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의 스틸컷. | ||
간통죄는 보수적인 우리 사회에서 용서받지 못할 파렴치한 범죄 중의 하나로 치부됐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법무부 장관 자문기구인 형사법개정특별분과위원회는 최근 ‘과도한 형벌권 행사’라는 지적을 받아온 간통죄를 폐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법무부는 간통죄 폐지방침을 확정한 것은 아니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벌써부터 간통죄 폐지로 인한 후폭풍이 예고되고 있다. 간통죄 폐지와 함께 그간 간통죄를 악용한 범죄와 사건사고들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잠자리를 ‘프리하게’ 결정하는 ‘현대판 보바리 부인’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음란 코리아’가 멀지 않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간통죄 폐지’가 우리 사회에 어떤 파장을 몰고올 것인지 미리 살펴봤다.
2008년 5월 5일 오후 5시 30분경 경북 포항시에 소재한 한 모텔에서 한 남자가 추락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숨진 남성은 내연녀와 함께 모텔 3층에 투숙 중이던 A 씨(45)였다. 당시 경찰은 간통죄로 고소된 A 씨가 부인이나 경찰이 객실문을 두드린 줄 알고 당황한 나머지 모텔 3층에서 뛰어내리다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이날 모텔 객실문을 두드린 사람은 A 씨의 부인이나 경찰이 아니라 차 배달 온 다방 종업원이 객실 호수를 잘못 알고 두드린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월 서울 정릉동에서는 사위의 불륜현장을 잡으려던 장인이 엉뚱한 집에 들어갔다가 무단침입으로 경찰에 검거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올 2월 23일 부산 사상경찰서는 별거 중인 아내의 간통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폭력배와 고가사다리를 동원해 아내와 동거하던 남성의 집에 침입해 폭력을 휘두르고 금품까지 빼앗은 혐의로 B 씨(35)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지난해 6월 C 씨(38)는 아내의 불륜현장을 잡기 위해 경찰과 함께 서울의 한 모텔에 들이닥쳤다. 샤워 중이던 C 씨의 부인은 간통혐의로 내연남과 함께 임의동행, 정액반응 검사를 받았다. 그 결과 정액 양성반응이 나왔지만 정액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검찰은 정액 양성반응이 나온 것만으로도 간통사실이 명백하다며 기소했으나 서울중앙지법은 간통사실을 증명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상은 간통죄로 인해 빚어진 웃지 못 할 사건들의 일례에 불과하다. 하지만 간통죄가 폐지될 경우 이러한 사건사고들은 더 이상 사회면에서 볼 수 없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간통죄는 우리 사회의 해묵은 화두 중 하나였다. 간통죄가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8년 잉꼬부부였던 배우 박철과 옥소리가 이혼 소송을 진행하면서부터다. ‘부부간의 일은 부부만 안다’는 말이 있듯 이들 부부의 갑작스러운 파경을 놓고 온갖 추측이 난무했었다. 하지만 소송 진행 과정에서 박 씨는 옥 씨의 외도를 문제 삼았고 옥 씨는 ‘간통죄가 헌법상 보장된 신체의 자유, 행복추구권,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했다.
지난 1953년 제정된 간통죄는 1990년 이후 무려 네 차례나 위헌소송이 제기되어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올랐지만 헌재는 간통죄를 합헌으로 판단했다. 당시 헌재는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보다 가정을 보호하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며 합헌 결정 이유를 밝혔으나 간통죄 존치와 폐지에 관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간통죄 폐지론자들은 성적 결정권과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든다. 이는 성행위가 순수한 사생활이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데 성적 대상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로운 행위이며 침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간통죄가 가정보호보다는 배우자에 대한 ‘보복’의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음을 지적한다.
또 법률상의 모순도 폐지론 의견에 힘을 싣고 있다. 형법 제241조 1항에서는 간통죄로 보호하는 법익이 ‘가정의 혼인생활 및 사회의 선량한 풍속’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형사소송법 제230조 4항에서는 ‘혼인이 해소되거나 이혼소송을 제기한 후가 아니면 할 수 없으며, 고소를 제기한 뒤 다시 혼인을 하거나 이혼소송을 취하한 때에는 고소가 취소된 것으로 간주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혼인이 해소되거나 이혼소송을 제기한 후에만 간통으로 고소가 가능하다는 것으로, 이는 간통죄의 목적이 혼인생활의 보호 및 보존이라는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간통죄 존치론자들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명시한 헌법 제36조를 근거로 “간통이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인가”에 대한 원론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간통죄 폐지에 반대한다.
