨줬다. 순간 속으로 울컥했다. 다니엘스 단장의 인간 됨됨이를 느끼게 됐고.”
―올 시즌에는 또 다른 복병이 있었다. 바로 심판 판정이다. 주심들의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지면서 볼을 스트라이크로 선언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다보니 평소 하지 않았던 항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떨 때는 왜 나한테만 이런 스트라이크 존을 들이대는지 모르겠다는 오해도 했다. 그래서 더 민감하게 반응했고. 지난 5월 미국 NBC는 ‘스트라이크존 오심으로 인해 피해를 본 선수’ 2위에 내 이름을 올렸더라. 당시에도 65개의 오심 피해를 기록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한 시즌에 모든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듯하다. FA 첫 해이고, 무조건 잘해야 했고, 그런데 몸은 아프고, 심판들은 내 선구안을 흔들리게 하고…. 이렇게 최악을 거듭하기도 쉽지 않은데, 그걸 난 한 시즌에 다 겪었다.”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은 선수가 얘기할 수 없는 영역이다. 볼을 기다리지 말고 공격적인 타격을 원하는 팬들도 있었다.
“나도 안 될 때는 내 선구안을 버리고 타격폼을 바꿔가면서 스트라이크 존에 맞추려 했다. 그런데도 심판들은 내가 뭔가를 해보려는 의지조차 꺾어 버렸다. 내가 어떻게 야구를 해왔다는 걸 그들도 잘 알고 있는데, 내가 해온 걸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 넓은 스트라이크 존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했다. 처음에는 어필을 자제했다. 그런데 그런 어필조차 안하면 날 바보로 볼 것 같아 항의를 시작한 것이다. 그때는 아주 자존심이 상하다 못해 미칠 듯한 심정이었다.”
야구에서는 진한 아픔을 느낀 시즌이었지만, 댈러스 생활에 대해선 만족한다는 추신수다. 댈러스 한인들도 추 패밀리에게 무한 애정을 보내고 있는 것을 현지에서 직접 볼 수 있었다. 식당을 가도, 커피숍을 가도, 댈러스 한인들은 ‘내년에는 꼭 잘하세요’ ‘열심히 응원합니다’라는 등의 말로 추신수를 격려했고, 사인을 요청했다.
추신수는 어느 때보다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가 크다. 매일 3시간이 넘게 재활훈련에 매달리면서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을 정도다.
“지금까지 야구하면서 이렇게 시즌을 일찍 준비한 적이 없었다. 해마다 한국으로 들어가 연말을 보내고 온 것도 포기하고 재활에만 매달리고 있는데, 이런 노력들이 분명 좋은 메시지를 전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더 이상 욕먹으며 야구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웃음).”
미국 댈러스=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