이들에 따르면 결혼은 사랑과 성에 대한 배타적인 독점권을 의미하는 것으로 간통죄는 가정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입장이다. 성관계는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할 수 있는 기호문제가 아니라 삶을 근본적으로 좌우하는 가정과 사회의 문제로 보고 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간통이나 혼외정사는 도덕적으로 정당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배우자의 간통은 혼인과 가족생활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간통이 허용되는 사회에서 안정과 행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또 간통죄를 폐지하면 일부일처제가 위협받게 되는 동시에 축첩 같은 악습이 되살아날 가능성도 있다. 존치론자들은 간통죄가 아직까지는 남성의 불륜을 경험한 여성들이 재산분할과 자녀양육에 대한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간통죄가 폐지돼 형사법상 처벌 근거가 사라질 경우 사회 전반적으로도 적잖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간통현장을 급습하는 목적은 신의를 저버린 배우자에 대한 괘씸죄가 더해져 상대방을 형사처벌하기 위한 이유가 많았다. 하지만 더 이상 “당신, 간통죄로 콩밥 먹게 할거야”라는 말은 통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간통을 빌미로 협박을 일삼는 악질 공갈단도 사라질 전망이다.
불륜을 미끼로 금품을 갈취한 꽃뱀부부나 동침하도록 유인한 뒤 현장을 급습해 돈을 뜯어내는 전문 공갈단은 심심찮게 등장하는 뉴스였다. 또 유부남과 의도적인 성관계를 맺은 뒤 “불륜으로 집어넣겠다”며 거액을 요구하는 전형적인 꽃뱀들의 수법도 설 자리가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간통죄를 악용한 부부간의 지저분한 분쟁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 이혼하면서 불륜을 저지른 배우자를 형사고발하지 않는 조건으로 거액의 위자료를 요구하거나 협박용으로 악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심부름센터의 위상도 다소 위축될 것으로 관측된다. 심부름센터에 의뢰되는 주 업무는 불륜현장을 포착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일이었다. ‘기가 막히게 잡아낸다’고 소문난 업체들은 ‘뒷조사와 불륜현장 포착업무만으로도 사무실이 유지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실제로 2007년 10월 경기지방경찰청에는 강남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전국 최대 전문조사기관임을 내세우며 ‘고객의 철저한 비밀보장’ ‘VIP특별관리’ 등을 강조하는 수법으로 2년여에 걸쳐 총 17여억 원을 받은 심부름업체가 적발되기도 했다.
하지만 간통죄가 폐지될 경우 불륜 당사자들을 형법상으로 처벌하지 못하게 되므로 무리하게 심부름센터 직원들을 고용해 뒷조사를 하는 고객의 수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경찰도 남의 이불속을 검사하곤 했던 수고를 덜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불륜신고를 받은 경찰이 제보자와 함께 현장을 급습해 벌거벗은 남녀에게 “일어나 옷 입으세요”라고 말하며 불륜의 증거를 수집하는 장면도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남게 될 것이다.
간통죄를 주로 취급하던 법률사무소의 업무에도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이혼과 맞물려 간통죄 소송 가능성에 대해 진단하고 증거준비 및 고소대행을 해주던 법률사무소는 상대방의 간통이나 혼인약속 위배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의뢰인에 대해 형사적 책임을 묻기 위한 방안 마련 대신 민사소송 절차만 담당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간통죄 폐지가 문란하고 부적절한 사생활을 인정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형사법상으로 제재를 가할 수는 없지만 불륜남녀는 도덕적 비난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간통’과 ‘불륜’에 보수적인 우리사회 통념상 민사소송에 휘말린 당사자는 치명적인 명예훼손과 정신적인 부담에 시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배우자에 대한 기본적인 신의를 저버린 ‘간 큰 남녀’들은 간통죄 폐지 여부와 상관없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간통 혐의로 도마위 오른 유명인사 누구
세월 흘렀어도 꼬리표는 여전
성과 정조관념에 엄격한 우리나라에서 간통은 유명인들에게도 족쇄로 작용했다. 특히 이미지로 먹고사는 연예인들에겐 간통 연루는 치명적이다.
고 신상옥 감독과의 관계로 인해 전 남편에게 고소당한 영화배우 최은희는 ‘간통 1호’로 지목되면서 수난을 당했다. 63년 기혼자였던 최무룡과 우여곡절 끝에 결혼한 김지미는 세간으로부터 ‘간통’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고, 76년에는 중견배우 김영애 역시 간통사건에 휘말려 곤욕을 치렀다. 가수 태진아 역시 70년대 유부녀와 간통 혐의로 피소된 바 있다.
1984년 당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배우 정윤희는 조규영 중앙산업개발 회장과 결혼을 발표했는데 이혼절차를 밟고 있던 조 회장의 부인이 정 씨를 간통으로 고소하면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탤런트 윤미라 역시 인기가도를 달리던 70년대 후반 간통사건에 연루되어 홍역을 치렀다.
탤런트 이선정은 지난 99년 2월 부산시 해운대구의 한 호텔에 투숙, 유부남 K 씨와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피소, 2001년 1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예진아씨’로 인기가도를 달리던 탤런트 황수정은 히로뽕 투여 혐의로 구속기소된 후 간통 혐의로 추가 기소되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2005년 초에는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 김예분이 재미동포 유부남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이유로 고소당해 구속되기도 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